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본 검열, 사생활 감시 北에 우상화 실체 고발로 복수”



▲제6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더 월(The Wall)’이 22일 서울 대한극장에서 상영됐다. 데이비드 킨셀라 감독(가운데)은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직접 목격한 북한 체제의 실상과 영화 촬영 과정 등을 전했다./사진=북한민주화네트워크 제공

“제 영화를 본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감독님, 한국 감독들은 이런 부류의 영화를 만들고자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요. 하지만 저는 한국 감독들이 북한인권 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드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더 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세상을 스스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북한 체제를 고발한 영화 ‘더 월(The Wall)’의 데이비드 킨셀라(52·아일랜드) 감독은 22일 “이 영화는 누군가가 정해준 대로 따르는 게 아닌,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결정할 자유를 그린 작품”이라면서 북한의 현실을 다룬 영화가 한국에서 많이 출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6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북한민주화네트워크 주최) 초청 계기로 방한한 킨셀라 감독은 이날 서울 대한극장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같이 밝히고 “이 영화를 USB에 담아 풍선에 띄워서라도 북한에 보내고 싶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당국의 지시에 따라 살지 않고, 스스로 세상을 깨우치며 살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 ‘더 월’은 체제 선전을 위해서라면 현실 조작도 서슴지 않는 북한 당국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하기 위해 제작됐다. 영화는 킨셀라 감독이 직접 촬영해 온 북한 내부 모습과 아일랜드에 정착한 탈북 여성의 사연을 드라마로 재구성한 장면, 그리고 감독의 고향인 북아일랜드의 종교 차별 문제를 병치해 보여준다.

물론 킨셀라 감독이 처음부터 북한 체제의 모순을 다루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4년 가을 경, 우연히 비행기 안에서 친북 성향의 노르웨이 사람을 만난 것을 계기로 북한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찍어보자는 구상을 했다는 게 킨셀라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원래는 시골에서 사는 젊은 여성 시인의 성장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계획했었다”면서 “그래서 북한에 갔을 때 이제까지 해외에 공개되지 않은 구역을 촬영할 수 있는지 등을 물었지만, 북한 측은 세 명의 여성 출연진을 데려와서는 그들 중 주인공으로 쓰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고 했다. 모두 연기자로 구성된 영화를 찍게 하려던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감독인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영화를 체제 선전에 활용하기 위해 수백 명의 엑스트라까지 동원시킨 북한 당국에 공포심까지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주인공이 음악회에 참석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오케스트라 100명과 관객 500명이 이미 동원돼 북한 측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기가 막힌 대로 오케스트라 연주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북한 측 관리자가 대뜸 달려오더니 이제까지 촬영한 연주 모습을 모두 지우라고 하더라”면서 “이유를 물었더니 ‘연주가 훌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결국 그들의 요구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반복되는 연주 장면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촬영을 마친 후 북측에 ‘혹시 저 많은 사람들을 나를 위해 동원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그렇다. 깜짝 선물(Surprise)이다’라고 답했다”면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건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북한 당국의 촬영 통제는 킨셀라 감독이 호텔로 돌아와서도 계속됐다. 킨셀라 감독은 “매회 촬영이 끝나면 6명 정도 되는 북한 측 감독관들이 와서 촬영본을 모두 검열했다. 5시간 촬영본을 10시간가량 검열한 것”이라면서 “심지어 지난 회차 촬영본도 매번 검토를 다시 해 촬영 막바지에는 300시간을 투자해야 검열을 완료할 수 있게 됐다. 그 수준이 돼서야 북한은 내게 촬영본 사용을 허가해줬다”고 말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촬영 기간 내내 킨셀라 감독의 사생활마저 감시했다. 킨셀라 감독은 “내가 묵기로 한 호텔 거울 뒤에는 감시 카메라가 있었고 도청도 당해야 했다”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북한에서는 외국인들은 악마나 스파이, 적(敵)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이들은 내게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인종차별을 가해놓고, 내 영화로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킨셀라 감독은 당초 구상했던 촬영 계획을 모두 바꿔 그야말로 북한에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촬영 후 편집 작업으로 북한 체제의 모순을 드러낸 킨셀라 감독은 “북한 안에선 당국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촬영을 이어가야 했다”면서 “그들은 긴 시간 내 촬영본을 검열하면서도 내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마치 제임스 본드가 된 기분이었다”고 소회했다.

보름간의 촬영 후 노르웨이로 돌아온 킨셀라 감독은 애니메이션 그래픽을 활용한 풍자 기법 등을 통해 카메라에 담긴 북한의 모습을 완전히 바꿨다.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 측 출연진들에게는 모두 꼭두각시 인형처럼 어깨에 줄을 달았고, 김정은은 뚱뚱한 몸으로 하늘을 날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게 했다. 북한 당국의 삼엄한 통제와 우스꽝스러울 만큼 과장된 우상화를 비웃기 위한 장치들이다.

‘그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을 자유’라는 영화의 주제 의식은 북한 체제의 실상과 킨셀라 감독의 고향 이야기를 병치하면서 더욱 부각된다. 그는 “어릴 적 자란 북아일랜드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에 유혈 충돌이 일어날 정도로 배척이 심했다”면서 “종교가 다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과 ‘네 편 내 편’을 강요했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개인의 생각까지 억압하는 북한 체제의 모순까지 고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인권을 억압하거나 사상과 여론을 조작하는 것을 극도로 거부한다”면서 “영화와 같은 예술이 그러한 억압에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감독들도 북한인권 문제를 비롯해 사람들이 관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영화 ‘더 월’은 지난 7월 아일랜드 골웨이 국제영화제에서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주는 ‘최고인권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내년 1월경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