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회부’ 논하기까지…北인권결의안, 김정은 책임 묻는다

유엔총회가 12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있다. 결의안은 오는 15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제3위원회 주도 하에 유엔 전체 회원국 대상으로 표결에 부쳐진다. 이후 내달 중 유엔총회 본회의 표결까지 마치면 결의안 최종 채택이 이뤄진다. 유엔총회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변 없이 결의안을 채택해온 만큼, 올해 결의안도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2005년 제60회 유엔총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처음 채택했던 당시와 비교하면, 결의안 내용은 북한인권 상황에 단순 ‘문제의식’을 갖던 데서 ‘문제 해결책 모색’ 방향으로 발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인권 상황을 지적, 폭로하던 데서 나아가 북한 당국에 인권침해의 책임을 묻고 이를 국제법적으로 처리할 것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북한인권 관련 활동을 지속해온 국제인권기구 및 비영리기구(NGO)들도 지평을 확대할 수 있게 됐다는 기대도 나온다. 그간의 활동이 시민사회에서 북한인권 상황을 증언하고 개선 방안을 촉구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이제는 국제사회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실제 협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시민사회 내 인권운동가들의 역할도 확대될 것이란 관측이다.

◆ COI 보고서, 北인권결의안 내용 구체화 계기…국제사회에 보호책임 역할 강조

이 같은 진전에는 2014년 북한인권 문제를 ‘반(反)인도범죄’로 규정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보고서가 공개된 이후,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을 명확히 하고 북한 지도부를 겨냥해서도 강도 높은 책임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결의안 문항의 수위도 상향 조정됐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serious concern)’라는 표기가 2014년에는 ‘규탄(condemns)’으로 바뀌었다. 북한인권 상황을 ‘네이밍 앤 쉐이밍(naming and shaming·공개적인 비행 폭로)’ 하던 데서 나아가 반(反)인도범죄로 규정된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명확히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침해 사례 지속 보고(continuing reports on)’라는 표현으로 결의안 내용의 근거를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보고서 등에서 찾던 것과 달리, 2014년부터는 해당 문항이 아예 삭제됐다. 즉 결의안이 여타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인권 상황을 ‘전달’하던 것을 넘어, 결의안 차원에서 북한 내 인권범죄 사실을 ‘인정’하는 단계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유엔 안보리에게 북한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토록 권고하는 내용도 결의안의 실효성을 크게 제고시켰다는 평가다. 유엔총회의 경우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안보리가 결단을 내려 해당 권고를 받아들인다면 북한인권 상황 나아가 최고 책임자를 ICC에 회부하는 것 역시 실행 가능한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결의안에도 눈에 띄는 진전이 많다. 우선 북한 내 반(反)인도범죄 책임 주체로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수뇌부의 책임을 보다 명확히 묻고 있다. 또 북한 외화벌이의 주요 수단이자 노동·임금 착취의 온상이라 불렸던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역시 처음으로 결의안에 담겼다. (▶관련기사 : 유엔, 北인권결의안에 ‘해외노동자’ 문제 최초 명시)

북한이 올해에만 두 차례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한 경고도 우회적으로 기술됐다. 결의안에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재원을 전용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대한 우려가 담겼다.

이와 관련 권은경 북한반인도철폐국제연대(ICNK) 사무국장은 데일리NK에 “2014년 COI 보고서를 계기로 북한 내 반인도범죄를 어떻게 국제법 메커니즘 안에서 다룰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면서 “이제는 국제사회의 보호책임부터 북한인권 유린 책임자의 ICC 회부까지 논할 만큼 해결방식을 찾는 데 주력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은 당시 정부의 대북 기조에 따라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에도 차이를 보였다. 2005년과 2007년에는 남북관계를 고려한다는 차원에서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과정서 기권했으며, 2006년에는 북한의 1차 핵실험 여파가 거세 우리 정부도 제61차 유엔총회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북한인권결의가 인류 보편적 가치 보호 차원에서 더욱 부각되자,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부터는 아예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으로 나서 결의안에 적극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인권결의안, 北당국에 분명한 압박…北주민 변화시킬 정보 유입 전략 등 병행해야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이 보다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문항을 담는 방향으로 진전되면서, 이 같은 변화가 실제 북한인권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기본적으로 유엔총회의 기능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북한 당국에 실질적인 강제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유엔총회의 권고 내용을 실행하지 않는 이상 북한인권결의안의 거듭된 채택도 유명무실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적 구속력과 무관히 유엔총회가 갖는 권위 자체로 북한 당국에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엔 193개 회원국이 총회의 권고를 무시한 채 북한인권 상황을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뿐더러, 북한 역시 유엔총회의 인권 압박 수위가 강화되는 한 외교적 입지가 계속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권 사무국장은 “유엔총회에 공권력이 없다는 게 곧 이를(총회 권고)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라면서 “유엔총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할 때가 되면 전 세계 외교가가 모여 북한인권 상황을 주목하고 지적하게 된다. 이것만 해도 북한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유엔총회 결의안은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실상 이를 각국 외교가와 NGO들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면서 “유엔총회의 권위를 존중해서 본다면 결의안이 갖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이 북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는 북한 당국의 행동 변화로도 감지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유엔 차원의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될 때마다 이를 비난하고 거부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제사회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차원에서나마 인권 개선과 관련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압박이 계속될 동안 북한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건 아니다. (인권과 관련된) 법을 개정하거나 일반 주민들에 대한 공개처형 횟수를 축소시켰고, 정치범수용소도 하나 폐쇄한 바 있다”면서 “겉으로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에 반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계속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다만 인권결의안 채택 등 (인권 압박에 있어)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나온 듯하다.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ICC 회부 얘기도 나왔고, 우리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서울에 북한인권사무소도 설치하지 않았나”라면서 “이를 일관되게 하는 동시에 북한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외부 정보나 문화를 북한에 유입하는 일도 지속해야 한다고 본다. 주민들의 변화와 당국의 변화를 동시에 이끌어낼 전략을 세우자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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