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이것이 허구다” 논문 요약

▲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7일 발행되는 뉴라이트 사상·이론지 ‘시대정신’ 겨울호에 논문 ‘허구로서의 분단체제’를 게재하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분단체제론’을 정면 비판했다.

안 교수는 백 교수의 남북문제 주요 저서인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흔들리는 분단체제’ 등을 분석하고 백교수의 이론적 뼈대인 ‘분단체제론’은 체제로서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며 그 허구성을 비판했다.

그는 먼저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과 통일방안으로서의 국가연합론은 이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며 “왜냐하면 저자 스스로 저서의 곳곳에서 분단체제론에 관해서는 정답이 주어져 있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이론화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백 교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 및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 등 여러 가지 체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분단에서 오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수의 모순(체제)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그 모순들이 각각의 특성을 살리면서 그것을 하나의 같은 성질을 가진 모순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 두 가지 모순을 동시에 인정하면 논리적으로 수미일관된 이론이 구성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안 교수는 분단체제론이 성립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로 분단체제가 결합체라는 점을 꼽았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는 세계체제, 남한의 자본주의체제 및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하나의 체제로 지양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복합되어 있는 것이다”면서 “그러니까 백 교수의 분단체제에는 체제원리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또 “백 교수의 이론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의거하고 있는 이론의 취약성과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인식상의 오류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의거하고 있는 이론은 근대 시민사회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전근대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있는 사회의 특질을 밝혀내기 위한 이론인데, 한국은 이미 선진국으로서의 진입을 목전에 바라보고 있는 나라”라며 “이러한 나라를 분석하면서 과도기 사회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이론으로 올바른 사회분석이 될 턱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①]

“안병직, 백낙청 ‘분단체제론’ 정면비판”

[관련기사 ②]

“백낙청의 ‘안병직-박세일 비판’ 무슨 내용인가?”

허구로서의 분단체제

Ⅰ. 머리말

현재 남북교류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국정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분위기가 한층 더 어수선했지만, 그 혼란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의 6ㆍ15 남북공동선언에 이르게 된다.

6ㆍ15남북공동선언이 남북교류를 국정의 주요과제로 설정함으로써, 한국의 정치가 북한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갈 수 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29일의 민주화선언을 계기로 이제 한국 현대사는 남북관계를 한국정치의 중심적 과제로 설정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진보진영의 지도적 사상가인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이 바로 그것이다. 백 교수는 1953년 이후의 한국현대사를 기본적으로 분단체제에 의하여 규정되는 시대로 파악하였다.

한국현대사에 있어서는 민족모순, 계급모습 및 분단모순 등의 다양한 모순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여러 모순의 복합체로서 분단체제가 성립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산업화, 민주화 및 선진화 등 중요한 국정과제가 산적해있기는 하지만, 통일을 중심으로 하는 남북문제의 해결과 연관시키지 않고서는 위와 같은 과제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분단체제란 존재하는 것인가. 정말 우리는 남북문제를 우선적으로 풀지 않고서는 산업화나 민주화나 선진화를 제대로 달성할 수가 없는 것인가. 정말 우리는 남북문제에 숙명처럼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이 문제는 결국 한국의 정치경제과정을 분단체제가 일차적으로 규정한다는 분단체제론이 성립 하는가 어떤가에 달려있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에 대한 검토는 바로 이러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Ⅱ. 분단체제론

1. 분단과 분단체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분단국가로서는 독일, 중국, 베트남, 한국 및 예멘 등이 있었다. 백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분단국가 중에서 분단체제가 성립하는 곳은 오직 한국뿐이라는 것이다. 왜 다른 나라에서는 분단체제가 성립하지 않는데, 유독한국에서만 분단체제가 성립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한반도의 분단은 독일과는 달리 분단의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는 것, 둘째 한반도의 분단은 6ㆍ25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으로 굳어져 버렸다는 것, 셋째 분단과정에서 남한 내에 격심한 사상적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든 분단국가는 모두 외세의 간섭과 사상적 대립이 분단의 기본요인이었기 때문에 외세의 개입이나 사상적 대립만으로는 분단체제의 성립여부를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분단체제 성립의 객관적 사정이야 어떠했던 간에 분단 상황이 분단 체제로 굳어졌다고 하면, 일단 분단 상황이 체제로서 성립할 수 있는 체제의 속성을 갖추어져야 한다.

