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제발 북한공부 좀 해라”

‘데일리엔케이’에 최초 공개된 북한 반체제 동영상과 관련, 국내 방송사가 ‘기획촬영’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말하자면 북한 내부와 연결된 사람이 ‘돈을 받고’ 기획해서 찍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비디오 제작에 외부 세력이 개입했는지, 동영상 입수 과정에서 금전거래가 있었는지가 이들의 유일한 관심인 셈이다.

국내방송의 이러한 접근은 그간 이들이 북한인권 문제, 탈북자 문제에 대해 보여준 방송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언론은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참상과 근본원인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은 외면하면서 일부 탈북자 증언에 의혹 씌우기, 탈북 브로커 문제 이슈화, 남북관계 악영향만을 이슈화 시켜왔다.

‘자유청년동지회’ 조직원 아니면 촬영 불가능

이번에 공개된 동영상은 그동안 외부에 알려진 반체제 활동에 비해 크게 진전된 정보를 담고 있다. 과거 대표적인 반체제 사건이었던 97년 <무력부 6군단>사건은 그 규모와 파장이 어마어마 했지만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탈북자 증언을 통해 국경도시에 <진달래회>나 <압록강동지회> 이름으로 반체제 전단이 뿌려진 것이 국내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반체제 활동 현장이 영상에 담겨져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체제 조직의 실체가 확인되고 그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동영상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영상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이것이 북한 내에서 촬영되었다는 점, <자유청년동지회>가 직접 격문을 제작하고 붙였으며 성명을 낭독했다는 점, 성명의 내용을 볼 때 인텔리 계층이 참여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사전 준비가 치밀하고 기획, 제작, 외부 제공까지 완벽하게 처리했다는 점에서 현 북한의 현실에 비춰보면 상당히 준비된 세력의 행동임을 추정할 수 있다.

동영상에는 촬영자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고 공개된 장소에서 활동은 담고 있지 않다. 또한 <자유청년동지회>에 대해서도 일체의 사실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것은 북한에서 반체제 활동이 어떤 탄압을 가져오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만약 촬영자가 체포된다면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전원이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게 되고 후손들은 대대로 반역자의 낙인이 찍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북한의 ‘연좌제’는 과거 남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3족을 멸한다’는 식의 과거 봉건사회와 오히려 공통성이 더 많다. 50년대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온 대숙청 과정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일부 방송사들은 과거 남한식 반정부 활동을 떠올리며, ‘왜 삐라 살포 장면이 없느냐’ ‘성명 낭독자 얼굴은 왜 안 나오느냐’ ‘격문 주변에 왜 사람이 모여들지 않느냐’는 식의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고 자체가 과거 남한식 반체제활동 모습에 묶여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에 대해 ‘자기가 아는 만큼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동영상에 공개장소에서 성명을 낭독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담겨져 있었다면 더 완벽(?)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내 반체제활동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사례라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조직의 실체를 명확히 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반체제 활동을 벌였다면 모든 의심을 거두었겠지만 그것은 현 김정일 정권 하에서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 조직이 온전할 수도 없다. 자신들이 북한에서 활동하는 민주주의 세력이라는 사실을 남한언론에 한번 ‘통 크게’ 증명해주기 위해 자기의 지하조직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것은 ‘운동’ 초보자라도 다 안다.

이번 동영상에 나타난 바에 따르면 북한 땅 회령에 ‘자유청년동지회’라는 조직이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고, 이들이 격문을 제작하고, 붙이고, 성명을 낭독했으며, 이 사실이 공개적으로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또 어떤 기자들은 다른 장소에서 격문, 성명서를 미리 제작하여 읽고 동영상에 갖다붙인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회령시 대덕리 입구 다리 상판 밑에 격문이 붙어 있었던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을 돈 몇푼 벌기 위해 외부사람이 ‘기획’해서 일부러 갖다 붙이고 촬영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외부인의 북한 내부 촬영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판에, 잡혀가서 죽을 일을 뻔히 알면서 누가 그런 일을 자청하겠는가. 이는 <자유청년동지회> 조직원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또 18일 저녁 8시, 9시 KBS, MBC 뉴스는 동영상 제작 및 외부 유출문제와 관련, ‘금전수수’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부각시켰다. 북한 내부를 촬영하는 데 돈이 들어간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또 반체제 활동을 하려면 조직을 꾸려가는 데 돈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초점은 ‘돈이 드는’ 문제가 아니라, 북한 내부에 반체제 조직이 있느냐 없느냐, 반체제 활동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이다. 방송사들은 이같은 본질적인 문제는 보지 않고, 지극히 주변적인 문제인 ‘돈’이 유입된 것 아니냐는 엉뚱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북한사정을 알면서 그런 보도행태를 보였다면 치졸한 물타기 수법이고, 북한사정을 모른다면 남한식 사고를 잣대로 북한을 보려는 주관주의에 빠진 보도행태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증’도 제대로 알고 해야

국내언론, 특히 방송사 기자들이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6군단 사건>의 실체도 잘 알고 있지 못한다. 또한 최근 북한 내에서 반김정일 의식이 적잖이 확산되고 있으며 반체제 삐라와 격문이 발견된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에도 관심이 없다. 한마디로 믿고 싶은 사실만 믿고, 보고 싶은 사실만 보려는 전형적인 주관주의 행태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자유청년동지회>가 국경지역 소규모 반체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도 감을 잡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동영상을 전달받은 협조자(혹은 브로커)가 돈을 받은 것은 아닌지, 제 3자에 의한 ‘기획촬영’이 아닌지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행태를 스스로는 ‘검증'(confirm)한다고 말한다. 검증해야 한다는 것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뭘 알아야’ 검증도 제대로 할 게 아닌가. 검사가 수사기초도 모르고 수사를 할 수 없듯이, 북한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 정도는 알아야 북한관련 문제를 제대로 검증할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번 동영상이 제공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의혹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동영상에 대한 첫 방송부터 의혹을 제기하고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외부에 반체제 활동을 전달하고자 한 <자유청년동지회>에게 국내언론은 더 많은 위험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과연 <자유청년동지회>에 그러한 요구를 할 만한 자격이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북한인민들은 자신들 스스로 자유와 인권을 쟁취할 수 있는 존재이다. 현 지구상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가장 필요한 곳은 북한이다. 따라서 그들을 지원하고 북한 내 민주주의 활동이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사명이다. 언론도 적어도 이 정도의 지점에는 초점을 맞추어 주어야 옳다.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도 손가락만 보면서, 손가락에 뭐가 묻어있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황색언론’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진짜 ‘사소한’ 부탁 한가지 하고 싶다. KBS, MBC 관계자들, 제발 북한공부 좀 해라.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