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北인권포럼’ 급조 날림구성

지난 5년간 북한인권 거론을 반대해온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위원장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가 새 정부 출범후 북한인권 자문기구인 ‘북한인권포럼’을 급조하면서, 다수의 비전문가들과 과거 북한인권 거론 반대론자까지 참여시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등 지난 10여 년간 북한인권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해온 실력있는 전문가들이 이에 항의 탈퇴했고, 정학진 대한변협 북한인권소위 부위원장 등도 참여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통일연대’ 등 과거 친북좌파 단체 출신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때문에 ‘인권위’가 그동안 북한인권 거론을 반대해온 인사들을 대거 참여시킴으로써 ‘북한인권포럼’을 통해 도리어 북한인권 문제를 희석시키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인권 반대론자와 비전문가들을 다수로 하고, 전문가들은 소수로 함으로써 전문가들을 들러리로 세운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최근 ‘데일리엔케이’가 입수한 최초 ‘북한인권포럼 구성 기획안’은 다음과 같다.

김귀옥(한성대 교수), 김근식(경남대 교수), 김동균(변호사, 前 통일연대 변호사), 박명림(연세대 교수), 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서보혁(이화여대 연구교수),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성장(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배명복(중앙일보 논설위원), 이대근(경향신문 논설위원), 윤여상(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정학진(대한변협 북한인권소위 부위원장), 유호열(고려대 교수), 김수암(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김태진(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 이금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며 공동대표는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과 심영희 한양대 교수로 되어있다.

이 중 윤여상 소장은 “인권위가 그동안 북한인권문제와 관련해 활동해왔던 인사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실제 북한인권문제 개선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며 15일 정식 탈퇴를 선언했다. 또 정학진 대한변협 북한인권소위 부위원장은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호열 교수는 “이번 인권포럼에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들이 참여하는지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인권포럼 참여자 중 김귀옥 김근식 김동균 박석진 서보혁 이우영 정성장(이상 직책 생략) 등은 평소 북한인권문제 거론을 반대하거나, 탈북자들의 인권유린 실태에 관한 증언이 과장되었고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온 인사들이다(아래 ‘발언록’ 참조). 또 박명림, 배명복, 이대근 등은 평소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이 없던 비전문가들이다.

따라서 김수암, 이금순과 북한 정치범수용소 출신인 김태진 등 3명 정도만이 전문가 또는 유경험자로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인권위가 교묘하게 인적 구성을 함으로써 전문가들을 들러리로 세운 다음, 북한인권문제를 희석시키거나 대충 때우려는 관료주의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그동안의 태도에서 돌변, 북한인권문제를 주요 어젠더로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올해 6대 중점사업 과제 중 하나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활동 강화’를 내걸었다.

인권위는 지금까지 헌법 제3조를 무시하면서 인권위 활동의 적용영역에서 북한지역을 배제해왔으며, 이 같은 내용은 아직 국가인권위법에 명기돼 있다.

이와 관련, 인권위 관계자는 15일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다양한 쟁점들에 대한 전문가들의 공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 구성하게 됐다”며 “이슈별, 사안별에 따른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공간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포럼에 참가하는 전문가들을 선정한 기준에 대해 묻자 “북한인권의 ‘전문성’을 봤다”고 답했다. 그러나 “북한인권 관련 논문이나 국가인권위원 추천 등과 같은 객관적 기준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북한인권 전문가라면 다 알지 않느냐”며 답변을 얼버무렸다.

이에 기자가 전문가 선정 기준에 대해 재차 묻자 “(구성원의) 성향을 분석해서 이념의 덫을 씌우려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 인권포럼 참여자들의 성향이 편중돼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인권포럼 탈퇴를 선언한 윤여상 소장은 “인권위의 취지는 알겠지만, 구성원의 상당수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고,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해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합리적인 논의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 (포럼 참여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김윤태 사무총장은 “인권위가 자기들의 기준에 따라 좌우 진영을 적당히 배치하려고 한 것 같지만, 이러한 구성으로는 북한인권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따져야 하는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올바른 북한인권정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모여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권위가 북한인권문제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 우려스럽다”며 “구색 맞추기식 접근으로는 북한인권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을뿐더러 탁상공론에 그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북한인권포럼’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법륜 이사장과 심영희 교수부터 북한인권 분야의 전문가라고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륜 이사장은 지난 10년간 대북지원 활동을 주로 이끌어왔으며, 심 교수도 ‘평화를지키는 여성회’ 공동대표를 지내는 등 반전평화운동에 주력해왔다.

참여하는 전문가의 대다수 또한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것 자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왔다. 북한인권에 대한 언급이 북한을 자극시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또한 북한 자체의 인권 기준을 존중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을 주장하기도 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북한의 대표적인 인권침해로 거론되는 공개처형의 경우 중국의 공개처형, 싱가포르의 태형, 미국의 전기의자 사형 등 문화의 특수성에 따른 예방범죄 차원의 고유한 행형절차의 성격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서보혁 이화여대 연구교수도 기고문 등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인권상황에 관해서도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평가가 서로 다른데, 직접적 사실 확인이 곤란한 북한의 경우를 단정으로 말하는 것은 과도하고 무리한 평가”라고 평가했었다.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의 경우 “근대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인권 기준만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집단주의적 사회주의 인권론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토론회에서는 “체제 경쟁에서 비롯된 이북의 정치적 자유 제한은 이남의 국가보안법을 통한 정치 사상의 자유 제한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북한인권문제의 성격을 규정했었다.

이 외에도 이들 전문가들은 유엔 차원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나타내왔다. 서 교수의 경우 “유엔 인권위와 총회의 북한인권 결의가 인권의 ‘보편성’을 담보할 만큼 공정하냐”고 지적하며 우리 정부의 기권 표결을 옹호했었다.

또한 “유엔에서 논의되는 모든 인권 논의들을 순수하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김동균 변호사의 경우에는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대해 “북한에 대한 무력침공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김 변호사는 국내 대표적인 친북통일단체인 통일연대의 변호사를 맡기도 했다.

북한인권문제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탈북자들의 증언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교수는 “북한인권에 대한 기존의 논의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적잖은 부분에서 사실관계의 신빙성을 부여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사실왜곡의 가장 대표적인 가능성은 탈북자 증언에서 비롯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인권위는 20일 ‘북한인권포럼’ 참가자들에게 위촉장을 전달하는 것을 시작으로 포럼 첫 모임을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