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7일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연례 만찬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만이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진정으로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9.23)에서도 같은 기조의 발언을 하고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랍니다”라고 협조를 구했다.
한편 지난 6월 15일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공동 발의한 적이 있는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174명은 대통령의 유엔 연설이 있은 지 5일 만인 9월 28일 이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상정했다. 청와대가 선창하자, 여권은 이에 호응하여 ‘종전선언’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이라는 단체의 주최로 ‘종전선언과 한반도 구축방안’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종전선언’ 발상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 직후 제기됐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2018년 판문점 선언에서 ‘종전선언’을 부활시킨 문재인 정부는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 했지만, 이 또한 하노이 회담(2019. 2. 28)의 결렬로 차질을 빚었다. 그런데 이번에 종전선언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그러나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이것이 실현될 경우, ① 한반도 안보 상황이 현재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고 ② 남남갈등을 넘어 국론분열 현상을 초래할 수 있으며 ③ 여기에 더해 북한이나 미국 모두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 또한 별로 없다. 하나씩 짚어본다.
첫째,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막연하게’ 북한의 긍정적 변화만을 기대하는 종전선언은 오히려 미증유(未曾有)의 안보 위기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북한 대남정책의 기본은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남조선(한국)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조국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의도는 ‘당의 유일영도 체계 확립 10대 원칙’ 제1조 4항에 “주체사상의 기치,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조국 통일과 혁명의 전국적 승리를 위하여 (…)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라고 밝힌 것을 비롯해 노동당 규약 서문과 북한 개정헌법 서문에 명문화되어 있다. 한편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100만 명을 훨씬 상회하는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이른바 ‘게임 체인저’라고 하는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북한이 언급하는 ‘조국 통일’이란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점령하여 전(全) 한반도를 백두혈통의 후손이 통치하는 체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동남풍이 불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북한의 대남 정책과 군사 태세는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런 안보 환경에서 종전선언이 현실로 되면, 송영길 의원이 “종전선언과 더불어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이 함께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와 같이 평화협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문제는 평화협정의 다음 단계가 대북 억지력과 조기경보 능력이 반감되는 주한 미군 철수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베트남 통일의 재판(再版)’을 노리며 고대하던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종전선언이 ‘평화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주장과 달리 핵을 보유한 북한 정권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민국 단독으로 대응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국가 생존과 직결된 안보 정책(종전선언)을 감상적인 낙관론만으로 추진할 수 없는 이유이다.
둘째, 국민적 합의 없이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은 남남갈등을 심화하고 국론분열을 야기(惹起)함으로써, 결국은 안보 태세를 약화할 뿐이다.
문화일보가 엠브레인에 의뢰해 10월 30∼31일간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없이는 종전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응답이 60.3%로 ‘비핵화 진전과 상관없이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라는 의견(33.7%)을 압도했다. 이번 조사는 다행스럽게도 북핵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의견이 많지만, 1/3이 넘는 사람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것 또한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 진전 단계에 따라 △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도도 없고 능력도 없다 △ 통일이 되면 우리도 핵보유국이 되니 좋지 않으냐? △ 체제 생존을 위해 핵 보유는 당연한 행동이라는 화두를 두고 논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진영 논리에 매몰된 논쟁은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감정적인 언어로 상대를 비난하기 일쑤였으며, 이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권에서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것은 다시 한번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국론분열을 심화시키는 행태라고 하겠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일찍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구상에는 수많은 나라가 생겨나고 또 멸망했는데, 대부분 나라는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부패와 분열이라는 내부의 적에 의해 멸망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멀리서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점된 것은 당시 지도층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대립과 분열을 거듭한 결과였다.
이와는 정반대되는 사례도 있다. 링컨이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대통령 중 하나가 된 것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 정부는 영원할 것이다’는 게티즈버그 연설 때문이 아니다. 노예제도를 둘러싸고 자칫 분열될 뻔한 나라를 남북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미국을 통합시킴으로써, 후손들이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게 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조 바이든도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된 소감 연설에서 ‘통합(Unite)’이라는 발언을 강조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분열의 틈에서 소리(小利)를 챙기려는 한국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휴전협정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모두가 종전선언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도 거의 없다.
미국은 ‘북한의 선(先) 비핵화’를 종전선언의 전제로 내놓은 상태다. 북한이 실질적이고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까지는 이런 입장을 유지할 것이다.
한편 북한은 4.27 판문점 선언(2018년)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공감을 표했지만, 지난해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로는 냉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스톡홀름 북미 실무 협상이 별 성과 없이 끝난 지 한 달 뒤인 지난해 11월에 북한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촉구하면서, “순간에 휴지장으로 변할 수 있는 종전선언 같은 부차적인 문제들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은 바 있다. 김 성 유엔주재 북한 대사도 종전선언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과 관련해서 “그건 뭐 별로 평가할 거 없다”고 외면했다.
추정컨대 북한이 극언을 구사해 문 대통령을 비난하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의 대남 강경 자세를 보이는 것은, 우리 정부의 조언에 따라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종전선언,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평화협정을 체결하려 했지만, 이런 기도가 무산된 데 따른 불만의 표현이 아닌가 한다.
이렇듯 미국과 북한이 종전선언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전선언에 내재한 부작용은 차치하고 실현 가능성 자체도 희박하다 할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8000건 이상의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지만, 평균 2년이 되지 않아 전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이렇듯 문서 위의 서명이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 역사는 너무 많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충심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다만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문서에 담긴 정신과 약속이 지켜질 때 존재 가치가 있으며, 평화지상주의(平和至上主義)가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가 일으킨 게 아니라 유럽의 평화주의자들이 불러온 것이다”고 술회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공허한 평화 주장’보다는 “전쟁을 억제할 절대적인 힘을 가질 때만 평화를 수호할 수 있다”라는 김성 북한 대사의 유엔총회 발언이 오히려 실용적이라 하겠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