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향한 왕이 환대, ‘北포용’으로 확대해석 말아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계기 연쇄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5일(현지시간)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만남을 ‘미소’와 ‘환대’로 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이 대북 포용태세로 전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왕 부장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는 ‘턱 괴기’와 ‘손사래’ 등 자칫 외교적 결례로 비춰질 수 있는 제스처도 마다하지 않았고 사드 배치 반대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는 점에서 ‘사드는 잃는 게 더 많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외교가의 입장은 다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토대로 중국이 북핵 공조가 와해될 만큼 북한을 포용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는 무리라는 것. 오히려 이번 ARF에서 사드 배치 문제가 거론될 것을 염두에 둔 왕 부장이 본격 외교정상회의가 시작하기 전 북한이라는 카드를 활용, 일종의 ‘연출 외교’ ‘제스처 외교’를 행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중 외교정상회담이 열린 현장에서는 “사드 문제에 격양된 말도 서슴없이 던지던 왕 부장이 취재진을 내보낸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태도로 윤 장관과 남은 사안들을 논의했다”는 귀띔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부 소식통도 이와 관련 26일 데일리NK에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 여론이 봉합되지 않다보니, 중국도 사드에 대한 자국 입장을 보다 상징적이고 강하게 내비쳐도 된다고 본 것 같다”면서 “윤 장관에게 보인 왕 부장의 손짓이나 리용호를 향한 태도 역시 이를 의식한 연출일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이제까지 외교적 갈등을 빚을 때면 아예 교류를 끊어버리거나, 심지어 상대국 외교 수장과의 만남에서도 ‘무시’로 일관하는 일이 잦았다. 과거 일본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처럼 희토류 수출을 금지하는 초강수를 둔다거나, 남중국해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기자단 앞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에 냉랭한 태도를 연출하던 게 중국의 전형적인 외교 스타일이다.

반면 현재 사드를 둘러싼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왕 부장이 ARF 참석차 라오스를 방문한 첫날 윤 장관을 만나 ‘동료’ ‘의사소통’ 등의 용어를 쓰며 대화 의지를 피력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한중 관계의 냉각만을 점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왕 부장이 윤 장관과의 회담 중 한반도 비핵화와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 이상, 리용호에 대한 왕 부장의 ‘환대’를 곧 ‘북한 끌어안기’로 해석하는 것 역시 지나친 비약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울러 중국 역시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시 사드 문제를 감안해도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남중국해 문제부터 대만 내 친미 정부에 대한 견제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한국과의 관계 유지가 중국에게도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둘러싼 각종 시나리오로 인해 사드 배치에 대한 우리 내부의 균열이 심화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전문가는 “사드 배치 결정의 여파로 일정 정도 중국과의 냉각기가 있겠지만, 중국 역시 이 같은 냉각기가 계속되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라면서 “되레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많은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 그것이 중국으로 하여금 사드 배치에 반대할 명분을 더 실어줄 수 있다. 사드에 대한 한중 간 입장 차를 지속적인 소통으로 풀어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윤 장관은 26일(현지시간) 오후부터 개최되는 ARF 외교장관회의에 참석, 북한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강력히 표명할 예정이다. 특히 의장성명에 북한의 핵개발을 규탄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관련국들을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