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A 실무회의’ 과연 북한에 유리할까?

6자회담 5차 2단계 회의가 18일부터 시작된다. 외신이 전하는 전문가들의 6자회담 전망은 대체로 어둡다.

워싱턴 ‘유라시아그룹’의 브루스 클링너는 “미북 양측이 과거부터 요구해온 전제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황에서도 회담복귀에 합의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긴 하지만 이번 회담을 낙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인사이트 코뮤시케이션스 컨설턴트’의 마이클 브린은 “이번 6자회담의 실제 목표는 회담을 여는 그 자체에 있다”며 “실무그룹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하버드대 핵프로젝트 관리책임자인 제프리 루이스는 “북한이 작은 양보조치를 취해 놓고 곧바로 이를 철회함으로써 결국 미국도 손을 들게 하는 양상이 재연될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중국쪽 전문가들의 전망도 다를 게 없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는 “북한은 핵포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명백하다”며 “북한으로서는 6자회담에 복귀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제재강화 가능성을 줄이면서 핵정책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전망했다.

위잉리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은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국으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번 회담에서 ‘강화된 지위’를 활용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할 것”이라며 “그러나 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북-미간 쟁점이 과거보다 더 커질 전망”이라고 보았다.

류젠융 칭화(淸華)대 교수도 “실질적인 진전을 보기 어렵다”며 “6자회담이 실패해 대북제재를 강화할 경우 북한에 상당한 위기감만 고조시키고 고립 상태도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일부 낙관적인 견해도 없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한국전쟁 공식 종료선언’과 종전협정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밝혔고, 유엔제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진전이 있지 않겠느냐(미 국무부 당국자)는 전망도 있다.

북, 6자회담 참가 목표 달라

6자회담 전망을 어둡게 보는 견해가 우세한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북한이 6자회담에 임하는 ‘목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을 제외한 관련국들은 6자회담 목표를 ‘북한 핵의 폐기’, 즉 한반도비핵화에 두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와 다르다. BDA에 묶인 동결계좌는 먼저 해제돼야 하고, 나아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평화적 핵이용권도 담보받으며 종국적으로는 한미동맹 파기(=조선반도 비핵화)에 목표를 두고 있다. 회담에 임하는 목표 자체가 정반대니까 회담전망이 밝을 리 없는 것이다.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얼마 전 외신기자에게 “핵을 포기할 거면 뭐하러 만들었겠느냐”고 반문한 것은 북핵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발언이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관점과 주장이 있지만 이보다 더 ‘정직한’ 발언은 찾기 어렵다. 길게 잡으면 근 40년 동안 엄청난 돈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쏟아붓고 끊임없이 국제사회를 속여가며 드디어 핵실험까지 한 마당에 정말 ‘뭐하러’ 포기하겠는가? 상식적으로만 판단해도 답은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이 이번 6자회담에 복귀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도 이미 나와 있다. 북한 외무성은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 답변에서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 해결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회담에 나가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16일 베이징에 도착한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이같은 입장을 한번더 확인했다. “미국의 제재해제가 선결조건”이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폐기 초기 선행조치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결국 이번 6자회담 5차 2단계 회담은 지금까지 先금융제재 해제(북), 9.19공동성명 先행동(미)을 주장해오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그럼 만나서 이야기해보자’는, 회담을 이어가기 위한 회담의 성격이 강해진 것이다.

이번 6자회담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BDA 문제를 둘러싼 실무회담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BDA 실무회의’를 담당할 재무분야 실무자를 베이징에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은 이 실무회담의 성격이 6자회담과 명백히 분리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 해결한다는 전제하에 6자회담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先BDA 문제 논의, 해결을 계속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정권은 스스로 ‘핵보유국’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BDA 문제만 해결되면 6자 본회담은 얼마든지 시간을 끌 수 있다고 계산할지 모른다. 북한이 이번에 금융실무자를 파견했다는 사실 자체가 BDA 문제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BDA 회의 북 불법행위 노출 가능성

또 북한이 부수적으로 노리고 있는 대목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6자회담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BDA 회의’는 6자 본회담과 불가피하게 연계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은 주요 ‘의제’ 하나를 더 추가해서 회담의 성격을 희석시키고 시간을 끌면서 6자회담이 전척되지 않는 이유로 ‘미국책임론’을 선전하자는 것이다. 이 역시 전통적인 북한의 협상전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북한은 미국이 금융제재만 해제해주면 핵문제는 모든 것이 잘 풀릴 수 있다는 식으로 선전할 것이다. 결국 북한이 회담에 임하는 여러 목적 중 하나로서 남한내 반미여론 조성도 시야에 넣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BDA 문제는 본질상 불법자금 세탁과 관련한 ‘법적 문제’다. 따라서 BDA 실무회의가 진행되면서 북한의 불법행위가 계속 노출될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미 BDA 계좌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어 1년 넘게 계좌를 분석해왔다. 미국이 BDA 실무회의를 하자는 배경에는 이같은 ‘자신감’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정권은 합법과 불법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약하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스스로 인정했다가 전 일본열도가 들끓은 적이 있다. 당시 김정일은 일본인 몇 명이 납치돼 사망한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착각했을 수 있다. 김정일 정권 자체가 ‘조폭정권’으로 변질돼 있기 때문에 불법행위에 둔감해져 있는 것이다.

결국 BDA 회의가 진행될수록 북한정권의 불법행위가 세계언론에 노출될 것이고, 이는 각국에 다시 한번 김정일 정권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올 수 있다. ‘BDA 회의’가 북한에 유리한 회의로 단정하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6자회담은 북핵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 전망을 갖고 관찰하기 보다는 ‘말싸움’과 북한의 각종 불법행위 노출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관찰 포인트가 될 듯하다. 6자회담은 북핵해결을 위한 회담이기 보다는 이미 ‘정치회담’ 성격이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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