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신년공동사설 학습

북한인민들은 김일성 시절부터 매년 1월1일 오전 9시에 ‘신년사’를 청취한다. 이날은 신년휴식이라 온 나라 인민들은 신년사를 단체로 시청하거나 개인적으로 시청한다.

김일성은 오전 9시부터 신년사를 발표하는데 약 한 시간을 육성으로 진행하며 조선중앙텔레비전과 조선중앙방송(유선방송과 라디오방송)은 일제히 실황을 중계한다. 김일성의 육성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방송을 보면서 박수를 쳐야 한다. 그래서 30분 정도면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원문낭독도 한 시간 이상이나 걸려서 끝낼 수 있다.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로는 ‘신년공동사설’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신문>, <조선인민군>(군보), <청년전위> (김일성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기관지)에 김정일의 신년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소문에는 김정일의 말이 빠르고 더듬는 ‘떼떼’ 이기 때문에 육성으로는 나오지 않고 글로써만 발표한다고 하지만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당 비서들은 ‘신년사 시청 조직사업’을 하고 1월 3일부터는 노동당중앙위원회로부터 하달되는 신년사학습제강에 따라 전체 인민을 학습시킨다.

신년사는 남한의 신문 크기만한 사이즈의 3개 면에 걸쳐 빼곡히 게재된다. 소책자로도 출판되어 직장별로 학습강사들이 나서서 신년사를 설명해주고, 그 다음 각 시, 군 당조직에서 강연을 진행한다. 학습방법은 ‘외우기 방식’으로 하는데, 신년사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줄줄 외우는 사람도 있다. ‘문답식학습경연’은 직장과 직장, 부대와 부대 사이에 경쟁을 붙여서 등수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1등 한 직장과 부대의 당 비서들은 칭찬을 받고, 못하는 당 비서들은 비판을 받는다.

1996년 1월 어느 날 문답식학습경연이 진행되었는데 나는 신년사 공부를 하나도 하지 못하고 참가하게 되었다. 그래서 채점하는 당 지도원에게 영국산 ‘크라벤’(CRAVEN)담배 한 갑을 사주고 미리 문제가 적힌 표를 하나 구입했다. 남들은 자기가 지명을 받을까 봐 조급했지만 그 표에 대해서 완전무결하게 공부한 나는 마음이 든든했다.

경연방식은 표 수십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먼저 지명된 사람이 임의로 문제가 적힌 표를 뽑아 답을 외우게 되어있다. 예를 들면 ‘올해 신년사에서 제시된 과업부문 세 번째에 대하여’고 적혀있으면 그 부분에 대하여 외우는 것이다. 심사원들은 그 대답을 듣고 점수를 채점한다. 방금 외운 사람이 다른 번호를 지적하면 그 번호의 사람이 일어서서 표를 뽑아 같은 방법으로 외워야 한다. 평가방법은 점수가 제일 높은 사람이 1등으로 된다.

아니라 다를까 내가 찍혔는데 나는 앞으로 나가 탁상 위에 있는 표를 뽑아 슬그머니 구겨 버리고 미리 가지고 있던 문제표의 번호를 대고 일사천리로 쭉 내리 외었다. 담배를 받고 나에게 미리 표를 준 당 지도원은 머리를 끄덕이며 잘한다는 눈인사를 보냈고 당연히 그 경연에서 내가 1등을 하는 영예(?)를 지니게 되었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