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고영희 영화 수거 소동…”유언비어 발생 우려”








▲ 1973년 조선화보에 소개된 만경대 예술단의 공연사진. 빨간 원 안에 있는 여성이 고영희다./데일리NK 자료사진

지난해 북한에서 간부용으로 제작된 ‘고영희 기록영화’를 북한당국이 뒤늦게 수거소동을 벌이고 있다고 내부소식통이 8일 전했다. 김정은 생모(生母)에 대한 우상화 차원에서 시험 제작된 이 영화가 주민들 사이에 무분별하게 확산됨에 따라 고영희 관련 유언비어 발생을 우려한 조치라는 것이다.


평양 소식통은 이날 데일리NK와 통화에서 “김정은 동지의 어머님(고영희) 기록영화가 USB를 통해 일반 백성들에게 확산되자 국가에서 대대적인 수거작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부들에게 우선 배포해 영화 내용을 평가하고 평백성들에게 대한 정치교양 대책을 세우려 했던 것인데, 일반 백성들사이에 이 영화에 대한 소문이 확산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추가 확산을 막는데 힘을 쏟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니’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총 90분 분량으로, 노동당 선전선동부 강연과에서 주관해 지난해 하반기에 제작된 것이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김정은의 성장과 지도자 준비 과정에서의 고영희의 역할을 묘사하는 것을 중심으로 고영희가 생전에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에 동행해 군인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거나 제대후 입당 보증을 서는 등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형상화된 장면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언제 장군님(김정일)과 결혼하셨냐?” “고향이나 가족들은 누구냐?” 등 고영희 개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자, 북한 당국이 수습에 나선 것이다.


고영희의 본명은 고영자로,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약하다 김정일의 세 번째 여자로 발탁됐다. 일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모님’으로 불리는 등 비공식 석상에서는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유선암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고영희는 남한출신(제주도)의 재일교포 2세라는 점과 김정일과 공식 결혼식을 올린 적이 없다는 등의 이유 때문에 그동안 김씨(金氏) 일가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는 공식 등장하지 못했다. 특히 ‘항일 여장군’으로 추앙되고 있는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항일빨치산 경력에 비해 고영희가 김정일과 동거 직전까지 ‘무용수’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급’이 떨어진다고 평가가 있어왔다.


하지만 둘째 아들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공식 확정됨에 따라 언젠가는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북한이 ‘백두혈통’ 논리를 앞세워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김정은 생모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김정은의 생일(1.8)에 조선중앙TV가 방영한 기록영화 ‘백두의 선군혁명 위업을 계승하시어’에서는 김정은이 자신의 생모인 고영희를 언급했다는 대목이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언젠가 2월 16일(김정일 생일)에도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지 않는 장군님(김정일)을 어머님(고영희)과 함께 밤새도록 기다린 적도 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 영화를 봤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 받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누구에게 전해받았는지, 누구에게 전해줬는지를 철저히 해명해야 하며, 앞으로는 확산시키거나 소문내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반드시 써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희 관련 영화의 제작과 수거 소동은 북한이 내세우는 3대세습 논리의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 부계(父系)혈통과 모계혈통의 극단적인 이질성이 향후 김정은 우상화 작업에서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