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 증세가 악화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 직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현금을 준 적이 없다는 반론을 편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무장에 도움이 됐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북한에 돈이 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가 북한에서의 사업권을 따기 위해 돈을 제공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17일(현지시각) 방송된 이번 인터뷰는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하기 3일 전인 지난 10일 서울 동교동 사저에서 1시간가량 진행된 것이다.
그는 “현대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 인프라 시설, 조선소, 철도 등의 건설을 조건으로 법적 권리를 확보했다”며 “이는 현대의 자체적인 위험부담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현대의 이러한 권리는 되살아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우리 정부는 매년 20~30만 톤 씩 식량과 비료를 지원했을 뿐이다. 그런 것으로는 핵은 못 만들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동시에 남북관계는 활발해져서 보다시피 남한 돈이 북한으로도 가고 북한 돈이 남으로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북한에 퍼주기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남쪽에서 북한을 도와서 핵무기가 개발되었다는 주장은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사람 외에는 합리성이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한 “내가 2000년 평양을 간 후 10년 동안 남북관계는 화해·협력적 방향으로 진행됐는데,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 사태가 급변해 지금은 제2의 냉전시대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어떻게 갑자기 변할 수 있는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묻자 “(남북)양쪽이 서로에게 책임을 묻고 있고,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은 1994년 핵을 완전히 포기했고, 2000년에는 장거리 미사일을 갖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부시 대통령이 들어선 후 미북간 제네바 합의가 폐기됐고, 북한이 미국과 대결주의로 나가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북핵 폐기를 위한 국제사회의 대응에 대해 “경제 제재와 같은 방식은 동북아의 긴장만 증가시킬 뿐”이라며 “북한과 미국은 스스로 합의했던 2005년 9·19합의로 되돌아가야 한다. 미북간 국교가 정상화되면 북한은 제2의 중국, 제2의 베트남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한에 한 번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김정일은 주민을 억압하고 기본인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김정일을 만나 본 분으로써 어떤 인물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김정일은 똑똑하고 머리가 좋으며 판단력이 빠르다”고 평가한 뒤 “공산주의는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를 다룰 때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하고 있는 신촌 연세 세브란스 병원측은 17일 “혈압도 안정됐고 폐렴 증상도 호전됐으며, 의사표시 소통도 잘 할 수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현재는 안정된 상태를 되찾았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16일 새벽 상태가 병세가 악화돼 인공호흡기를 부착했고,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