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반대시위를 준비하고 있을 P에게…

격동했던 20대 나의 다정했던 친구 P에게.


G20 회의가 임박한 지금 자네는 ‘우리민족끼리’와 ‘남한의 혁명’을 꿈꾸고 있고, 나는 세계와 북한의 ‘민주화’를 열망하고 있네. 우리의 가슴 속에 나라와 민중에 대한 사랑이 여전한데 서로 정 반대편에 서 있지. 지독한 역설이고 운명의 희롱이기도 한데 이 아이러니가 언제 종료되어 다시 그 때처럼 더불어 술에 취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 믿고 의지했던 깊이만큼 자네는 나를 걱정하고 나 또한 자네의 안위를 기원하고 있네. G20을 목전에 두고 자네를 더욱 떠올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임을 잘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네. 우연이라도 자네가 이 글을 볼 수 있을지 몰라 나의 충심을 담아 한자 한자 적어보고 있네.


자네는 G20 회의를 반대하고 있네. 우리가 과거 88서울올림픽을 반대했던 것이 올림픽의 종목이나 순위와 관계 없었던 것처럼 G20회의에 대한 반대도 사실 그 의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네. 그저 세계화가 싫고, 그 속에서 한국과 한국정부의 위상이 고양되는 것이 불편하고, 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면 종북진영에게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은가? 하여 자네는 지금 가장 효과적인 반대투쟁의 내용과 방식을 준비하고 펼치기 위해 여념이 없을 것이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지. 민중을 위한다며 민중에게 가장 이로웠던 것을 대부분 반대하고 다녔으니 말일세. ‘인적자원’ 외에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한국과 한국 민중이 이만큼 살게 되고 세계인들로부터 찬사를 듣게 된 것은 오로지 세계를 무대로 뛰었기 때문 아닌가? 죽(竹)의 장막 속에서 고생하던 중국인민들이 이제 G2 국가가 되어 대국굴기(大國崛起)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전적으로 세계 속에 뛰어든 지난 30년의 결과가 아닌가?


오히려 전기와 화학, 공업시설 등 일본제국주의 유산 중 노란자를 독차지했던 북한이 극단적 폐쇄주의로 인해 인민들 대부분이 굶주리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세계인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것이 얼마나 민중에게 이로운 것인가는 더 이상 논할 필요조차 없어 보이네.


친구, 멋진 시위를 부탁하네!


이 간단한 상식을 왜 아직도 부정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참으로 답답한 심정이지만 이것 하나만은 꼭 부탁하고 싶네. 자네가 어떤 요구를 걸고 시위를 하건 부디 멋지게 해 달라는 것이지. 이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기도하고 자네를 위해서 이기도 하다네.


지금 우리 국민 대다수는 G20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길 바라고 있네. 현 정부를 지지하던 그렇지 않던 이 마음은 한결같네. 1988년 노태우정부에 대한 지지가 매우 미약했음에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온 국민이 합심했던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네.


그래서 자네에게 ‘국민의 마음에 부응해서 시위를 해달라’고 부탁하네. 무단으로 거리를 점거하고, 쇠파이프나 가스통이 난무하는 폭력시위는 그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국가와 국민의 체면, 즉 국격(國格)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네. 이 책임 고스란히 자네에게 전가될 것이네. 오로지 해(害)만 있을 뿐, 도대체 누구에게 이롭단 말인가!


방법이 있네. 국격을 높이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는 시위의 방법이 있다고 믿네. 그리하여 우리 국민과 세계인들이 자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할 방법이 있단 말일세. 예를 들어 ‘삼보일배(三步一拜)’와 같은 시위의 방법은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만한 한국적 시위방법이 아닌가? 그 자체가 유구한 문화에서 비롯된 시위방법이니 외국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네. 품격 높은 한국의 문화가 또 하나 소개되는 것이지. 


친구, 역사로 시위하시게!


권당은 또 어떤가! 권당! 주먹 권(拳), 무리 당(黨). 무리 주먹을 쥐었으니 뭔가 시위함을 뜻하고 있는 단어이네. 최근 유행했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유생들이 바로 이 권당을 하지 않았나! 왕과 정부의 시책이 옳지 않다고 여긴 유생들이 무리 주먹을 만들어 대자보를 써 붙이고, 궁궐 앞에 가부좌를 틀고 이른바 연좌시위를 벌이는, 때에 따라서는 단식도 하였겠지. 그래도 왕이 정책을 고수하면 그때 마지막 수단으로 개나리 봇짐을 메고 낙향을 하였는데 이것이 가장 최고이자 마지막 시위형태였다네. 유생들이 낙향한다 함은 왕을 버린다는 것을 뜻하였기에 왕은 그것만은 막으려 했다는군. 한강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는 유생들에게 항복하고 그들을 돌려세워 다시 성균관에 입교시키던 것이 바로 권당의 결과라 하네.


세상에 이런 학구적 시위문화가 동서고금 어디에 있었는가? 민주주의를 했다는 중세 서양만 하더라도 왕과 생각이 다르다고 화형에 처하기 일쑤였지 않은가? 황제의 권한이 막강했던 중국에서 어떻게 이런 시위가 가능이나 했겠나? 이런 역사적 스토리, 오직 한국에만 있는 이런 시위문화를 복원하여 자네의 목소리를 담아 세계인들에게 내어 놓게. 그 자체로 대단한 한국역사에 대한 소개이자 홍보가 될 것이니. 그러나, 쇠파이프 들고 거리에 뛰어들거나 가스통을 안고 자폭할 것 같은 협박시위는 이 나라의 이미지도 망치고 자네도 망칠 것이네.


나의 사랑스런 친구 P.


나는 앞서도 밝혔듯이 자네의 생각에 명백히 반대하네. 하지만 자네가 국격을 해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는 일은 정녕 원치 않네. 국민들의 관심을 받으며 그 속에서 하나하나 진지하게 대화해 가고 싶네. 그래야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정스럽게 막걸리를 나눌 수 있지 않겠나. 우리의 참으로 그리웠던 20대처럼 말일세.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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