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리비아와 많이 다른 것 아시죠?

우리정부가 북핵문제 해법의 일환으로 리비아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한 미 일 중 러 등 관련 당사국들은 한반도비핵화가 최종목표인 만큼, 북한 내의 핵프로그램은 완전폐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다만 김정일 정권이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정권보장과 경제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2급 비밀문서인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일일정보’ 문건에서도 나타났듯, 한국 정부에서 리비아의 원수 카다피의 평양방문을 계획하는 등 북핵의 리비아식 해법은 여전히 잠복성을 갖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던 지난해 7월 부시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은 카다피와 이야기해보라”면서 북한 핵문제의 리비아식 해법을 언급한 바 있다.

북핵문제의 해법이 각계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핵문제가 비교적 원만하게 처리되었다고 평가받는 리비아나 우크라이나의 사례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카다피처럼 친미(親美)로 전향하고 막대한 보상을 받으면서 정권을 유지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북한은 리비아식 해법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할까?

◊ ‘리비아식 해법’이란?

2003년 12월 19일 리비아 외무부는 “리비아는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국제규약상 금지된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폐기키로 했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국가원수인 카다피도 관영 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여기에는 물론 핵무기 개발계획의 포기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선언에 따라 리비아는 일단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에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일체의 자료를 제출하였고, 해당 국제기구에 폐기계획서를 제출한 후 사찰관들의 입회 하에 발 빠르게 무기 폐기 작업을 진행하였다.

리비아는 성명에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9개월간 영국의 정보기관과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단은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의 무조건적 폐기선언을 하고 나면 무엇을 해준다”는 내용의 합의를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대가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제재 해제’와 ‘안전보장’이 대가일 것이라는 추측은 삼척동자도 가능한 일이다. 최근 카다피는 “약속만 있었을 뿐 아직 아무것도 가시화된 것이 없다”며 미국와 영국 등의 보상이 흡족치 않다는 불만을 토로한 바 있는데(타임지 2005년 2월 7일자), 여하튼 리비아의 사례는 ‘조건을 명시 않은 선(先)폐기’의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핵의 경우에서만 보자면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 폐기 선언 이후 9일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이 수도 트리폴리 인근 핵시설 네 곳을 사찰하도록 했으며 그동안 핵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제출하였다. 또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 서명하였다. 사찰결과에 따르면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은 매우 초기단계에 불과하며, 관련시설은 이미 해체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핵의 리비아식 해법이란 △북한이 먼저 핵의 완전한 폐기를 선언한 후 △NPT체제에 복귀, IAEA의 완전한 사찰을 받고 △개발된 핵무기를 해체함과 동시에 핵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한 시설을 다시 가동할 수 없도록 조치하며 △그에 대한 보상을 협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상내용이 사전에 비밀리에 협의될 수도 있지만 보상조치는 북한의 행동 이후에 취해져야 한다.

따라서 실은 미국이 지금까지 주장해 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와 다를 바 없는 방식이다.

◊ 핵에 미련 없는 리비아 vs 핵에 ‘올인’한 북한

북한은 리비아의 같은 길을 택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대단히 회의적이다.

우선 리비아는 핵무기뿐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전반의 폐기를 선언했다. 즉 모든 것을 패키지로 내던지고 보상을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핵문제가 그럭저럭 해결된다고 해도 생화학무기, 기타 재래식 무기, 나아가 인권문제 등 이어질 것이 수없이 많다. 북한의 핵문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또한 리비아의 핵은 무기급에 전혀 이르지 못한 핵이었다.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리비아의 핵시설을 둘러본 후 “내 느낌으로 리비아가 핵무기를 생산하려면 최소 3년, 최고 7년은 걸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은 스스로도 ‘완전히 개발하였다’고 주장하고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도 전문가들도 핵무기와 숫자와 성능에는 차이가 있지만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이야기하는 핵이다. 이렇게 연구단계에 있는 ‘핵’과 ‘핵무기’가 서로 같을 수 없다.

물론 핵무기도 폐기하려고 맘만 먹으면 충분히 폐기할 수 있지만 그동안 핵무기에 별로 투자해 놓은 것이 없었던 리비아와 핵무기에 모든 것을 다 걸다시피 했던 북한이 같을 수 없다. 리비아는 아쉬울 것 없이 핵을 버릴 수 있지만 북한은 대단히 미련이 남는 핵무기이고, 또 그것이 생존의 최후수단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쉽사리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리비아는 NPT 가입국가가 아닌 상태에서 나중에 스스로 핵프로그램을 공개했을 때 상당히 의외로 평가 받았지만 북한은 그동안 NPT 체제를 끊임없이 교란하면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왔다.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입장에서 북한이 ‘백기투항’을 한다 한들 과거를 그저 ‘없던 일’로 덮어주기가 애매하다.

◊ 미국과 악수할 수 있는 ‘카다피’ vs 절대로 질 수는 없는 ‘김정일’

“북한이 리비아의 방식을 따를 수 있겠는가”하는 질문은 “김정일이 카다피의 방식을 따를 수 있겠는가”로 돌려 물어도 좋다. 역시 답은, 안타깝지만 “No”이다.

카다피와 김정일은 우연하게도 1942년생 동갑이다. 1969년 27살의 나이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카다피는 올해로 36년째 집권하고 있다. 김정일이 북한 정치의 일선에 등장한 시기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카다피의 인생과 정치 역정은 김정일보다는 김일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긴 했으나 카다피는 리비아 국민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고 사회주의와 이슬람을 결합시킨 강력한 아랍민족주의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자신의 이상과 야망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민주개혁을 미루고 장기 집권한 문제 등은 있으나 내치(內治)에 있어 치명적 문제는 별반 없다.

반면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광을 업었을 뿐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을 만한 카리스마가 없고, 리비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인권탄압을 일삼아왔던 점 등 약점투성이의 인물이다. 오히려 후세인이나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 쿠사이에 가깝다.

김정일은 핵을 내적 구심력 확보를 위한 결정적 수단으로 삼고 있어 이것을 포기하면 자신의 정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같다. 북한의 핵에는 대외협박용이라는 성격과 함께 내부단속용이라는 두 가지 성격이 혼재되어 있는 점이 여느 나라와 다르다.

카다피는 아랍민족주의를 주창하며 계속 반미의 입장에 서오긴 했지만(그의 수양딸이 미군의 폭격으로 죽기까지 했다) 내적 어려움을 오로지 “미제국주의자들의 탓”으로 돌리며 이것을 국가존립의 근거처럼 활용해 온 김정일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다.

그래서 거칠게 표현하자면 “카다피는 미국와 영국의 품에 안길 수 있지만 김정일은 절대 그럴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카다피는 대량살상무기를 전량 폐기하는 어찌보면 ‘굴욕적인’ 조치를 취하고도 지금껏 건재하고 있지만 김정일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즉각 내부의 반격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 수령이 세상 최고”라는 신화가 무너진 북한에 김정일이 설 자리는 없다.

 

리비아

북한

핵의 수준

개발의 수준

완성의 수준

핵의 성격

초보적 준비

본격적인 대외협박,내부결속용

논의대상

대량살상무기 자발적 폐기

핵문제 후 여타 문제 제기될 것

핵전력

NPT가입국 아니었음,
핵문제 이슈된 적 없음

계속하여 NPT체제 교란,
국제적 골칫거리

국내사정

카다피 지지도 높음,
심각한 경제사정 없음

폭정에 의한 지배,
장기적 경제난

The DailyNK 분석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