그가 드는 체제의 속성으로는 첫째 지속성 즉 자기재생산능력, 둘째 일반 대중의 물질생활의 상당부분을 해결해주는 능력, 셋째 일반대중들의 체제에 대한 자발적 순응인데, 첫째와 셋째는 체제의 속성으로서 당연한 것이라 하더라도 둘째가 왜 분단체제의 속성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 능력은 남북한체제의 능력이지 분단체제의 능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 분단체제의 개념

백 교수는 한반도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 및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 등 여러 가지 체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러한 체제들의 작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분단에서 오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다원방정식’을 설정하고(「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137~138쪽)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를 그 변수로 위치시켰다. 만약 이러한 다원방정식이 성립한다면,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가 어느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파악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원방정식은 백 교수의 기대와는 달리 성립할 수 없다고 미리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를 변수로 환원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변수는 어떤 문제로 표기되던지 간에 숫자로 값이 주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수량화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과연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가 값으로 평가될 수 있는가.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는 이러한 객관적 값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백 교수가 말하는 다원방정식은 비유에 불과한 것이지 논리는 아니다. 더 나아가 만약에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에 대하여 어떤 동질성을 기준으로 억지로 값이 주어질 수 있어서 다원방정식이 성립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검토대상은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에서 추출된 어떤 동질적인 것의 값에 관한 것이지 여러 모순이나 여러 체제가 가지는 고유의 의미에 관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백 교수 같은 분이 왜 위와 같이 간단한 문제에서 그렇게 쉽게 실수를 범하고 말았을까. 실제로 그는 분단체제론을 제기하면서도 그 이론화는 거듭거듭 사회학도들이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가 분단체제론의 이론화에 조그마한 시도를 스스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과학도는 물론 어느 누구도 분단체제론의 이론화에 뛰어 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 교수의 시도는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계급모순, 민족모순, 분단모순, 주요모순 및 모순의 주요 측면 같은 개념은 그 학설사적 연원이 모택동의 「모순론」에 있는 것이다. 모택동은 본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기본모순으로서 계급모순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식민지나 반식민지에서는 기본모순으로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이 존재한다고 했다. 만약 어느 사회에 복수의 기본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 중 어느 것부터 먼저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도출된 개념이 주요모순이라는 개념이다.

모택동의 「모순론」은 단순한 학문적 탐구의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공산당의 수장으로서의 그가 당면한 현실문제의 해결방법으로서 제기된 것이다. 모택동은 이와 같은 이론을 가지고 1930년대의 중국사회의 성격을 해명했다. 그가 최초로 제기한 반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점은 그가 반식민지반봉건사회를 사회의 성격이라고 했지 결코 사회구성체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진영에서는 별다른 학문적 고민도 없이 이 모택동의 이론을 쉽게 사회구성체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따져보아야 할 것은 왜 모택동이 반식민지반봉건사회를 사회구성체라 하지 않고 사회의 성격이라 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은 필자의 추측이기는 하지만, 그는 이미 민족모순이 사회구성체이론을 구성하는 개념적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여간 모택동의 반식민지반봉건사회론이나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이나 이론의 제창자 자신부터 그 이론적 성립여부에 대해 자신이 없어하기는 매일반이었다.

한 사회내부 아니 하나의 이론체계 내에 복수의 기본모순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 모순들이 각각의 특성을 살리면서 그것을 하나의 같은 성질을 가진 모순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 두 가지 모순을 동시에 인정하면 논리적으로 수미일관된 이론이 구성될 수밖에 없다.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에 이 논리를 적용하자면, 세계체제, 남한의 자본주의체제 및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지양되어 분단체제라는 단일체제로 질적 전환을 하려면 세계체제, 자본주의체제 및 사회주의체제는 본래 각각이 지녔던 특성이 제거되어야 하며, 세계체제, 남한의 자본주의체제 및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분단체제라는 상자 속에 그냥 그대로 합해져 있는 것이라면 분단체제는 빈 껍질에 불과한 것이다. 백 교수가 사회과학도들에게 정립하기를 기대했던 분단체제론은, 본래 성립할 전망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과학자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한 것이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이 성립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분단체제가 결합체라는 점에서 나온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는 세계체제, 남한의 자본주의체제 및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하나의 체제로 지양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복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백 교수의 분단체제에는 체제원리가 있을 수 없다.

Ⅲ. 분단체제와 국정운영의 우선순위

1. 국정운영의 우선순위

백 교수가 분단체제론을 제기한 기본 의도는 국정운영이나 민중운동의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밝히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된다. 흔히들 한국 현대사의 과제는 선진화와 통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개 보수진영에서는 선진화를 우선적 과제로 삼고 진보진영에서는 통일을 우선적 과제로 삼는다. 결국 백 교수는 진보진영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통일이 왜 국정의 우선과제인가를 밝히기 위하여 분단체제론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단순히 경제발전이나 민주화라는 국정과제가 ‘분단체제극복이라는 민족사적이자 세계사적 과업’에 의하여 규정될 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분단체제 극복운동으로부터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동력이 나왔고 앞으로도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미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했다거나 북한과의 체제경쟁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진행되었거나 하는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용인만으로 경제발전은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 경제발전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인은 값싼 양질의 노동력의 부존과 수출지향공업화정책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 교수는 ‘분단체제를 허물어가는 작업’으로부터 양질의 노동력이 양성될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기대할 수 있는 이론적 및 현실적 근거가 무엇인지 경제학 전공자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2. 이론과 현실의 전도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에 의하면, 현대 한반도의 역사적 과정을 기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분단체제이다. 백 교수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는 물론 북한의 기아마저도 북단체제에 규정되어 일어난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백 교수에게는 한반도의 역사과정에 대한 분단체제의 규정력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있는가.

