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햇볕정책’과 朴 ‘신뢰프로세스’의 공통점

I. 박근혜 정부의 블루오션 ‘대북정책’

취임 후 6개월 박근혜 대통령 업무에 대한 긍정평가는 60% 후반대로서 대단히 높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그리고 광우병 촛불시위 때의 시민 단체들이 폭염과 폭우 속에서 꾸준히 ‘부정선거’를 외치고 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역시 꾸준하다. 8월 24일 청계천 촛불시위는 누가 봐도 1,000명이 안 되는 수준으로서 등불축제의 관람객은 물론, 아파트 직거래 장터의 고객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자살골과 다름없는 실책을 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장외 시위’는 이미 동력을 잃었다고 봐야한다.

조선일보 8월 26일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40.9%는 국정원이 선거개입을 하였다고 보고 있지만(‘선거개입 아니다’는 43.9%), 국민 모두가 검찰이 제시한 70여건의 이른바 ‘선거개입성 댓글’을 실제로 읽어 보았다면 아마 이 비율은 대략 20~25% 수준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천안함 폭침 조작시비에서 확인한 바, 어떤 증거를 제출하여도 믿지 않는 수구좌파 층의 비율이 이 정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채동욱 검찰총장의 ‘기소 시에 법과 원칙을 존중할뿐더러 국민의 의사도 고려해야 한다’는 기소 포퓰리즘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의사’가 따르지 않는 것에는 지난 총선이나 대선에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괴리 현상은 검찰이 주장하는 ‘원세훈 전 원장의 정치·선거개입 발언’과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활동’을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검찰이 동영상을 짜깁기한 이유도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증거가 희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의 동영상 짜깁기가 증거조작으로 판명될 경우, 국정원 댓글사건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장외투쟁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안정된 지지율, 꾸준히 향상되는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국정원 선거개입이 검찰이 생각하는 것처럼 ‘명백하지’ 않은 반면에, 개성공단 재가동 협상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시의적절한 결단과 원칙 지키기, 좌파정권의 대북 저자세에 대한 가슴에 쌓인 국민들의 분노, 그리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 노력과 함께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요구하는 등 균형 잡힌 태도가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던 대북정책이 박근혜 정부의 블루오션이 된 것이다. 대통령은 대북 분야에서 얻은 수익으로 국정의 다른 분야의 적자를 메우고도 남아, 민주당의 장외 투쟁에 여유를 갖고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지지가 높을수록 그 바탕을 돌아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낸 대북정책 호경기는 정말로 한반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II.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의 국민 지지도

아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만으로는 유효한 대북정책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왜냐하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 지지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정책의 올바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국민의 높은 지지율은 대북정책의 구조적 문제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북핵폐기와 북한체제의 변화에 있다. 이점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부 출범 1년 후인 1999년  여론조사를 보면 된다.

우리 국민들은 김대중 정부 1년 동안 과거 정부에 비해 가장 나아진 분야로 ‘정치사회적 민주화’나 ‘부패구조 청산’보다 ‘남북관계’를 꼽았다. 또 국민 10명중 7명꼴로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2월 9~11일 (한겨레)와 학술단체협의회, 한국정당정치연구소가 공동으로 전국 성인남녀 700명과 박사과정 이상의 학단협 회원 218명을 대상으로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일반 국민의 70.5%와 학단협 회원의 절대다수인 95.5%가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겨레 신문>, 1999년 2월 24일)

박근혜 캠프에서 대북정책 수립에 관여했던 새누리당의 길정우 의원은 『신동아』 6월호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의 아류’라고 부르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만큼 김대중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흡사한 면이 있다. 그것은 두 정부 대북정책의 구조와 상황 자체가 흡사하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의 열렬한 신도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극찬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정권의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붕괴 직전의 북한체제에 김대중 정부는 막대한 원조를 하여 회생시켜 줌과 동시에 핵개발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정은에게 체제안정화의 시간과 자원을 만들어 줄 것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대북정책이 오로지 수령전체주의를 공고화 하는 데에만 기여한다면, 그것은 명분도 도덕적 타당성도 확보할 수가 없다. 따라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의 목표로 ‘개혁개방’을 내 걸었듯이, 박근혜 정부 역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로서 ‘북핵폐기’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목표설정과 그 실현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극히 간단하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북핵을 폐기시킬 수 있는가?
 
1: 만일 있다면 어떻게?
2: 만일 없다면 다른 어떤 수단으로 북핵을 포기시킬 것인가?
3: 다른 수단도 없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왜 하는가?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지 못한 것처럼 박근혜 정부 역시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으로는 핵폐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북한에 햇볕을 쬐어주면 옷을 벗을 것이라는 믿음이 허망하듯이, 북한과 신뢰를 쌓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 허망하다. 문제는 햇볕정책이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이런 ‘믿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임기 5년의 대통령이 실제 유효한 대북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기간을 결코 길지 않다. 길어야 3년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높은 지지율로 인해 현재의 대북정책으로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보다 어리석은 태도는 없다.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과의 직접협상이나 교류, 혹은 6자회담을 통해서는 북핵을 폐기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과 동북아 평화체제라는 큰 그림 밑에서 북한정권을 평화 지향적 국제상황으로 끌어들여 북핵을 서서히 말려 버리려는 구상을 할 수도 있다. 일종의 동북아시아의 헬싱키 체제라고나 할까.

