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폭파 北 소행 주민들도 알고 있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편 폭파 사건 당시 북한 대남 공작부서에 근무했던 한 탈북자는 “나를 포함해 대남 공작 부서 근무자들은 즉각적으로 우리가 한 테러라는 것을 알았고, 당시부터 ‘우리 공작원 마유미 사건’으로 불렀다”라고 말했다. 김현희는 KAL기 폭파 공작 당시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 이름으로 위조 여권을 만들어 활동했다.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KAL기 폭파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7년 국정원 과거사조사위가 북한의 지령에 의한 테러라는 점을 확인하기 전까지 안기부 배후조작설 등의 음모론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정작 북한 주민들은 북 소행을 직감했다는 것이다.


이틀 전 데일리NK가 전한 ‘KAL기 폭파범 김현희 가족 청진 거주 기사’를 읽은 한 탈북자는 31일 익명을 전제한 전화 제보를 통해 “내가 근무했던 대남 기관에서는 폭파 사건 발생 후 며칠 내에 북한의 행위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상부에서는 철저히 기밀에 부쳤지만, 북한 당국이 며칠 간 계속해서 부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테러행위를 저지르고 대응하는 전형적인 모습인 걸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남 공작부서에 강연을 하기 위해 평양에서 내려온 책임 간부들은 종종 대남 테러 행위가 우리의 행동임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었다”라고 말했다. 이 탈북자는 “일반 주민들도 40대 이상은 칼기 폭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북한이 김현희의 존재를 부인하는 성명을 냈는데 이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KAL기 폭파 후 김현희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파견된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금성중학교 재학시절 김일성에게 꽃다발을 줬다”라며 자신의 이력을 공개하자 북한은 이를 부인하기 위해 ‘금성중학교 졸업생 중에는 꽃다발을 준 사람이 없다’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당시 꽃다발을 전달하는 장면을 지켜본 사람이 수백 명인데도 북한이 이런 사실이 없다고 하자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이 직감했다고 한다.


또한 김현희가 다니던 평양외국어대학에서도 사건 발생 후 외신에서 ‘김현희’라는 이름이 나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직원과 학생들 사이에서 ‘공작원으로 뽑혀간 김현희가 이 사건과 관련된 것 같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고 한다.


이 탈북자는 사건 발생 당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남동생은 주위 친구들로부터 ‘너희 누이가 관련된 사건이 아니냐’는 질문을 계속 받았고 즉시 감시가 붙자 그런 의심은 확증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평양외국어대학 학부모 중에는 중앙당과 외교부, 해외근무자가 많아 이 같은 소식이 금세 전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한 소문은 도·시당 간부들이 평양 출장 중에 전해 듣고 지방에 내려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에게 전하면서 빠르게 퍼졌다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당국이 벌인 도발 행위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라고 이 탈북자는 말했다. 


KAL기 폭파 사건 발생 이후 김 씨의 가족은 평양에서 함경북도 청진으로 강제 이주돼 25년 동안 다중(多重)의 감시망 속에 살아오고 있는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KAL기 폭파 사건 이후 당·보위기관에서는 김 씨에 대해 부모와 남동생에게 절대로 발설하지 말 것을 지시해 주변 사람들도 그들의 가족관계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한다. 김 씨 가족 청진 거주 사실을 처음 전했던 탈북자는 “심지어 남동생 부인도 16년을 함께 살았지만 남편이 김현희의 동생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