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A 해결 북한의 득과 실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가 약 21개월만에 일단은 북한 입장의 ‘관철’이라는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BDA 자금 문제가 미국과 러시아의 중앙은행을 통한 송금이라는 방식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자, 기회있을 때마다 재무부의 금융제재가 2.13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북한의 행태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함으로써 ‘북한 승(勝)’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선 당장 BDA에 묶였던 돈을 돌려받게 된 것은 물론 ‘동시행동 원칙’을 관철하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의 전환을 확인하는 소득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그러나 ‘BDA 과정’을 거치는 동안 불법행위 국가라는 이미지가 확산.고착되고, 미국 등의 대북 협상파의 입지가 흔들리고, 국제사회의 압박망이 더욱 옥죄지는 ‘내상’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미국의 자평이 아니더라도, 북한 자체 평가에서도 국제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 경제체제의 취약성을 외부세계에 확인시킴으로써, 협상이 대결 모드로 바뀌는 상황이 오면 이 약점에 대한 집중 공격을 당하게 되는 위험성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서 BDA 해결 과정의 가장 큰 정치적 수확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의 전환 의지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BDA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라며 미국의 적대정책의 전환 의지를 확인하고 대미 핵협상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아왔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압박과 고립 정책으로 일관했던 미 행정부가 직접 나서 네오콘 등의 거센 비난과 반발을 무릅쓰고 미국의 중앙은행까지 동원해 송금을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협상 의지를 어느 정도 신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BDA 자금이 러시아 은행으로 옮겨진 것을 확인하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표단을 초청한 것에 대해 “그동안 미국의 노력을 인정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해석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조치가 대북 불신을 거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북한도 BDA 문제 해결 하나로 미국의 적대정책이 전환됐다고 단정짓지는 않겠지만, 협상을 통해 핵문제와 북미관계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은 일단 확인된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북한이 목표했던 국제금융체제 복귀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이번 BDA 자금 문제의 해결은 앞으로 핵협상에서 진전이 있을 경우 북한이 국제금융체제에 정상적인 행위자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해 준 것이다.

BDA 문제가 불거진 후 극히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국제 금융기관들이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기피함으로써 북한은 대외금융 통로가 막혀 수출입 등 경제활동 전반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를 “제재중에서도 가장 악랄할 것”이라며,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기업이 북한에 송금하는 것은 물론, 북한 기업이 외국의 거래 기업에 송금하는 것조차 막힌 데 따른 답답함을 토로했었다.

그러나 BDA 자금의 송금이 달러화와 유로화로 미국과 러시아의 중앙은행을 거침으로써 북한의 요구대로 “종전과 같이 자유롭게 송금할 수 있는” 국제금융체제로의 복귀의 단초가 마련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 입장에서 이번 송금이 일회성으로 끝나 국제금융 활동에 장애가 여전한 것으로 판단할 경우 다시 2.13 합의 의무 불이행이나 6자회담 불참과 같은 ‘무기’를 꺼내들지 주목된다.

북한이 되찾은 BDA 자금 2천500만달러는 북한의 2005년 예산의 1%에 육박하는 액수라는 점에서 커다란 액수의 현금 수입이 북한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BDA 자금 중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기실과 노동당 38호실 및 39호실 자금 등 ‘통치자금’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으로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자금이었다.

북한은 BDA 해결과정에서 ‘동시행동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미국의 진을 빼고 ‘미국 길들이기’에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북미 베를린 회담에서 미국이 “6자회담 초기조치 합의 뒤 30일 내에 BDA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 대 말’의 약속을 하자 5차 3단계 회의에서 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결국 2.13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법적.기술적 문제로 실제 송금이 이뤄지지 않게 되자 버티기로 들어갔으며, “BDA 송금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초청하고 영변원자로를 폐쇄하라”는 미국의 타개안에 대해 “BDA 자금을 받고 난 뒤 원자로를 폐쇄할 것이고 다른 길은 없다”고 일축했었다.

북한은 결국 향후 핵불능화 단계나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 기존 핵무기 폐기 등 핵문제 해결의 전 과정에서 동시행동 원칙을 철저히 지켜나가는 동시에, 북한의 의무만을 요구할 경우 계속 파행을 겪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각인시킨 셈이다.

북한은 내부적으로도 주민 결속을 다질 수 있는 소재를 갖게 됐다.

BDA 문제를 북한체제 붕괴를 위한 미국의 대표적인 적대정책으로 보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부시 행정부가 직접 나서 송금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마침내 미국을 ‘굴복’시키고 승리했다고 주민들에게 자랑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제재와 압박 일변도 정책만을 추구하던 부시 행정부에 김정일 위원장이 핵실험 강행이라는 초강수로 대응하고 BDA 문제까지 해결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이 북미간 첨예한 대결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찬양 선전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다.

그러나 북한은 BDA 과정을 통해 국제사회에 불법활동을 일삼는 ‘불법’ 국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 어려울 만큼 깊이 심었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불신을 확대 심화시켰으며, 그로 인해 북한 상대국 내의 대북 협상파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안게 됐다.

‘BDA 몽니’로 2.13합의의 이행이 지연되면서, “북한이 과연 핵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느냐”는 국제사회의 의구심이 더 단단해지고, “북한은 양보하면 할 수록 더 많은 것을 보상받으려 한다”는 국제사회의 불신도 더 커졌으며, 그에 따라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이때문에 미 중간 선거 이후 숨죽여온 네오콘 등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되고, 대화파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아지게 만들었다.

북한이 앞으로 BDA 해결 과정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으로만 오판하면서 더 많은 양보와 실익을 챙기기 위해 상식밖의 요구로 일관할 경우, 미국과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협상 의지가 얼어붙고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큰 압박과 고립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