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함부로 장군님 이름과 같이 쓰나?”

▲ 연구실에서 수령우상화 해설

70년대 북한에서는 주민들이 이름을 바꿔야 하는 개명운동 바람이 불었다.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물론, 김정숙(김정일 생모), 김형직-강반석(김일성 부모) 등 그 가족들의 이름과 같아도 바꿔야 했다. 지금 북한에 ‘김일성’ ‘김정일’ 등의 이름을 가진 일반 주민은 없다.

70년대는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면서 김일성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된 시기다. 김정일은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해 개명운동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김일성, 김정일 등과 이름이 같으면 ‘불경죄’가 되어 모두 이름을 바꿨다. 또 미국 ‘美’자나, 자본주의 ‘자’를 떠올리게 되는 ‘資’나 ‘子’도 금지된 이름이 됐다.

45년 8월 이전에 출생한 주민들 중에는 김성주(김일성의 본명), 김정일, 김정숙 등과 같은 이름들이 많았다. 해방 후 김일성이 집권하며 이름이 겹쳐지지 않게 작명에 주의했지만,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김정숙이나, 김정일의 존재를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그렇게 지었다.

사회안전부(경찰) 주민등록과의 개명 통보가 내려지자, 주민들은 이름을 바꾸었다.

필자의 윗집에서 살던 할머니도 1913년 생으로, 본명은 김정숙이었다. 그도 70년대 후반 김정숙 우상화가 시작되면서 이름을 ‘김연숙’으로 바꾸었고, ‘김성주’로 불리던 사람도 하루 아침에 ‘김명주’로 바뀌었다.

이름에도 계급주의 분명해야

알려진대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의 이름을 ‘존칭 수식어’ 없이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유일체제가 완성되면서 김부자는 신과 같은 존재로 되어왔다. 즉 신과 사람의 이름이 같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호명할 때 존엄성이 없어진다는 것이 개명운동의 이유였다.

김일성, 김정일을 호칭할 때 수식어는 으리으리하다. 김일성의 경우 ‘우리당과 우리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라고 칭한다. 김정일은 ‘우리당과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으로 표기해야 한다. 김정숙은 ‘불요불굴의 공산주의 혁명투사이신 존경하는 김정숙 어머님’이라고 칭한다.

70년대 이후 당조직과 근로단체들은 ‘지주, 자본가는 착취계급’이라는 선전자료를 내려보내고, 매일 같이 이른바 교양강연을 진행했다. 이 때문에 자산계급에 대한 혐오사상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사회안전부 주민등록과 문건에는 한자표기가 되어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주민이 “나는 자본주의 자(資)자를 쓰지 않고, 아들 자(子)를 쓴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美’의 경우도 그렇다. “‘미’자는 미국놈을 뜻한다”는 것이다. 딸들에게 ‘미자’ ‘미순’ ‘장미’라고 이름을 지어준 부모들은 “미국은 쌀이 많아 미(米)자를 쓴다고 했는데, 아름다울 미(美)자는 미국을 뜻하지 않는다”고 고집했지만, 거의 다 고쳐졌다.

이 때문에 애를 먹느 사람은 우편 배달부들이었다. 편지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성명이 불분명해 되돌아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부모들과 소꿉친구들은 대체로 원래 이름을 불러준다. 그러다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미’자는 복권됐다. 미국과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졌고, 부모들이 딸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느라 ‘미향’ ‘미선’ ‘향미’와 같은 이름이 유행하자 그냥 자연스럽게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 김정일 가계와 관련된 이름은 여전히 엄금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