MB정부 ‘눈치밥만 2년째’에 보수세력도 지쳐가

지난 4년간 줄곧 우세를 지켜오던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최근 민주당에 역전 당했다. 여론조사 시기와 방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이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집권여당의 갑작스런 추락은 노무현 전(前) 대통령 서거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주된 지지층을 형성했던 보수 진영(보수단체와 보수 성향의 유권자)의 신뢰 저하가 심화되고 있는 점도 주된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MB정부 주요 정책에서 대북정책은 그나마 다른 분야보다 국민적 지지가 높다. 그러나 이것도 MB정부의 성과라기보다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와 같은 자폐적 조치에 따른 반사 이익이라는 측면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최근 북한의 대외 무력시위가 점차 강도를 높여가면서 정부의 대응을 불안하게 보는 시각도 늘고 있다. PSI 전면 가입이나 개성공단 억류 유 씨 문제, 개성공단 자체의 존폐 문제 등에서 이전 노무현 정부의 유산을 받지도 던지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전면참여는 발표시기를 두고 북한의 눈치를 살피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2차 핵실험을 실시한 후에야 가입을 선언했다. 정부가 원칙을 가지고 정국을 주도하기 보다는 국민 눈치, 야당 눈치, 북한 눈치를 살피느라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는 차별화된 상호주의적 대북접근을 내세웠다. 10년간의 ‘퍼주기’에 지친 민심과 북한의 막무가내식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좌파세력에 대한 분노를 불러왔기 때문에 정상적인 남북관계 회복이라는 열망이 보수 정권 출범의 주요한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출범 초 북한의 핵포기와 개방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는 ‘비핵·개방·3000’을 대북정책의 ‘키워드’로 제시했던 이명박 정부는 야당과 북측의 거센 반발에 밀려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란 순화된 정책를 내놓게 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의구심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한반도선진화재단 교육네트워크 본부장인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결국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틀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평화번영정책’과 ‘상생공영정책’을 비교했을 때 ‘평화’와 ‘상생’, ‘번영’과 ‘공영’은 각각 같은 뜻”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상생공영정책’은 ‘포용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MB정부 출범 직후 초대 통일부 장관에 유력했던 인사가 낙마하자 햇볕 지지파로 분류됐던 외교관 출신 김하중 주중대사를 야당 무마용으로 내세운 것부터 이전 정권과 차별화된 대북정책을 구사하는데 한계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MB정부의 눈치보기 특성과 함께 준비 부족을 꼬집는 전문가도 있다.

국책연구소 한 전문가는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지상과제를 하나씩 현실화해가고 있는 와중에 MB정부가 선(先)비핵 후(後)지원 원칙을 세웠다면 남북관계 경색은 미리 예상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MB정부가 ‘경제개발 이익을 내세워 북한의 비핵화를 설득하겠다’거나 ‘개성공단을 유지하되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등의 애매모호한 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평가했다.

북한 인권문제와 납북자 문제도 MB정부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만 적극적인 찬성에 나섰을뿐 북한의 실질적인 인권 개선책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있다. 북한인권단체들은 인권재단 설립 및 민간 대북방송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여기에 국가인권위의 북한 인권 인식 수준은 바닥을 기고 있고, 국회에 계류중인 북한인권법도 현 시점에서는 본회의 통과가 어렵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점도 지적된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직접 탈북자들을 잘 돌봐달라고 말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냈지만 제3국에 있는 탈북자와 이를 돕는 NGO들은 각국 주재 한국대사관의 태도와 탈북자 지원 조치는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민간 대북방송 지원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직접 약속했던 사안이다.

무엇보다 문제로 지적된 것은 ‘대북정책’의 선명성 문제였다.

바른사회시민연대 대표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많은 국민들이 과거 포용정책의 잘못된 점을 고쳐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철학 취지에 공감을 했었다”면서도 “실상 정부의 대북철학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불확실한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북한과 관련해 돌발적인 변수가 많기는 하지만 상황에 따라 정부의 정책이 왔다 갔다하는 측면이 많았다”며 “이러한 면이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 것 아닌가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정부가 지난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가입 입장을 천명해 놓고서도 북한의 반발 기류를 감안해 발표시기를 늦춘 것이 대표적인 원칙 훼손 행위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정부 대북정책에 방향성 확립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며“지금은 좌고우면(左顧右眄)할 때가 아니다. 김정일 정권의 눈치를 보며 PSI 참여를 주저한 정부를 지지할 국민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지난해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북한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했을 때도 대화의 원칙만 내세웠다”며 “2천2백만 북한 주민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갖다 주라고 뽑은 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니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수 세력들과의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로 제기됐다. 박효종 교수는 “집권세력은 지지자들이나 반대자들 모두 진정한 설득을 통해 아우르려는 감동의 정치를 펼쳐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들만의 정치’를 해 온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지지자들인 우파 세력들의 얘기를 귀담아들으려고 하는 진정성이 부족했다”며 “정부 출범 이후 협력을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데, 자신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지지자들의 이탈을 불러일으켰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도 “PSI 가입 문제나 촛불집회에 대처하는 과정에 있어 우파 세력들의 실망이 컸다”며 “대통령으로서 과감성과 결단성이 부족한 면도 문제로 지적된다. 선진화라는 아젠더를 내걸었으면, 거기에 맞는 철학과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지금까지 어떤 정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 원장은 “이미 국민들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통해 작은 정부의 구현, 교육 자율화, 공기업 개혁, 불법 폭력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 대북정책 재정립 등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며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확고한 방향성을 정립해야 했던 정부가 이제 와서 여론에 흔들려 새삼스럽게 방향성을 찾겠다고 하니 국민들이 실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