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5일 열린 북한의 제8차 노동당 대회가 12일 김정은의 폐회사에 이어 14일 저녁 김일성 광장에서의 열병식을 끝으로 열흘 간의 공식 일정을 마쳤다. 이번 제8차 당대회는 1970년 12일 동안 진행된 제5차 당대회에 이어 역대 2번째로 긴 회기를 기록했지만, 신형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비롯해 각종 신형 군사 장비(군사력은 대내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성과물이기도 하다)를 과시한 것 이외에는 북한 주민들에게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과연 그럴까? 북한에서 당대회가 지닌 정치적 비중을 고려할 때 결코 ‘그렇지 않다’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북한은 철저하게 선전과 선동으로 유지되는 체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북한의 8차 당대회는 치밀하게 기획된 김정은 제작, 감독, 주연의 「마술공연(매직쇼)」이었다고 본다.
마술의 사전적 풀이를 보면, ‘여러 가지 도구나 손재주로 사람의 눈을 속여 신기하고 이상한 일을 하여 보이는 재주’라고 되어있다. 한 마디로 마술의 성공 여부는 관객을 얼마나 잘 기망(欺罔)하느냐에 있다.
북한이 이번 당대회를 개최하면서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라는 관객을 현혹하기 위해 설치해 놓은 중요한 무대 장치는 ▲ 당 조직개편과 그에 따른 인사, ▲ 강력한 군사력 과시이다. 이들 무대 장치의 의미를 살펴본다.
먼저 「당 조직개편과 그에 따른 인사」이다. 북한은 8차 당대회 5일 차 회의(1.9)에서 당 규약을 개정하여 정무국을 폐지하고 비서국을 부활한 데 이어 김정은을 총비서로 추대했다. 이를 두고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반열’, ‘북한 내 권력을 한층 강화하고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 ‘다른 위원장과의 차별화’ 등으로 평가를 했다. 더불어 당대회를 이끄는 집행부가 2016년 7차 당대회 때와 비교해 총원 39명은 그대로지만 그중 29명(약 75%)이 교체된 것과 함께 조용원 조직비서의 급부상과 함께 김여정의 정치국 후보위원 탈락도 눈길을 끌어 이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제시된 견해들이 잘못된 평가는 아니지만, ‘꿈보다 해몽’이라는 생각과 함께 북한 당국이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던진 미끼를 물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북한의 체제 특성을 간과한 채 말이다.
북한은 유사신(類似神)으로 의제(擬制)된 김일성(이와 관련 최덕신은 ‘김일성 그이는 한울님’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의 후손이 통치하는 체제이다. 바꿔 말하면, 북한의 현 통치자인 김정은도 여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와는 전혀 다른 유사신의 지위에 있다. 이 때문에 ‘총서기’라든가, ‘노동당 위원장’이라든가 하는 따위의 공식 직함은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저 ‘최고 존엄’이라는 우상화 호칭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더불어 이런 체제에서의 인사 변동은 황병서가 조직비서가 되든 조용원이 조직비서가 되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상석하대(上石下臺)일 뿐, 김정은의 통치 수단인 노동당 전체 구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번 8차 당대회에서 단행한 조직개편과 인사 변동은 ‘간판만 바꾼 신장개업(新裝開業)’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혹시나 새로운 물건이 들어 왔는가?’ 하는 관객들 -특히 언론-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강력한 군사력 과시」는 김정은이 당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마련한 무대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당 중앙위원회 2일 차 사업총화보고(1.6)에서 “국가의 방위력을보다 높은 수준으로 강화해 나라와 인민의 안전과 사회주의 건설의 평화적 환경을 믿음직하게 수호하려는 중대 의지를 재천명하고 그 실현에서 나서는 목표들을 제기했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국방력 강화와 관련해서 제시한 첨단무기들의 목록을 보면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최종심사단계에 도달했으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고도화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수중 및 지상 고체 발동기 대륙간탄도로케트 개발과 초대형 핵탄두 생산 그리고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언급했다. 극초음속 무기는 마하 5의 속도로 지구상 어느 곳이든 1시간 이내에 타격할 수 있고 탐지와 요격이 어려워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무기체계다. 북한은 이외에도 군사 정찰위성 운용과 정밀 무인정찰기 개발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첨단 장비와 무기체계 개발 계획을 밝혔다.
이뿐 아니다. 개정된 당규약에 ‘국방력 강화’를 명시하는 한편 1월 14일 저녁에는 신형 SLBM(북극성-5ㅅ)과 이스칸데르 등의 무기를 동원한 야간 열병식을 진행하여 실질 군사력을 과시했다.
