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열차방북과 NLL: 그 논리적 함수관계

2006년 6월 14일 TV 저녁뉴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광주에서 열린 6.15 기념식장에서 자신의 방북과 관련, 한반도와 유럽을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를 언급했다고 전했다. 곧이어 같은 뉴스에서 DJ의 방북이 열차 편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하였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뉴스라는 점은 분명하다. 만일 DJ가 그의 방북과 관련, 철의 실크로드를 이야기한다면 방북수단 역시 철도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 상식이다.

여기서 DJ가 논리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둘밖에 없다: 첫째, 열차로 평양에 가지 못할 바에야 방북을 포기하겠다. 둘째, 김정일이 초청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권유한 이번 방북은 반드시 열차 편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노무현 정권 혹은 김정일 정권은 열차방북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여기서 DJ의 뜻이 후자에 있음은 6월 14일 발언의 전후 맥락을 볼 때 논란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현재 무엇 때문에 열차를 이용한 평양방문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점을 명백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난 6개월 DJ의 평양방문과 관련된 주요 사항을 조감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2005.12.29: DJ “내년 4월 경의선 철도를 타고 방북하기를 희망.”
2006.1: 정부 북측에 DJ의 방북의사 전달.
2006.3.3: 제3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북측 NLL(북방한계선) 포기를 주장하여 회담 결렬.
2006.5.10: 노무현 대통령 몽골에서 “북한에게 많은 양보와 함께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겠다”고 하면서 DJ의 방북을 통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희망.
2006.5.13: 제12차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 열차시험운행을 5월 25일에 하기로 합의
2006.5.16: 제4차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남측 NLL을 다른 군사문제들과 함께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 북측 NLL 포기를 고집, 열차시험운행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 거절.
2006.5.17: DJ방북 실무접촉에서 북측 DJ 열차 방북 거절, 직항로 방문을 권유.
2006.5.18~24: 남측 군사적 보장 없이도 열차시험운행 가능 주장.
2006.5.24: 북측 열차시험운행 취소.
2006.5.27: 북측 “남측의 군부가 서해상 무력충돌 문제를 외면한 것”이 시험운행 취소의 사유임을 분명히 함.

의문의 여지없이 5월 17일의 DJ의 열차방북 거절과 5월 24일 열차시험운행 취소의 사유는 한국이 김정일의 ‘NLL 포기요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은 점에 있다.

김정일, ‘NLL 포기’ 소식 기다린듯

김정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발언을 한국측이 NLL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점은 발언 후 바로 3일 후에 실무자들이 열차시험운행에 전격 합의하였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또 김정일은 ‘NLL 포기’를 5월 16일~17일에 있었던 장성급군사회담에서 확인 후, 같은 기간에 있었던 DJ방북 실무접촉에서 열차방북을 허가해 주려 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비록 전직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의 방북과 관련하여 대한민국의 영토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것이 전례가 없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는 점에서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남측에서 NLL 논의 가능을 제안한 제4차 장성급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5월 15일, 비록 ‘눈 가리고 아웅’식이지만 DJ 열차 방북을 열차시험운행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남측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차 방북 실현에 요긴한 군사보장을 위해 경계선 협상에 응할 뜻을 넌지시 내비친 듯하다.”[2006.5.17. 한국일보])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치는 한국측의 ‘낮은 수준’의 제의로 김정일이 분노하던 중, 한국 측에서 군사적 보장 없이도 열차시험운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둥의 ‘망발’이 계속되자, 김정일은 24일 시행일을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열차시험운행을 취소해 버렸다. 다르게 보면 김정일은 5월 24일까지 한국측의 ‘NLL 포기’를 끝까지 기다린 것이다.

수많은 북한전문가들이 북측의 ‘일방적인 취소’의 배후를 추정하였고 보수언론들과 대다수 국민들은 북한의 ‘일방적 약속파기’에 분노하였다. 심지어는 통일부도 이 사태의 책임이 북측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북측은 운행취소의 책임이 남측에 있음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김정일의 입장에서 볼 때, 절차상의 필수요건인 군사적 보장 없이 탑승자 명단 교환만으로도 열차시험운행이 가능하다고 본 한국정부의 기대는 ‘가소로운 짓’이고, 군사적 보장이 ‘NLL 포기’와 연계되어 있음을 명백히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만족시켜주지 않은 한국 정부와, 이런 한국 정부를 충분히 설득 혹은 압박하지 않은 DJ에게 약속파기의 책임이 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해서 북측이 DJ의 열차 방북을 ‘협력과 교류의 외피를 쓴 정략적 기도’라고 비난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뿐더러, 그것은 북측이 ‘NLL 포기’와 DJ의 열차방북을 연계시키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DJ 방북선물은 한국정부 NLL 포기?