그는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도 사회적 모순의 가장 근원적인 규정력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기인하지 분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의 하위체제이므로 세계체제가 한반도에 대해여 ‘근원적인 규정력’을 행사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나 백 교수의 주장을 이리저리 따지면 ‘분단체제의 가장 주된 규정력’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은 자본주의세계시장에 포섭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기 나라의 민족적 역량을 기초로 선진제국으로부터 기술ㆍ자본 ㆍ제도 등의 성장기동력을 흡수하여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하고, 북한은 국내로부터 성장기동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립경제와 계획경제를 고집했기 때문에 사회주의체제가 붕괴하면서 기아상태에 빠진 것이다. 백 교수가 말하는 분단체제의 흔들림은 이러한 남북현대사 전개의 결과이지, 분단체제가 남북현대사의 상이한 전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에 있어서는 이론과 현실이 전도되어 있다.

Ⅳ. 국가연합론

1. 남북문제에 대한 인식의 심화

금년에 출간된 북단체제론에 관한 백 교수의 세 번째 저서는 두 번째 저서의 출간으로부터 8년이나 지난 후에야 나왔다. 어딘가 분단체제에 대한 백 교수의 인식에 그동안 큰 변화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우선 그의 통일의 전망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는 통일지상론자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통일이 복음이라거나 통일이 가까운 시일 내에 달성될 것이라고는 하지 않았으나, 통일을 다소 낙관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6ㆍ15남북공동선언에 대하여 그가 크게 희망을 거는 데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이러한 낙관은 세 번째 저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자칫 잘못하면 통일이 남북을 파국에 빠트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장기적 과제로서 점진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곳곳에서 경고까지 하고 있다.

비록 백 교수가 통일문제의 전망에 대한 인식을 현실에 가깝게 수정했다고는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인식전환의 불철저성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남북 간에 진행되고 있는 것은, 통일과정이 아니라, 정치적 혼란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6ㆍ15통일대축전의 남측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 교수는 남북교류가 왜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 국가연합론

그러면 백 교수가 생각하는 통일은 도대체 어떠한 통일이기에 지금 한반도에서 통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인가. 그는 통일운동의 기본세력을 남북한의 민중운동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백 교수가 상정하는 민중운동이라는 것은 남북 민중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각종의 대중운동인 듯 하다.

그런데 이러한 민중운동은 남북한 민중이 각기 상이한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 운동 목표를 달리할 수밖에 없으나, 그러한 운동이 통일이란 공통목표를 중심으로 연대하면 민중의 생활주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래 순전히 각각 상이한 자기생활의 개선을 목표로 하던 남북한의 민중운동이 아무런 매개 없이 바로 ‘한반도 민중의 생활주도력을 극대화하는 통일이라는 공동목표를 중심으로 연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백 교수가 상정하는 통일주도세력으로서의 민중운동의 성격이야 어떠하던지 간에, 그러면 이러한 민중세력이 어떠한 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 우선 백 교수가 상정하는 통일은 민중운동을 기초로 해야 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통일이 혁명이나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통일에 있어서는 두 정부의 합의가 필수적 전제로 될 수밖에 없으므로, 민중운동만으로는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 변혁을 통한 통일에 있어서는 남북정부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백 교수의 통일론은 매우 중요한 논리적 허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연합론이 제대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남북 민중의 ‘실질적 화해와 접근’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명확하게 밝혀져야 하는데 그는 그것을 막연히 민중운동에서 기대하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까지의 통일을 위한 민중운동이란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만 것이 아니었던가. 백 교수는 현실적으로 북한민중을 노예화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핵무장까지 한 김정일과의 합의에 의한 남북의 국가연합이 과연 내전으로 발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가지고 있는가.

Ⅴ. 맺음말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과 통일방안으로서의 국가연합론은 이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과 국가연합론이 이론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필자가 구태여 밝혀 낼 필요가 없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저자 스스로 저서의 곳곳에서 분단체제론에 관해서는 정답이 주어져 있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다던지 혹은 이론화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 교수의 이론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의거하고 있는 이론의 취약성과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인식상의 오류에 있다. 그가 의거하고 있는 이론은 근대시민사회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전근대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있는 사회의 특질을 밝혀내기 위한 이론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성공하고 선진국으로서의 진입을 목전에 바라보고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나라를 분석하면서 과도기 사회에나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을 가지고 노력해본들 올바른 사회분석이 될 턱이 없다.

그리고 그의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도 크게 틀렸다. 한국사회는 지금부터 제대로 된 선진적 시민사회의 형성을 지향하고 있는데, 그는 민중운동을 기초로 하는 민중민주주의 운운하고 있다.

백 교수는 필자의 한국현대사의 전망에 대하여 비판했다. 두 사람의 한국현대사에 대한 의견의 차이는 통일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가 선진화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하는 데에 있다. 백 교수는 통일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10여년이나 연구했으나, 결국 논증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백 교수는 사회적 책임상 분단체제론과 국가연합론이 이론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을 새로이 보여주던지, 그렇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밝혀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백 교수가 현실을 보다 솔직하게 직시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