혹자는 혹한 속에 야간 열병식을 진행한 데 대해 북한 당국의 비인간적인 행태라고 시비했다. 물론 우리의 잣대로 보면, 인권유린과 다름없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당사자인 북한 주민에게는 사정이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과거 6, 70년대에 학생들이 수업을 생략하고 행사에 동원되는 것을 오히려 즐거워했던 일을 상기하면, 혹한과 폭염 속에서도 열병식 등의 행사에 참여하고 관람하는 것이 일상화된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몽혼(曚昏) 주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 주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진행한 열병식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북한이 당 조직과 인사 개편, 그리고 강력한 군사력 과시를 통해 거두려던 효과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경제난 지속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8월 열린 전원회의에서 제7차 당대회 때 제시한 「경제 발전 5개년(2016~2020년) 전략」의 실패를 인정하면서, “제8차 당대회에서 새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 창건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8차 대회에서 인민들의 복리 증진 실현을 위한 방략과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할 것”임을 언급했다. 또 당대회 개회사(1.5)에서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 기간이 지난해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라고 자인했다.
바꿔말하면 이번에 열린 제8차 당대회는 나락으로 떨어진 경제 상황을 회복시키기 위해 열린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당대회 기간 중 제시된 경제 발전 전략은 ‘인민대중 제일주의’라는 구호와 함께 자력갱생을 재차 강조한 것뿐이었다. 과거 구두선(口頭禪)으로나마 제시했던 경제정책의 비전이나 경제계획의 목표치도 대외적으로 공표되지 않았다. 그나마 공개된 5개년 목표는 “평양에 5만 세대 살림집 건설, 검덕지구에 2만 5천 세대 살림집 건설, 시멘트 800만t 생산” 등 건설 관련 지표가 전부였다.
그만큼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주·객관적 여건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빼든 자력갱생 정책을 봐도 그렇다. 극단적으로 비유할 때, 현재 북한 경제는 광업이나 어업, 건설은 물론이고 알곡 농사까지도 대규모 노력(勞力)이 필요한 ‘채취 경제 수준’에 가깝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노력 동원이 제한을 받고 있으며, 이런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당국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평양종합병원 건설과 원산 갈마지구 관광지 개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 발전을 위한 뚜렷한 대책 마련이 어려운 상황(특히 김정은은 집권 이후 인민 생활 향상을 수시로 약속해 왔다)에서, 당적·인적 쇄신으로 기대감을 부여하고 군사력 과시로 자신감을 회복시킴으로써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마련한 무대가 다름 아닌 이번 제8차 당대회이다.
끝으로 이번 제8차 당대회를 보는 우리 일각의 시각에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어 한두 가지 지적해 본다.
먼저 여권 주요 인사들의 안이한 안보관이다. 김정은은 “남조선(한국)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 전 봄날과 같이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대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월 10일 SNS를 통해 “(북한이) 향후 남북관계가 남측 태도에 달렸다”라고 언급했다면서 “북한은 대화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더 나아가 여당 모(某) 의원은, 전단 살포를 시비하면서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주도했던 김여정이 ‘특등 머저리’라고 부르는 등 극렬 비난한 담화에 대해서 “이왕 (대화)하려면 조금 더 과감하게 하자는 요구를 속에 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번에 제시한 남북대화 조건은 우리 군의 첨단화와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무장을 해제하라는 것이며, 더불어 이런 카드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대화는 꿈도 꾸지 말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화 속내’ 운운하는 등 여권 고위 인사들의 인식에 아연(啞然)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깜냥이 안 되는지, 아니면 궁예의 관심법을 쓰는 것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북한이 설사 대화에 응해 나선다고 하더라도, 이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정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안보 의지를 이완시키려는 전술적 변화일 뿐이다. 그저 대화를 위한 대화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 군사력을 보는 시각이 매우 지엽적이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번 열병식에 등장한 신형 SLBM이 시제품이나 모조품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시제품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외형만 SLBM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실무적 차원에서 매우 예리한 지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2015년 최초로 SLBM을 발사했을 때 잠수함 발사가 아니라 바지선 발사라는 의혹이 있었지만, 지난 5년여 기간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서 실전 배치 직전에 있으며 핵잠수함 개발까지 운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우리 당국은 어떤 실효적인 대책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허다하다.
SLBM을 비롯해 핵과 각종 미사일 그리고 100만을 훨씬 상회하는 북한의 군사력은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용이 아니라, ‘결정적 시기’가 조성되면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기 위한 공격용이다. 북한의 사소한 위협 요소 변화에도 예리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이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말로만의 의지 표명과 보기에만 그럴듯한 의전(儀典)으로는 절대로 안보가 유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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