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북핵놓고 냉전 재강화 세력 결집 우려”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은 “세계는 지금 오랜 구미지향 위주의 자세로부터 아시아 중심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서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발간된 영문저널 ‘글로벌 아시아(Global Asia) 창간호에 실은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미래’라는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아시아가 넘어야 할 산으로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일본의 복잡한 긴장관계와 북핵문제를 들었다.

그는 특히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제정치 기류는 냉전의 해체는 커녕 냉전의 재강화를 노리는 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전 대통령 기고문 요약.

21세기는 세계화와 지역주의가 경쟁하고 공존하는 시대다.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지만 지역화의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튼튼한 지역화가 있어야 성공적인 세계화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그런 맥락에서 아시아 시대의 도래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아시아는 역사와 문화적 전통에서는 물론 경제의 성장 잠재력과 국제정치적 위상에서도 세계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서구의 시각으로 아시아를 판단하는 근대 국제정치의 관성을 넘어서, 아시아의 시각으로 세계와 만나고 대화함으로써 비로소 아시아가 더욱 통합되고 진정으로 세계화될 수 있는 미래가 싹트고 있다. 세계는 지금 오랜 구미지향 위주의 자세로부터 아시아 중심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아시아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평화를 진전시켜 인류의 복지와 세계 평화에 공헌하는 것이다. 아시아에는 아직 민주주의와 인권이 위협받는 나라가 적지 않고 한반도처럼 냉전의 암운이 가시지 않은 지역이 있으며 빈곤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안보(human security)를 위협하는 지역이 남아 있다. 민주주의가 강화되고 빈곤이 퇴치되지 않으면 평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 같은 과제들은 지역간과 지역 내의 대화와 협력을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 동아시아포럼(EAF),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동아시아 공동체를 위한 그간의 노력들은 모두 아시아에 주어진 이 같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는 방대한 잠재력과 현실적인 역량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비하여 그 결집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발전과 경쟁력의 차이가 큰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아시아는 한편으로는 아시아 각국의 균형잡힌 이익과 발전에 힘쓰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선발 지역공동체와의 경쟁과 협력에도 차질이 없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나는 1998년 11월 베트남에서 열린 `제2차 ASEAN+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여하여 동아시아 공동체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이를 위하여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의 창설을 제안한 바 있다. EVAG는 2001년 5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경제, 금융, 정치ㆍ안보, 환경ㆍ에너지, 사회ㆍ문화ㆍ교육, 제도 등 6개 분야의 동아시아 협력 기본방향과 중장기 비전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ASEAN+한중일 정상회의를 동아시아 정상회의(EAS)로 발전시킬 것과 동아시아포럼(EAF)의 창설을 제안하였다.

이 같은 다년간의 노력과 상당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시아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특히, 최근 역사문제를 둘러싼 한중일 삼국의 복잡한 긴장관계는 국내정치의 이해관계와 결합되면서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자극함으로써 이 지역의 협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국제정치 기류는 냉전의 해체는 커녕 냉전의 재강화를 노리는 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과 아시아의 미래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통하여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이 활발히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군사적 긴장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하며 동시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해주고 경제제재를 해제해 주어야 한다. 이는 북미관계 개선과 6자회담의 재개 및 실질적 성공을 통하여 구체화될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관계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의 문제이자 세계의 문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는 군사적 수준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번영과 인권 및 민주주의에도 직결되는 문제다.

나는 현재의 6자회담 틀이 북핵문제 해결에 국한된 임시적 회의가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 및 민주주의를 증진하기 위한 상설적인 다자간 협의체로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평화,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지만 현재와 같은 각국의 노력이 아시아의 미래를 보다 밝게 만들 것이다. 아시아 문화의 다양성과 우수성, 자력에 의한 민주화 경험의 확산,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공동의 경제이익 등이 아시아의 통합과 평화를 앞당기게 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에는 유교, 불교, 가톨릭교, 개신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명이 공존하고 협력하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문명간의 갈등에 비추어 볼 때 아시아 통합에 대한 큰 희망의 원천이라 하겠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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