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북한군 병사 한 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넘어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려면 출신성분이 좋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북한 병사의 탈북은 지난해 불거졌던 북한 고위층이나 엘리트 간부층의 연쇄탈북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일반 주민들뿐 아니라 간부층 자제들까지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을 잘 말해주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군이 한국으로 귀순한 것은 올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입니다. 특히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것은 지난 2007년 이후 10년 만의 일입니다. 이번에 탈북한 북한 병사는 추격조에 의해 다섯 발의 총탄을 맞으면서도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고 자유대한의 품에 안겼으나 상태는 위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2차 수술까지 진행된 현재, 북한군의 열악한 실상이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탈북 병사의 몸속에서는 수십 마리의 기생충이 나왔는데 그 중에는 길이가 27cm나 되는 것도 있었고 내장 손상이 심각하며, 그가 먹은 것이라곤 옥수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출신성분이 좋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야 뽑힐 수 있다는 공동경비구역 근무 사병의 건강상태가 이 정도라면 일반 북한군의 사정이 어떠할지는 안 봐도 뻔한 얘기입니다. 김정은은 ‘동방의 핵강국’이 되었으며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뤘다고 주장하고 선전하지만 정녕 북한군의 사기와 전력은 하루가 다르게 약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군인들뿐 아니라 북한에서 모자람 없이 살던 집안 자제들의 연쇄탈북이 지난해 국제사회에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지난해 4월 중국 링보의 류경식당에서 근무하던 종업원 열세 명이 한국으로 망명했고, 7월에는 홍콩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 중이던 북한의 수학영재 학생이 극적으로 망명했으며, 8월 초에는 태영호 전 영국공사가 자녀들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고위층 자제 혹은 엘리트 간부들의 연쇄탈북이 의미하는 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을 넘어 북한의 미래에 대한 좌절과 대안으로써 한국행을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탈북한 북한 병사 역시 총탄을 맞으면서까지 공동경비구역 남측 구역으로 넘어와 쓰러졌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에 대한 갈망과 한국에의 동경을 잘 말해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단지 배고픔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병사들을 인간 이하의 소모품 정도로만 여기고 구타와 학대가 만연한 북한군의 인권 탄압 현실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14일 유엔에서는 북한 당국의 인권침해를 강도 높게 규탄하고 즉각적인 중단과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유엔총회 인권담당인 제3위원회에서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은 한국을 포함한 회원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도 표결을 요청하지 않아 표결 없이 전원동의로 이뤄졌습니다. 이 결의안은 다음 달 열릴 유엔총회 본회의에서도 채택될 예정인데요, 이렇게 되면 13년 연속으로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개선 권고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입니다. 이 결의에선 북한에서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총체적인 인권유린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그 같은 인권침해 행위가 처벌받지 않고 있는 것을 규탄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또한 지난 2014년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가 지적한 고문과 비인도적 대우, 강간, 공개처형, 비사법적·자의적 구금·처형, 적법절차 및 법치 결여, 연좌제 적용, 강제노동 등 각종 인권침해 행위를 거론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반인도적 범죄에 ‘가장 책임 있는 자’에 대한 제재와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도 촉구했습니다. ‘가장 책임있는 자’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김정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북한 당국에선 이번 인권결의안에 대해서도 “북한에는 인권문제가 없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항의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 북한군 병사의 탈북 사실에 관해서도 주민들의 동요를 우려하여 사실을 숨기거나 한국 정부가 납치했다며 송환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습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 대한 인권유린과 인권탄압을 계속해 나간다면 국제사회는 더욱 더 가열찬 제재로 북한 당국을 옥죄게 될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인권 관련 제재는 핵, 미사일 관련제재보다 더욱 강력한 위력으로 북한 당국의 숨통을 조여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