그러나 유럽과 미국이 그렇게 많은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또 제재압박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핵을 포기시키지 못했었다. 그러나 요즈음 이란 핵문제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이유는 이란의 새 대통령이 온건파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체제변화 내지는 지도자가 바뀌기 전에 핵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김정은 정권의 경우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핵보유를 헌법에 명기하였다. 

물론 김정은 정권도 국제 상황의 변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냉탕과 열탕을 오가듯이,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핵전쟁 불사를 외치던 김정은이 최룡해와 같은 수하를 통해 평화사랑의 비둘기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또 개성공단 재가동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에서 박근혜 정부에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 편으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올라타 경제원조를 받아 챙기고, 다른 한 편으로는 변화하는 국제상황, 특히 중국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함일 것이다.

북한정권이 국제사회의 골칫덩어리가 아니라 평화애호가로 몇 년 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북한정권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이용할 것이라는 점은 구조적으로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지난봄의 전쟁 쇼는 이것을 몇 개월 지연시켰을 뿐이며, 개성공단 재가동을 놓고 일어난 협상과정에서도 남과 북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결렬이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북 간의 경제협력과 교류가 강화되면 유엔제재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또  박근혜 정부는 핵폐기를 전제로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였기에, 한반도 신로 프로세스를 중단하겠다면서 핵폐기를 압박할 수도 없다. 남북 간에 신뢰와 교류가 증대될 경우 중국도 더 이상 북한과 한국 사이에서 선택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 시절에, 또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지 않은 MB정권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가속시킬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도발이나 핵실험을 하지 않고 얌전하게 지내는 것 이상이기 힘들다.

그러나 북한은 얌전하게 지내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북한은 반드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신하자고 나올 것이다. 그 다음 수순이 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해체일 것임은 명백하다. 한국 내에서는 통진당의 종북주의와 민주당의 친북주의가, 2012년 문재인 대선 후보가 내세운 공약과 흡사하게,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한미 군사동맹의 위상 변경을 주장할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 내의 친북-종북 좌파들의 한미군사 동맹 이완 내지는 해체 주장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나아가 박근혜 정부 자체가 평화협정을 북핵폐기를 전제로 적극적으로 시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북한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내의 친북-종북은 북핵폐기와 한미동맹 해체 및 평화협정을 동시에 진행시키자고 주장할 것이다.

대략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에 이를 때,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함께 제4차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 ‘실용위성을 미사일이라 호도하고 있다’면서 유엔제제를 주도하는 미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다시 한 번 핵실험을 한다는, 이른바 ‘미사일-유엔제재-핵실험-유엔제재-전쟁위협’의 공식을 다시 사용할 수도 있다. 도발의 이유에 한국 내의 ‘수구우파 전쟁광 세력들의 대북 호전성’이 추가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박근혜 정부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III.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패가능성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가시적 차이점은 전자의 주도권을 북한이 갖고 있었던 반면에, 후자의 주도권은 한국이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북유화 정책에서 주도권은 항상 북한이 쥘 수밖에 없다. 북한은 열탕과 냉탕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임기가 없는 종신수령이 통치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의 경우에는 대북정책을 쉽게 변경하기도 어렵고 또 대통령의 임기는 5년에 불과하다. 역대 정권이 이른바 ‘남북정상회담’에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한국의 대북정책은 집권자의 조바심 즉 주관적 비전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따라서 대북정책의 실패요인은 우선 집권자의 주관적 희망과 비전이 남북관계의 객관적 현실과 대북정책의 구조적 취약점을 덮는다는 사실에 있다. 대북정책에 관한한 집권자는 결코 실패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이들은 항상 미래의 언젠가는 자신의 정책과 비전이 옳았음이 증명될 것이라는 종교적 신념으로 버틴다. 이점은 민주당과 통진당의 대북정책이 웅변하고 있다.

또 다른 실패의 이유는 유화정책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남북관계 현실론이다. 사실 북한과 뭔가를 같이 하려 할 때, 북한에 경제적 지원이나 교류를 하겠다는 것처럼 성사시키기 쉬운 것은 없다. 특히 남북 간의 접촉과 교류의 양적 측면을 대북정책의 성공여부로 판단하는 경향이 농후한 현실에서 유화정책에 대한 유혹은 질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맹세한 개혁개방은 오지 않았고 그 대신 핵과 미사일 위협이 날아왔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만은 예외로서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그런 보장은 없다.

차라리 김정은 정권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올라타면서도 그들의 단물 빨기 교류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을 알고, “오늘 미제와 그 추종세력들은 그 무슨 원조의 간판 밑에 식량과 돈주머니를 흔들면서 우리를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정치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시작하면서 국민의 높은 지지도에 눈이 멀어 ‘개혁개방’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망각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지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박근혜 정부는 김정은 정권에게 외화를 대주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박근혜 정부에게 반드시 요구해야 할 것이 있다. ‘핵을 이고 살수는 없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진행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북핵폐기에 두어야 한다. 시민단체나 민간 전문가들은 한국의 독자 핵개발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자는 실패해도 살 수 있지만 후자가 실패하면 한국은 구조적으로 북한의 종속국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뢰라는 양지(陽地)가 강조될수록 북핵폐기라는 음지(陰地)는 점점 뒷전으로 밀리기 쉽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북핵폐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음 정권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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