이런 상황이라면, DJ는 방북을 포기하거나, 굳이 가야겠다면 승용차나 비행기를 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DJ 스스로 밝혔듯이 ‘철의 실크로드’라는 장밋빛 그림을 그리면서 열차 방북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DJ의 열차방북이 성사되려면 한국정부가 NLL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김정일이 ‘NLL 포기’를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DJ는 도대체 어느 쪽이 양보하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필자는 여기서 DJ의 기대는 김정일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에게로 향해 있다고 본다. 다음과 같은 분명한 사실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 한다:

첫째: ‘NLL 포기’만큼 김정일에게 반가운 ‘방북 선물’은 없다.
둘째: 한국정부는 이미 ‘NLL 논의가능’이라는 양보를 한 바 있다.
셋째: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DJ에게 매파 노릇을 해달라고 청하였다.
넷째: 김정일은 DJ로부터 ‘민족의 앞날을 위한 충고’ 이외에는 얻을 것이 없음으로 챙길 것은 사전에 미리 챙길 것이다.
다섯째: ‘NLL 포기’는 ‘1953년 정전협정체제 붕괴’의 시작을 의미한다.

정동영 전 장관이 전한 김정일의 언급

다른 한편 DJ의 열차 방북 희망과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정황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DJ에게 열차를 통한 방북을 2005년 11월 말 최초로 권한 사람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다[2005.12.30. 문화일보]. 그는 작년 6월 평양을 방문, 김정일을 면담하여 DJ의 방북 초청과 함께 “곧 장성급 군사회담을 재개해 서해NLL을 둘러싼 불안정한 정세를 완화하겠다”는 김정일의 발언을 전한 바 있고, 한국 정부에서도 이 발언을 긍정적으로 판단한 흔적이 있다: “신현돈 홍보관리관(준장)은 ‘서해와 육지에서 긴장이 하루속히 완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국민들의 바람’이라며 ‘장성급 군사회담이 조속히 재개돼 이런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2005.6.17 연합].

정동영 전 장관이 DJ에게 열차 방북을 권했을 때, 그것이 단순히 기차 여행의 안락함 때문이라는 주장은 아무런 설득력도 없다. 왜냐하면 정동영은 통일부 장관으로서 열차시험운행이 북측의 군사적 보장 문제로 이미 두 차례나 무산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따라서 DJ 방북도 군사 보장문제를 해결해야 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년 12월 DJ가 열차방북을 희망하였을 때 김정일이 군사적 보장의 대가로 반드시 무엇인가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을 당연히 계산하였을 것이다. 뒤집어 말해 “열차로 방북하겠다”는 DJ의 의사 표시는 김정일에게 상응하는 군사적 보장의 계산서를 보내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그리고 그것이 동시에 DJ의 비공식적 방북 선물이라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다만 그 계산서를 개인 DJ의 사적인 열차 방북이라는 주소로 보낼 수 없음은 너무나 분명하므로 그동안 미루어 왔던 열차시험운행이라는 주소로 보낸 것이다. NLL 문제를 다룬 바로 제3차, 제4차 장성급군사회담이 그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자세히 제시한 DJ의 방북추진과정 일지를 살펴보면, 특히 동시에 진행된 제4차 장성급군사회담과 DJ 방북 실무접촉의 연관관계를 살펴보면, 김정일의 계산서, 즉 ‘NLL 포기’ 요구가 DJ의 열차방북 여부와 관련이 있음은 너무나 명백하다. 군사회담에서 ‘NLL 포기’가 성사되지 않자 실무접촉회담에서 DJ측의 열차 방북 요구가 거절됐다.

‘NLL 포기’라는 김정일의 계산서를 DJ가 미리 예상했는지 혹은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정동영 전 장관은 열차방북에 필요한 군사적 보장이 장성급군사회담에서 논의될 것이고, 김정일이 장성급군사회담을 통해 ‘NLL 포기’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작년 6월 평양에서의 김정일 면담을 통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정 전 장관은 대한민국 헌법의 영토조항을 개정할 것을 주장한 바도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DJ가 한국정부에 구체적으로 김정일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의 ‘NLL 포기요구’를 분명히 내치지 않으면서 열차 방북을 계속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만에 하나 DJ가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중재한다는 이유에서, 혹은 그 어떤 다른 이유로 한국정부가 NLL을 포기할 것을 은연중 희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NLL 포기는 盧정부 정치적 자살

필자는 노무현 정부가 DJ의 열차방북을 성사시키기 위해 NLL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특히 5․31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의 소재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예상되는 국민의 분노로 볼 때 정치적 자살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외견상으로는 김정일이 먼저 양보하여 DJ의 열차 방북을 성사시킨 후 한국 정부가 그 어떤 명분을 걸어서든 NLL을 포기할 경우라도,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DJ 역시 역사적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꼼수로 영토를 팔아먹었다는 비판이 추가될 것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홍성기/ 아주대 특임교수(철학박사)

홍성기(洪聖基)
-서울출생(1956)
-경기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뮌헨대 철학석사
-자르브뤼켄대 철학박사(논리학, 동서비교철학)
-아주대 특임교수(현)
-주요논문 : <용수의 연기설><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비판>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