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 ‘김장전투’ 한창

▲ 지난 28일 두만강가에서 집단으로 배추를 씻는 북한 주민들 ⓒ DailyNK

최근 중국산 김치 위해성 논란으로 ‘김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역시 하나의 겨레, 동포인지라 북한 주민들도 김치 없인 못 산다. 그러나 김치사정은 남과 북이 많이 다르다.

남한에서 살면서, ‘남한은 김장철의 의미가 별로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시장, 슈퍼마켓마다 제철에 관계없이 갖가지 신선한 야채와 김장재료들이 가득 쌓여 있고, 집집마다 커다란 냉장고가 있으니 언제 담그든 신선한 김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에는 ‘김치냉장고’라는 것까지 따로 있다는 말을 북한 주민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김장이 한창일 때다. 이 시기에 김장을 담그지 못하면 내년에 김치구경을 할 수도 없다. 북한에서는 중요한 일에 ‘전투’라는 군사 용어를 쓰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봄에는 모내기 전투, 여름에는 풀베기 전투, 가을에는 가을걷이 전투, 겨울에는 영농전투……. 김장철에는 ‘김장전투’란 말을 사용한다. 전투적으로, 이 시기에 반드시 김장을 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10월부터 김장이 시작된다. 최북단인 양강도, 함경북도에서는 10월 중순이면 김장이 시작된다. 11월로 접어들면 함경남도, 자강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등 북한 전 지역이 김장전투로 들끓는다. 김장전투가 시작되면 시내와 거리, 마을 등 보이는 곳마다 운송도중에 떨어진 배춧잎으로 지저분해진다.

◆ 모닥불 피워놓고 배추밭을 지킨다

무, 배추도 식량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에게 배급하는 형식이다. 원칙적으로는 협동농장에서 재배한 무, 배추를 주민들에게 공급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순부터 협동농장의 남새(채소)밭을 각 기관, 기업소와 군부대에 할당해 나눠주고 각자 알아서 남새를 재배해 먹도록 하고 있다. 비료, 농약 등 자재가 부족하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직장의 생산활동을 하면서 휴일이나 여가시간에 협동농장 남새밭에서 김장용 배추, 무를 가꿔야 한다. 수확철이 되면 직장단위로 포전(밭)마다 저울을 가져다 놓고 그동안 재배한 배추와 무를 개인에게 분배한다. 배추는 어른 1인당 70~80kg, 무는 15~25kg 정도씩 공급한다.

따라서 대가정의 경우 1톤 이상의 김장을 담그게 된다. 김장 배추와 무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와 트랙터는 물론 소달구지, 지게 등 모든 운송수단이 총동원된다. 참으로 진풍경이다.

또 하나의 진풍경은 수확이 임박할 무렵 포전에 있는 배추와 무를 지켜내는 일이다. 도둑이 많기 때문이다. 캄캄한 밤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배추, 무를 지키는 사람들로 여기저기 포전이 북적댄다. 김장이 ‘반년식량’이기 때문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김장의 특이점은 아파트 마당에 창고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창고바닥에 ‘김치움’이라는 큰 구덩이를 파고, 크고 작은 김치 독을 들여놓는다. 위쪽에는 연탄이나 땔나무를 저축해 놓는다.

식량난이 악화되면서 김치도둑이 극성을 부렸다. 김치움이 있는 창고에 자물쇠를 채우고 쇠살창을 끼우는 등 방범장치에 신경을 쓰지만 김칫독을 통째로 도둑질해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 김장철 되면 천정부지로 값이 오르는 양념감

▲ 함경도식 배추김치

고춧가루를 비롯한 조미료, 양념감은 각자 해결한다. 주민들은 여름 내내 빨간 고추를 실에 꿰어 창문턱에 매달아 놓았다가 가루를 내 사용한다. 마늘은 주로 개인 텃밭에서 재배하여 사용한다.

김장철이 되면 고추 값과 마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장사꾼들은 양념감을 비축해 놓았다가 김장철에 값을 올려 한몫 잡으려 한다. 대체로 고추가루 1kg의 값은 노동자 1~2개월치 봉급에 해당한다. (2005년 10월 함경북도 회령시 장마당에서 고추가루 1kg의 가격은 3500원 가량. 노동자 1~2개월분에 해당한다. – 편집자 주)

소금은 주로 식료상점에서 배정했는데 1990년 이후 경제난으로 제염소(製鹽所)에서의 소금생산이 재대로 되지 않아 전혀 공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자들이 은밀한 경로로 소금을 유입해 장마당 장사꾼들에 의해 고가에 팔린다.

또 양념감으로 원산, 함흥, 청진 등 동해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는 명태가 흔히 쓰이고 황해도, 평안도 등 서해 쪽에서는 잡어(크고 작은 잡고기를 절인 것), 까나리, 새우젓 등을 많이 쓴다.

이런 것들을 바닷가 마을에서 헐값으로 사다가 내륙지방 장마당에서 고가로 팔기도 한다. 일부 수산물 상점에서 공급하는 경우도 있는데 비리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젓갈에 맹물을 가득 넣어 팔기 때문이다.

◆ 김치 담그는 방식에서 빈부격차 드러나

▲ 평안도식 백김치

김치 담그는 형식은 남한과 비슷하지만 양념 묻히는 것이 지역마다 약간 차이가 있다.

함경북도, 양강도 지역에서는 마늘과 파, 고춧가루를 버무려서 양념을 만들고 초절임한 배추포기마다 속을 넣고 독에 차곡차곡 넣어 둔다. 3~4일 후에 소금물과 젓갈을 끓여 김칫독에 붓는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쌀죽을 만들어 넣는 경우도 있다.

평안남도나 황해도 지역에서는 무를 채로 쳐서 마늘, 파, 고추가루를 버무려 양념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며 백김치를 많이 담근다.

갓김치나 염장김치를 만들거나 닥광(단무지)를 담그기도 한다. 염장김치는 특별한 양념없이 순전히 소금에 절인 김치다. 주로 인민군대나 대학기숙사와 같이 집단생활을 하는 곳에서 많이 만든다.

북한에 ‘염장 무 삼형제’라는 말이 있다. 군대나 대학의 급식에는 3~4가지의 반찬을 보장하라는 규정이 있는데 단위 사정상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염장 무를 여러가지 모양으로 썰어 식판 위에 올려놓는다. 그럴 때 군인과 학생들이 “오늘 또 ‘염장 무 삼형제’가 올랐군” 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북한의 애처로운 경제상황을 느낄 수 있는 말이다.

김장감 마련의 사정은 그 집의 권위와 경제적 형편을 잘 말해준다. 권력 없고 경제 사정이 궁핍한 가정은 백김치를 담그는 방법밖에 없다. 올해 ‘김장전투’는 궁핍한 사람들의 배를 채우는 전투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주일 논설위원 (평남출신, 2000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