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창설자 최홍희 부자의 굴곡진 삶

30여 년간 파란만장한 캐나다 생활을 접고 8일 한국에 입국하는 최중화(54)씨는 2002년 6월 북한에서 사망한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한 최홍희(崔泓熙,1918~2002) 장군의 아들이다.

최씨는 1972년 박정희 정부와의 불화 속에 캐나다로 망명한 부친을 따라 1974년 한국을 떠난 뒤 친북.반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6월 주 캐나다 한국대사관을 통해 전향과 함께 한국행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캐나다로 간 뒤 부친이 창설한 ITF에 적극 참여하며 북한과 ‘연계’ 아래 1982년 캐나다를 방문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암살계획을 세웠다가 1981년 7월 계획을 사전에 포착한 캐나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북으로 도피했다.

북한 도피 후 부모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1991년 1월21일 캐나다에 입국해 자수, 그해 3월 캐나다 온타리오주 법원에서 6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1년정도 복역하다가 모범수로 출소했다고 지난 7월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783호) 인터뷰를 통해 그가 밝혔다.

최씨는 ITF 총재인 부친이 사망(2002.6)하기 전 ITF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아버지와 갈등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TF 임시총회에서 총채 측과 사무총장 측 인사들이 총재 임기 연장 문제로 물리적 충돌을 빚은 끝에 회의가 중단되기도 했다.

최씨는 또 2001년 7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3회 총회에서 차기 총재로 내정됐으나 내분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그를 인터뷰 한 ‘뉴스메이커’가 전했다.

그의 이런 인생 역정은 부친이 남과 북에 걸쳐 곡절 많은 삶을 살아온 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최홍희씨는 군인으로 남한에서 제3관구 사령관, 제2(논산)훈련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당시 박정희 소장과 의기가 투합해 5.16쿠데타에 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을 겪다가 1962년 6월 제6군단장(소장)을 끝으로 예편했으며 초대 말레이시아 대사와 제3대 대한태권도협회장을 지내기도 했으나 끝내 캐나다로 망명을 택했다.

최 총재가 주도한 ITF는 1966년 3월 서울에서 창설됐으나 1973년 세워진 세계태권도연맹(WTF)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활동이 점점 북한을 중심으로 한 비동맹 국가에 국한됐다.

최중화씨는 ‘뉴스메이커’와 인터뷰에서 “1980년 아버님이 16명으로 구성된 시범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 세 차례 시범경기를 했고 그 후 북한 정부와 사범 파견을 정식 계약했다”고 태권도와 관련된 북한과의 첫 인연을 소개했다.

최홍희씨는 그 후 북한에 태권도 붐을 일으키면서 김일성 주석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가 사망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고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남한의 국립묘지격인 평양 신미리애국열사릉에 안장했다.

또 북한영화사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민족과 운명’시리즈(6~8부)에서 주인공 (차홍기)의 실존모델로 나와 “의리있고 배짱 있는 사나이”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는 북한의 이런 호의적 평가를 염두에 둔 듯 측근들에게 “북한땅에서 눈을 감겠다”는 말을 하고 병세 악화에도 불구하고 사망 직전 방북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들 중화씨는 “아버님이 서울에서 임종하시기를 원해 김대중 정부에 입국 허용을 요청했지만 ‘친북행위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정치적 조건을 요구해 결국 북한땅에서 돌아가셨다”고 인터뷰에서 상반된 주장을 했다.

최홍희씨는 친북 행위와 관련, 2003년 5월 한국에서 완간된 자서전 ‘태권도와 나’를 통해 자신에게 드리워진 친북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20여 차례에 걸친 방북 과정에서 김 주석과 수차례 만난 점과 아들 중화씨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전 전 대통령 암살계획을 세웠다가 유죄를 받으면서 쉽사리 ‘친북 굴레’를 벗지 못했다.

한편 함북 명천 출생인 최홍희씨의 형수와 조카는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중화씨가 입국하면 이들은 다시 남북으로 갈린 삶을 살아갈 전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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