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관영지, 진실 왜곡…北매체도 진실 가리지 못해

동독의 대표적인 신문인 ‘노이에스 도이칠란트(Neues Deutschland)’는 당의 기관지로 40년 세월 동안 인민들에게 비아냥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지구의 1/6은 무엇입니까?” “소비에트 연방”이나 “정보의 1/3은 무엇이죠?” “가짜...

東獨 교회처럼 北내부서 민주화 지원할 세력은?

통일 전 동독 교회는 북한의 교회가 공산당의 하부조직이 되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끊임없이 당을 상대로 갈등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동서독 軍통합이 한반도 통일에 주는 교훈

반세기를 상호 반목과 대립속에서 공존했던 동서독 통일의 최우선 과제는 양국의 군(軍)을 무리 없이 통합해내는 일이었다. 군이야말로 물리적 힘을 소유한 실체로서 순탄한 군 통합이 이뤄질...

통독 독재청산 1순위는 ‘슈타지’…北 독재청산 1순위는?

통일 후 독일 정부가 추진했던 청산작업 첫번째 대상은 당의 ‘창과 방패’로서 공산 권력의 근간이 됐던 동독 국가안전부 ‘슈타지’였다. 이 일은 슈타지가 막강한 조직력을 갖고...

독일은 통일 재도약 이룬 통일기금 어떻게 마련했나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물론이고 동서독 당사국조차도 예측하지 못했던 독일 통일은 독일 사회에 두 가지 중요한 과제를 부여하게 됐다. 하나는 동독의 비효율적 사회주의 경제구조를 전환해...

통일의 초석을 연 서독 이산가족 정책의 교훈

통일 전 서독정부가 추진했던 이산가족 정책의 특징은 ‘원칙’과 ‘실용성’이었다. 이는 언젠가 양 국가가 재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기본법 정신에서 기인했다. 이 정책의 주 대상은 동독...

무장 군부를 무너뜨린 獨비폭력 운동이 주는 함의

동독의 베를린 소재 겟세마네 교회(Gethsemanekirche)와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두 교회는 동독 내 자유와 민주화의 대명사이자, 이를...

南北 주민 신뢰받는 통일의 리더십 가진 정치인 있나

동서독 분단시절 통일에 대한 서독사회의 반응은 이중적이었다. 통일 직전 조사한 설문에서는 통일의 당위를 묻는 질문에는 95% 이상이 동의한 반면, 통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고 믿는 국민은...

舊동독에도 교화소가 있었다는데 실체는?

마르코트(Margot Honecker) 여사는 여성으로서 동독의 가장 강력한 실력자이자, 공포의 대명사였다. 남편 에리히 호네커 총서기도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그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마르코트는 1950년...

동독 슈타지 지원받은 적군파의 몰락이 주는 교훈

분단시절 서독체제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위협은 서독 내 좌익테러단체인 적군파(Rote Armee Fraktion, 약어 ‘RAF’)의 존재였다. 적군파는 1970년 5월 14일, 베를린 테겔 감옥에 수감돼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