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탈북민 북송에 혈안인데…‘북송 중단’ 말 없는 南

최근 탈북민 강제 북송에 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탈북민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한 채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안(公安·경찰)에 탈북민 체포를 지시하는 중국 당국은 물론, 중국에 납치조까지 파견해 탈북민 납북에 혈안이 된 북한 정권을 상대로 정부는 ‘북송 중단’이란 메시지조차 공개적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가족을 둔 탈북민이나 북한인권단체 사이에선 북한과의 대화 성사에 주력하는 정부가 과연 북송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겠냐는 데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저자세’ 논란을 부를 만큼 북한에 대화를 요청해도 이렇다 할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려 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다.

이미 북한은 우리 정부를 향해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22일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한국의) 현 집권세력이 박근혜 패당처럼 극악한 반(反)공화국 인권소동에 매달린다면 언제 가도 북남관계는 파국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북대화 재개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정부가 북송을 포함한 북한인권 문제에 적극 나설지 미지수다.

현 정부는 물론 과거 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제3국 체류 탈북민에 대한 법적 보호 조치를 마련하는 데 지나치게 소홀했다는 것. 지난해 3월 제정된 북한인권법도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이나 취업을 이유로 제3국에 일시 체류하는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사실상 국경을 넘어 제3국에 은신해 있는 탈북민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한국에서 거주하다가 납북이 확인된 탈북민들의 신변 확인도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김정은 정권 이후 재입북한 탈북민 25명에 대해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는지 조사하는 과정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이 우리 정부의 조사 요청에 응할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적어도 정부가 ‘우리 국민’으로 인정한 탈북민의 신변 확인을 위해 최소한의 절차라도 밟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정은 집권 이전의 탈북민 납북 혹은 자진 입북에 대한 (정부) 통계 자료는 아예 없다”면서 “북한이 공식 인정한 탈북민 납북 사례 25건에 대해서도 납북된 건지 자진 입북한 건지 확인해보자는 요청을 통일부가 북한에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탈북민 북송과 재입북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국내 탈북민 현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며 뒤늦은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역시 비판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이란 목소리가 많다. 탈북민 강제북송과 납치 가능성을 막기 위한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에 되레 조용히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민들까지 정부 감시 하에 놓이게 됐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중국을 겨냥해 탈북민 북송을 비판하는 데도 외교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외교부 대변인 차원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탈북민들이 가혹한 처벌이 예상되는 북한으로 강제송환 되어서는 안 된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하긴 했지만, 북송에 앞장서는 중국 당국에게 보다 더 분명한 요구를 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미온적인 반응이다.

통일부 당국자도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탈북민의 안전하고 신속한 이송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중국 정부도 잘 알 것이라 본다”면서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 대신 에두른 답변에 그쳤다. 이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탈북민을 ‘불법 월경자’로 칭하고 북송을 계속하겠단 뜻을 시사한 다음 날 나온 우리 정부의 공식 반응이었다.

실제 북송 위기에 놓였던 탈북민들의 가족들은 정부가 탈북민 구명 운동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며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지난 달 중순 중국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 변방구류소에 구금됐다가 최근 북송된 것으로 알려진 탈북민 70여 명(▶관련기사 : “中 투먼서 탈북민 70여 명 끝내 북송”…비극의 끝은 어디에)의 가족들은 ‘정부가 사람 목숨 달린 일을 행정 업무처럼 여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북송 탈북민의 한 가족은 28일 데일리NK에 “중국에 가족이 구금된 사실을 안 직후 정부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탈북민의 신변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대답이었다”면서 “내 가족이 곧 북한에 돌아가 죽을 수도 있다는 데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해주겠다는 말도 없었다. 가족 생사마저 확인해주길 미루는 정부에 뭘 맡길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북송 탈북민 가족은 “외교부에 전화해 가족의 구금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전화 받은 직원들이 하나 같이 ‘우리 부서 담당이 아니다’고 답하며 다른 부서로 전화를 넘기기 바빴다”면서 “(탈북 가족의 신변 안전) 확인 후 전화를 주겠다더니 연락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가 27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중국 정부가 중국에 체류 중인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인권보호 조치를 취하고 강제 북송을 중단하도록 외교적인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북송 중단을 위한 정부 차원의 추가 조치가 이뤄질지 이목이 쏠린다.

한편 탈북민 북송 및 재입북 유도를 위한 북한 당국의 전략은 눈에 띄게 치밀해진 모습이다. 데일리NK가 취재 결과, 최근 몇 년 사이 북중 접경지역에 국가보위성·정찰총국 요원으로 구성된 납치조가 파견돼 탈북민의 동선을 파악하고 납북을 시도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중국 공안 중 일부에게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비공식적으로 탈북민에 대한 반탐 작전을 벌여 납치 작전에 협조토록 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관련기사 : “北파견 납치조, 中 ‘라이푸스 호텔’ 드나들며 탈북민 감시”)

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입을 통해 ‘탈북 후 돌아와도 살려준다’ ‘평양에 살게 해주는 것은 물론 아파트도 준다는 소문을 퍼뜨려 탈북민의 재입북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한국에 정착해 언론에 노출됐던 탈북민이 재입북할 경우 대내외로 선전 효과가 크다고 판단, 유명 탈북민에 대한 납치 시도 및 재입북 회유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탈북민은 “북한은 내부 주민의 탈북을 막기 위해 탈북민 납치에 더욱 혈안이 돼 있다. ‘나가도 다시 잡혀 들어온다’는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탈북민 재입북을 유도해 남남(南南)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도 클 것”이라면서 “최근 재입북한 것으로 확인된 탈북민 임지현(본명 전혜성)을 대외매체인 우리민족끼리TV에만 내보낸 것도 한국 사회에 탈북민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조장하려는 전략이라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