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의 핵개발 자금 유용’ 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여야 정치권의 설전이 뜨겁다.
유럽을 순방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7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하는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지난 10년간 ‘햇볕정책’이란 미명 아래 북한에 지원한 현금이 핵무장에 전용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이처럼 직설적으로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당은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지난 10년간 ‘안보 위기’를 방조한 책임은 좌파 정권에 있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고, 야당은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남북관계’ 성과를 지우기 위해 ‘대북지원’ 규모를 의도적으로 부풀리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좌파 정권 10년 동안 북한에 지원된 현금 규모는 총 29억 222만 달러로 북한이 장거리 로켓과 핵을 각각 2번 이상 개발할 수 있는 돈”이라며 “대한민국으로부터 지원된 현금이 북한의 핵무장에 쓰여졌다고 추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아낌없이 지원했음에도 우리에게 돌아온 건 핵 위협과 미사일 협박밖에 없다”며 “막대한 현금을 지원한 좌파는 국가안보의 위기를 조장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9일 의원총회에서 “국가 원수가 확실한 사실을 갖고 분명하게 얘기해야지, 어떻게 의혹을 얘기할 수 있느냐”며 “자신들의 남북문제에 대한 무능을 덮기 위한 호도책”이라고 이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했다.
그는 “대북지원에는 경제 교류부터 인도적 지원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이를 분류하지 않고 총액만 갖고 핵개발 의혹을 제기했다”며 “이러한 의혹을 얘기해 북한을 자극하고 남북관계를 더 악화시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끌었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이 대통령의 발언을 ‘남북관계에 대한 무지와 책임 회피’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전 장관은 9일 한 강연회에 참석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은 2006년 이산가족 화상상봉시설의 북한 내 설치를 위해 몇 십만 달러를 준 것이 유일하다”며 “(이 현금지원도) 상봉 시설 모니터에 들어가는 컴퓨터가 북한으로 반출할 수 없는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 현금지원이 있었다면 한나라당이 가만 있었겠느냐”고 반박했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 대북현금 지원액이 29억 달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일반 상거래대금 18억 달러와 고(故) 정주영 회장의 금강산과 개성사업권 등 11억 달러를 합친 것으로, 교역 대가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민주당과 과거 참여정부 인사들의 이 같은 반발에 ‘북한의 ‘ㅂ’자만 나와도 놀라고, 김정일의 ‘ㄱ’자만 나와도 소스라치는 딱한 분들”이라며 “민주당이 이 대통령의 발언을 시빗거리로 삼는 것 자체가 참 가당치 않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남북관계 경색과 한반도 안보위기를 불러왔다는 야당과 좌파단체들의 공세에 시달려왔던 정부는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기점으로 ‘햇볕정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 작업을 지속하는 동시에 이전 정권과는 확실히 차별화 된 대북정책 기조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