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 폭파범 김현희 가족 청진에 살고 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인 김현희 씨의 가족이 폭파 사건 이후 평양에서 함경북도 청진으로 강제 이주돼 25년 동안 다중(多重)의 감시망 속에 살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함북 청진에서 김 씨 가족과 자주 교류하며 지냈다는 탈북자 최현성(가명) 씨는 28일 데일리NK와 만나 “김 씨의 남동생과 어머니가 1988년 평양에서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 역전동의 낡은 아파트로 강제 이주 당한 뒤 25년간 생활고를 겪으며 어렵게 생활해 왔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KAL기 폭파 이후 지금까지 관련 혐의를 부인해오고 있다. 북한은 김 씨가 자신이 북한 공작원임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이들을 외부와 단절시키기 위해 청진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으로 보인다. 청진으로 이주하면서 과거의 직장이나 학업은 모두 포기해야 했다.


남한에서는 김 씨가 전향한 이후 가족들이 수용소에 수감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 직접 교류한 탈북자를 통해 김 씨 가족이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가족 근황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 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 씨의 아버지는 3년 전 병으로 사망했다. 어머니는 연로(年老)해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한 채 방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친언니도 사망했고 남동생만 공장에 다니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김 씨의 부친은 KAL기 폭파 당시 앙골라주재 북한무역대표부 수산대표로 파견원으로 나가 있었다. 그러나 김 씨가 당연락소 공작원으로 선발될 때부터 딸 걱정 때문에 ‘심화병(心火病)’이 심했다고 한다. 


KAL기 폭파 이후 북한 외무성은 노동신문에 KAL기 폭파범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성명에는 ‘금성중학교 졸업생 중 김일성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학생이 없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읽은 김 씨 주변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김현희가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한다.   


김 씨는 한국에서 KAL기 폭파 증언을 통해 ‘자신은 북한의 당연락소 공작원으로 금성중학교 재학 당시 김일성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학생’이라고 밝혔다. 김 씨 주변에서는 북한 당국이 거짓말을 한다는 점을 알아챘기 때문에 KAL기 폭파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점을 짐작했다고 한다.    


KAL기 폭파 사건 직후 중앙당 지도원들의 김 씨 가족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심해졌다. 폭파 사건 이후 김 씨를 담당했던 지도원이 집에 찾아와 김 씨의 사진을 모두 가져갔다. 이후 김 씨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말 것을 강요받았다고 한다. 


당시 외국에서 급히 소환되어 온 김 씨의 부친도 가족들을 모아놓고 “그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로 의견을 표현하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최 씨는 전했다. 


이후 김 씨의 가족들은 평양시 서성구역 아파트로 강제 이주를 당한 뒤 다시 현재의 청진시 청암구역 역전동의 낡은 아파트를 배정받아 생활하고 있다.


최 씨는 남동생이 대학을 중퇴하고 직업도 마음대로 구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외국어대학을 다녔던 경험과 끈질긴 노력으로 무역기관 노동자 신분으로 출발해 지도원 직위까지 승진했다고 말했다.


이후 3년동안 지배인 업무를 봤지만 업무 중 발생한 문제로 현재는 노동자로 좌천 당해 생활하고 있다. 그의 부인은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데일리NK는 가족 소식과 관련 김현희 씨에게 수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