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예상 깬 시간·장소 택한 미사일 발사로 ‘마이웨이’ 재확인

북한이 28일 심야시간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에 나서면서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채 핵·미사일 능력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지난 4일 ‘화성-14형’을 첫 시험발사한 지 24일 만이다.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에는 침묵하다가 기습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이란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구상에도 빨간 불이 켜진 모습이다. ‘화성-14형’ 1차 시험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응조치가 나오지 못한 상황에서 추가 발사가 이뤄진 만큼, 국제사회의 대북공조에 한층 불이 붙을지도 주목된다.

이번 시험발사가 이뤄진 시간과 장소 역시 이례적이다. 북한은 시험발사를 자정에 가까운 11시41분께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진행했다. 북한이 기상환경에 따라 간혹 오후에 미사일 발사를 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심야시간에 미사일을 쏜 건 처음이다. 또 북한은 주로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 일대와 철산군 동창리 일대에서 미사일 발사를 해왔으며, 자강도에서 ICBM급 및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과시하는 동시에, 예상을 빗나간 장소를 택함으로써 주변국들의 허를 찌르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미 군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정전협정 체결 64주년인 27일 오전 미사일 발사에 나설 가능성에 대비해왔으며, 특히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미사일 발사 징후가 포착됐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이에 북한이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도발을 강행해 한미 군 당국의 대비태세를 교란하거나 요격 가능성을 회피하려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주변국의 예상과 달리 27일을 잠잠히 보낸 후 긴장이 풀어졌을 때를 노려 기습 발사를 강행하려 했다는 것. 고의로 평북 일대에서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노출시키고 실제 발사 준비는 자강도 일대에서 진행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차 시험발사에서 ‘화성-14형’은 지난 4일 첫 시험발사에 비해 더욱 진전된 능력을 과시했다. 이날 발사한 미사일은 최대 고도 3700여km, 비행 거리는 약 1000km였다. 지난 4일 발사한 화성-14형이 최대 고도 2802km, 비행 거리 933km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보면, 이번 발사는 약 900km가량 더 올라갔고 60여km 더 날아간 셈이다. 비행시간 또한 지난 번과 비교해 6분 간 더 늘어났다.

만약 북한이 이 미사일을 정상각도로 쏠 경우, 사거리가 1만km를 넘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강원도 원산에서 발사했을 경우를 가정할 때, 시카고 등 미 북동부 지역이 사정권에 들어갈 것이란 계산이 가능하다. 북한이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미사일로 시험발사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지난 4일 발사에 비해 이번 시험발사에서 사거리가 늘어난 게 기술적 진전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이를 테면,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한 모의 탄두 무게를 줄여 사거리를 대폭 늘리고 이를 기술 진전으로 과시하려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화성-14형’에 주입하는 액체연료량을 늘리거나 줄임으로써 수일 만에 기술 진전을 이뤘다고 선전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두 차례에 걸쳐 모두 ICBM급 미사일 발사에 사실상 성공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탄두 탑재 미사일 능력 수준이 예상보다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와 관련,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발사 다음 날인 29일, 이번 발사를 성공이라고 규정하면서 김정은이 27일 ‘친필명령’으로 시험발사 실시를 직접 지시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또 “실제 최대사거리 비행조건보더 더 가혹한 고각발사 체제에서의 재돌입 환경에서도 전투부(탄두부)의 유도 및 자세조종이 정확히 진행됐으며 수 천 도의 고온조건에서도 전투부의 구조적 안정성이 유지돼고 핵탄두 폭발조종장치가 정상동작했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안정적인 재진입 기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시험발사한 ‘화성-14형’과 관련해선 그간 재진입 기술 확보 여부에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통신에 따르면, 이번 시험발사를 참관한 김정은은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임의의 지역과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대륙간탄도로켓을 기습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시됐으며,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면서 “오늘 우리가 굳이 대륙간탄도로켓의 최대사거리 모의시험발사를 진행한 것은 최근 분별을 잃고 객쩍은(의미 없는) 나발을 불어대는 미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라고 강변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전쟁 나발이나 극단적인 제재 위협은 우리를 더욱 각성 분발시키고 핵무기 보유명분만 더해주고 있다”며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국가방위를 위한 강위력한 전쟁억제력은 필수불가결의 전략적 선택이며 그 무엇으로도 되돌려 세울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전략자산”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한 뒤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가) 동북아 안보구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면서 필요시 우리의 독자 대북제재 방안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외교안보 부처는 미국 등 우방국과 공조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조치 등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면서 “단호한 대응을 북한 정권도 실감할 수 있도록 강력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다각적으로 검토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우리 군의 독자전력을 조기에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라”면서 “잔여 사드 발사대 조기 배치를 포함해 한미 연합방위능력 강화 및 신뢰성 있는 확장 억제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미측과 즉각 협의해 나가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압박과 함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투트랙 기조’를 계속 가져갈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