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연구] CEO 김정일―4 개발독재가 모델인가

“요즘은 박정희 대통령이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유신이니 해서 비판이 많았지만 초기 새마을 운동을 한 덕택에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었던 점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 서울을 보았는데,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 조선이 자랑할 만한 세계의 도시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이 1999년 10월 1일 평양을 방문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나눈 대화다.

개발도상국가의 지도자가 낙후된 경제를 재건하고 독점적 권력을 유지하는 사례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 모델과 일당독재 속에서 경제는 개혁•개방을 추구하는 중국식 발전모델이다.

이 중에서 김정일이 관심을 갖는 모델은 박정희식 개발독재다. 김정일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본격화되던 89년 중국을 비공개 방문, “북한은 종심(縱深)이 짧아 대규모 특구 전략을 통한 개혁•개방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중국 지도자들의 개혁•개방 수용 요구에 대한 답이었다.

오히려 김정일은 2000년 5월 29일 베이징 방문시 주룽지(朱鎔基) 등 중국 지도부에게 박정희식 모델을 언급했다. 김정일은 “넓은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고 전략적 가치가 높아 외국 자본과 기술의 유입이 원활한 중국 방식보다는 속도전을 통해 단기간에 경제를 회복시킨 박정희식 모델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식 모델에 관한 김정일의 지대한 관심은 남북한 체제 경쟁 특성상 외부에 공개되고 있지 않다. 김정일은 주로 사석에서 이에 관한 얘기들을 했다. 김정일은 83~85년도쯤 신상옥•최은희씨 부부와 만난 자리에서도 이를 거론했다. 신•최씨를 납치한 뒤 평양에서 만났을 때다. 김정일은 신상옥씨에게 “우리는 하나의 당으로 무엇이든 잘해나갈 수 있는데, 남조선에서는 어째서 많은 당이 필요한가”라고 말했다. 농담 섞인 표현이었지만 독재적인 경제 개발 전략을 지지한 것이다.

“중국식 개혁보다 단기간에 경제회복” 칭송

“영화로 보니 서울은 도쿄보다 나은 도시”

독재체제 유지•식량난 해결의 답 찾고자해

실제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2004년 10월 김정일이 실무형 테크노크라트를 대거 중용한 것은 역시 실무 책임자를 중시했던 박정희식 모델의 부분 적용이다.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 건설의 주공(主攻)전선으로 농업생산을 강조한 것 또한 비슷하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과 유사하다. 김정일이 올해 신년사에서 벼 품종 개량을 최우선 과제로 지시한 것도, 박정희의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한 통일벼 개발과 흡사하다. 올해는 김정일이 박정희처럼 농촌 현지 지도를 빈번하게 하고 농업문제를 직접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의 박정희식 모델에 대한 관심은 2002년 5월 당시 군소 정당이었던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방북 당시 절정에 달했다. 박 대표는 “김 위원장이 아버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나라를 발전시킨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방북 후일담을 털어놓았다. 박 대표에 대한 김정일의 환대도 예상 밖이었다. 김정일은 박 대표 일행 4명을 위해 베이징까지 특별기를 보내주었다. 숙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당시 썼던 백화원 초대소였다.

김정일은 1•21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서울에 가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하고 싶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고까지 성의를 보였다. 또한 박 대표의 요청 사항인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치, 국군포로 생사 확인문제, 북한 축구 국가대표단 초청 등에 대해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후에 이런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김정일은 박 대표의 귀환을 위해 판문점도 열어줬다. 판문점 통로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임동원 전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와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등 극히 일부에게만 허용돼왔다.

박 대표에 대한 김정일의 예우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과거 북한 매체의 남측 비난 1호는 한나라당 대표였다. 박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가 된 이후 박 대표에 대한 북한의 비난은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 중앙통신은 지난 연말 국가보안법 폐지 등 남측의 각종 이슈와 관련,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 5적을 능가하는 현대판 사대매국 5적’이라고 거세게 비난했고, 박 대표는 비켜갔다.

박 대표에 대한 김정일의 집착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우선 박정희식 개발 독재에 대한 동경의 또 다른 표현이다. 김정일은 체제 교체(regime change)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초조감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식 모델은 그에게 매력적이다. 체제도 유지하고 먹는 문제도 해결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실제로 박정희식 개발 독재 모델을 따르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우선 박정희의 경제건설 노선은 대외개방이다. 박정희는 미국을 활용하는 용미(用美) 외교를 통해 국제사회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수출을 통해 경제건설을 이뤄냈다. 그러나 북한은 북핵문제로 미국과 대립 상태에 있다. 대외 개방의 의지도 없다.

또 박정희의 수출 지상주의 전략은 김정일의 자력갱생과 큰 차이가 있다. 만약 김정일이 진정으로 박정희식을 따른다면 북한경제의 회생은 가능할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김정일이 과연 충실하게 박정희식 모델을 따르고 있느냐를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다. 오늘날 북한의 현실은 5•16 후 남한의 복사판이다. 박정희식 모델은 김정일이 국가를 재건하는 데 교과서가 될 수밖에 없다./출처:chosun.com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남성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