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자격증 따고 탈북민들과 공동으로 카페 창업

김인실(2004년 입국·50대) 씨는 현재 서울시 강서구에 위치한 ‘더치 숲’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카페 일은 젊은 사람들이 하는일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며, 50대 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커피 등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를 운영하려면 바리스타 자격증이 필요하다. 김 씨는 2015년부터 커피 제조기술을 배워 2급과 1급 과정을 모두 마쳤다. 그러던 중 남북하나재단에서 3년간 창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김 씨는 6명의 탈북민 지인과 함께 카페를 창업하기로 했다.

공모에 최종선정된 ‘더치 숲’은 현재 6명의 탈북민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부담없이 카페를 방문하고 있는데 그 비결은 더치커피를 기본 메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치 커피는 오랜 시간동안 찬물에 내리는 것이 원칙인데 4~8초에 한 방울 씩 24시간 동안 추출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추출되기 때문에 일반 커피에 비해 쓴맛이 덜하며, 순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탄생할 수 있는 커피라 인기가 많다.

배움이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

3년간의 지원이 끝나면 개인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김 씨. 한국사회에선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년의 나이에 직업 교육을 받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며, 두려움이 수반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그런 김 씨는 정착 초기 백화점 손 만두 집에서 만두를 빚어본 경험이 있다. 특별한 기술은 없었지만 한국에서 처음 돈을 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공개된 주방에서 하루 종일 서 있는 채로 만두를 빚었고 각종 허드렛일도 담당했다. 손님이 많아 주문은 밀리기 일쑤였고,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었다.

과로로 인해 몸에 적신호가 켜졌다. 일을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하면서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김 씨는 주유소에 취직해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했다. 매일 12시간씩 꼬박 일하니 하루가 짧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대한민국에서의 삶인데 현실은 북한에서의 삶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절망적이었다. 이기지 못할 술을 마시기도, 비관적 생각도 했지만 이내 김 씨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자격증 취득 등 준비되어 있을수록 취업의 문 넓어져

김 씨는 한국에서 컴퓨터를 할 줄 모르면 회사에 취직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하나원에서 제공하는 6개월 컴퓨터 자격증반을 수료하면 무료 수강 혜택과 소정의 장려금을 제공받을 수 있지만 교육기간이 길어 이를 마다했다. 한국문화진흥원에서 제공하는 무료 2달 자격증반을 수강해 엑셀, 파워포인트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취득하니 직장 얻기가 더 수월했다는 김 씨. 대학병원에 입사를 지원했는데 최종면접자 11명 중 2명 만이 뽑힐 수 있었다. 이들 중에는 관련 업종에서 이미 경험을 쌓은 사람들도 많았다. 김 씨의 경우 의료 전문 자격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선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과거 구직경험과 비교했을 때 배울수록 지원할 수 있는 직종이 많아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수 있었다고 했다.

5대 1의 경쟁을 뚫은 김 씨는 의무 기록 차트 관리 일을 시작하게 됐다. 하루 환자만 3천 명이 넘어 고된 노동이었지만 3개월이 지나니 점차 익숙해졌다. 이외에도 김 씨는 한 제조공장에서 매출 관리일도 했다. 당시 월급은 120만 원이었는데 3개월만에 150만 원을 받는 등 능력을 인정 받았다.

최근에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사회복지 공부까지 하고 있다는 김 씨. 카페 운영을 통해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통일 후 사회복지사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희망도 전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통일 이후엔 북한에 카페를 차려 맛있는 커피를 고향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 김 씨의 소망이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