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방북 무산, 진짜 속사정이 궁금하다

국내 일각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족을 위한 마지막 봉사’임을 강조하며 추진해온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방북이 끝내 무기한 연기됐다.

DJ 방북을 위한 실무접촉 남측 수석대표를 맡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1일 “돌출상황 때문에 지난 5월 합의됐던 6월말 방북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미사일 발사 문제로 시기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북 무산은 그동안 실무협상 과정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북측의 태도를 봤을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북은 지난달 2차례의 실무접촉 끝에 27일부터 3박4일간 육로를 통한 방북에 합의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지난 7~9일 3차 방북 실무접촉을 갖기로 했으나 일방적으로 취소했고, 광주6.15행사에서도 “평양에 가서 답을 주겠다”는 말로 협상을 피하고도 아무런 연락을 주지 않았다.

여러 정황을 놓고 볼 때 김 전 대통령의 방북 무산이 단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이라는 ‘돌출상황’으로만 결론 내리기엔 부족함이 많다.

“DJ 쉬면서 관광이나 하라 한건데 웬 ‘통일’논의?”

1994년 핵문제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북한이 카터를 특사로 초청했듯이, 미사일 문제를 대화국면으로 풀어나가려는 한성렬 유엔 차석대사의 발언을 볼 때 DJ를 불러 미국과의 다리를 놓게 하는 방법도 가능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조건에서도 DJ의 방북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DJ 방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평양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을 통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문제다. 그리고, 지난해 8.15 북측참가단 대표도 누차 방북을 권했고, 우리 정부도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사안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DJ 방북이 막상 닥치자 한발 물러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일이 DJ 방북 자체를 탐탁지 않게 본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북한은 6.15정상회담 당사자인 김 전 대통령을 관광이나 하면서 쉬라고 초청한 것인데, 김 전 대통령이 통일방안과 함께 민족의 운명을 논하자고 밝혀 김정일이 방북 자체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약속이 안 지켜진 상태에서 김 전 대통령이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북핵문제와 경제제재 문제를 미국과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과의 남북관계 논의는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DJ의 통일방안 논의나 ‘민족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 등이 북한의 초청 의도에 한참 비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실무접촉에서 의사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다, 북측이 주도권을 가지고 풀어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논의 자체를 소극적으로 나온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풀리지 않는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외면하고 ‘민족운명’ 논할 자격 없어”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지난 2000년 정상회담에서 DJ가 김정일에게 준 5억달러에 해당하는 선물이다. 북한은 사실 이 부분에 대한 기대를 가졌지만, 남측 여건에서 이러한 선물 준비가 어렵게 되자 한 발 물러섰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선물만 준비됐어도 열차방북까지 가능했으리라는 계산이다.

DJ 방북이 무산된 다음날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의 약속 파기를 따져야 할 DJ가 수구냉전세력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미사일 문제를 수구냉정세력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 북측의 일방적 행동에 끌려 다니는 신세를 자각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보다는 수구냉전세력 책임론을 덧씌우기 바쁜 모습이다.

남북화해협력은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밑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북한을 향한 일방적 화해의 손짓은 무슨 의도인지 간절함을 넘어 애절함마저 느껴진다. 이러한 정책의 원조 DJ는 한술 더 뜨고 있는 셈이다.

우리 국민들은 단 한 번도 DJ에게 김정일을 만나 민족의 운명에 대해 논하라고 요구한 바가 없다. 그가 민족의 운명을 두고 대화할 상대인지도 DJ는 재고해봐야 한다. 그가 햇볕정책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이면에는 납북자와 국군포로 가족들의 눈물이 있었다. 이날 납북자 가족의 면담 요구까지 문전박대한 DJ가 과연 민족의 운명을 대변할 자격이 있는지도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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