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C 가입, ‘국격’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지난달 26일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 승인되었다는 낭보가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이후 새롭게 날아든 의미 있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우리나라를 이렇게 빠르게 성장시키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해준 지난 시기 선대의 노력과 업적에 대한 것이다. 가난한 나라를 오로지 자립하는 나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그 일념으로 무장한 애국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정치 경제적 지도와 지휘에 따라 노동 현장과 농촌에서 땀 흘리며 일한 우리네 아버지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혜안과 분투가 오늘 우리들을 이렇게 값어치 있는 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민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후대가 다시 상기하게 되는 역사적 감격이며 감사인 것이다. 
   
다음으로 필자는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싶다. 사실 OECD의 DAC 가입이 국민들에겐 얼마나 희소식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그것이 국가적 품격과 위상에서 얼마나 큰 의미인지 국민들에게 얼마나 피부로 와 닿을지 모르겠다. 그 같은 회의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그에 걸맞은 홍보라든가 대국민 인식의 제고가 약했음의 반증이기도 하고 그만큼 활동이 미미했던 탓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1~13위를 오가는 경제대국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도 우리 대통령은 그만한 대접을 받는다.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그만한 세계적 위치를 가진다는 것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수준에 걸맞은 세계적 국민이 되는 데는 얼마나 미치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그만한 위치의 나라이며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외교 무대에서 사실 그만한 취급을 못 받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 경제적 위상만큼이나 외교적으로 우리나라가 그만한 역할을 못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잘 살게 되었으면 나눠줄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나눠주며 사는 이치가 인간의 도리에서 나오듯이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인류애의 당연한 귀결이다. 많은 선진국에는 그 같은 책무가 따르며 우리나라가 가입 승인된 DAC의 22개 나라들은 세계의 못사는 나라들에 대한 지원에 90%를 담당해 왔다. 이로 인해 OECD 안에서도 DAC 국가들은 ‘선진국 중의 선진국’으로 불리어 왔다. 그 반열에 우리나라가 들어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세계의 시선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대외원조에 참 인색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다. 잘 사는데 비해 세계적 책무에는 소극적이고 소홀하다는 것이다. 가령 DAC 국가들이 평균 공적개발원조(ODA)로 국가총소득의 0.35%(2006년), 0.28%(2007년), 0.30%(2009년)를 지원하는 동안 한국은 0.06%, 0.07%, 0.09%에 머물렀던 것이다. 다른 국가들의 평균치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것이다. 


한국이 DAC 회원국이 된 데는 무엇보다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 반열로 발돋움한 최초의 ‘케이스’라는 면에서 더욱 의미가 부각되고 있다. 한국은 해방 이후 세계로부터 127억 달러를 원조 받았다. 물론 그 중 55억 달러는 미국, 50억 달러는 일본으로부터 받았다. 한국은 1995년에야 세계은행의 원조대상국 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다. 40년 전인 1969년 정부 예산규모 3000억 원이던 한국은 약 800억 원을 국제사회로부터 지원받았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원조에 의지해 개발을 추진하고 성공하였으며, 전례 없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8년 한국은 9350억 원을 세계 도처 가난한 나라들에게 지원하는 나라가 되었다. 받은 것을 돌려줄 때가 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가 가장 밀집해 있는 지역은 아프리카다. DAC 가입 승인을 앞둔 지난 24~25일 한국에서는 한-아프리카 장관급 회담이 있었다. 아프리카는 지구상 마지막 성장엔진으로 불린다. 아프리카를 잡아야만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정도이다. 중국과 일본이 앞 다투어 아프리카로 외교력을 확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며 아프리카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국이다. 2000년에 아프리카 나라들의 부채를 전액 탕감하고 주석과 총리가 번갈아가며 수차례 아프리카 순방 외교에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5년마다 정기적으로 아프리카 55개국의 정상들을 자기 나라로 불러 모으는 나라가 일본이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에 비하면 많이 늦었다. 원조는 주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미래 이익의 치열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그저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은 더 큰 국익으로 돌아 올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만 해도 그렇다.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지역에서의 ‘평화 강제 및 건설 활동’이 참으로 중요하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위험 지역을 외면하기는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버려두면 이라크는 더 큰 혼란에 직면할 것이고 아프가니스탄은 최악의 반인권 집단인 탈레반이 다시 장악하는 비극의 사회로 돌아갈 것이다. 여성들은 다시 또 교육을 받지 못하고 노예보다 더 한, 참혹한 삶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재건 문제에 이르러서는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식은 곤란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잘 사는 나라, 국력이 되는 나라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나라는 세계 현실에서 그만한 인도적 책무가 따르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DAC 회원국이 되었다는 것에 뿌듯해할 줄 알고 그 책무성을 통감할 수 있을 때 우리 국민은 명실 공히 자랑스러운 ‘선진 국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후손을 위해 더 큰 국익을 안겨주고 더 높은 ‘국격’을 물려주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번 기회가 그런 면에서 한국의 역할, 위상 그리고 인류적 책임을 돌아보고 새로운 국가 전략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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