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DA 벽 막힌 2·13…美 ‘조급’ 北‘느긋’

북핵 6자회담 관련국들이 모여 ‘2·13 합의서’에 서명한 지 23일로 100일을 맞이했지만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거부하고 평행선을 달리던 1월, 베를린에서 북한과 양자회동을 갖고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등을 해결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후 6자회담은 급물살을 타 곧바로 ‘2·13 합의’에 서명했다.

2·13 합의가 채결된 이후 참가국들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북한 핵을 폐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정작 합의에는 거론되지 않은 BDA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웃지못할 촌극이 연출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관련국들은 2·13 합의 직후 BDA 북한자금 2천500만 달러에 대해 중국은행(BOC)나 제 3국의 은행을 통해 쉽게 북한계좌로 이체되거나, 적어도 북한 당국이 현금으로 찾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때까지만 BDA 북한계좌 50여개 가운데 얼마나 찾을 수 있을지가 관심사였다.

그러나 예상외의 복병을 만났다. 앞서 미 재무부는 지난 3월 BDA를 ‘돈세탁 은행’으로 공식 지정했고, 미국 은행들은 지난 4월15일 이후 BDA와 일체의 금융거래가 금지됐다. 미 재무부의 이 조치는 테러와의 전쟁을 염두에 둔 ‘애국법 311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 재무부가 BDA를 ‘돈세탁 은행’으로 공식 지정한 이후 북한자금을 중개해줄 은행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북한은 계속해서 ‘선(先) BDA 해결’을 고집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현재 자국 내 자산규모 4위 은행인 와코비아에 북한자금 중개를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 형법에는 범죄와 관련된 1만 달러 이상의 금융거래를 시도하거나 개입하는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된다. 또한 애국법 311조는 대통령의 집행면제 권한조차 적용되지 않는다고 법적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초 미 국무부로부터 요청을 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자금 중개에 적극성을 보이던 와코비아 은행 측도 최근 들어 이래저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와코비아 대변인 크리스티 필립스 브라운도 “정부 측과 계속 논의하고 있지만 감독기관(재무부)으로부터 어떤 적절한 승인이 없으면 (국무부의) 어떤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무부와 재무부의 온도차를 떠나 재무부 내에서도 BDA 문제 해법을 놓고 장관과 차관, 실무자 사이에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실무진에서는 미국 내 은행을 통한 송금에 부정적이고 애국법 311조 적용에 예외를 두는 것도 상당히 꺼려하고 있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BDA 북한자금 중개를 제안 받은 와코비아 은행이 수수료를 대가로 금융 사기범들과 거래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국제문제 전문지인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이 21일 보도했다. 따라서 이 문제가 향후 BDA 문제 해결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이날 보도에서 미국의 4대 은행인 와코비아 은행이 불법자금을 중개함으로써 신뢰도에 심각한 손상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불법자금 송금을 도와달라는 국무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2.13 합이 이후의 북핵 정국은 북한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북한의 바람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3 합의 초기조치까지는 이행하되 현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커다란 변화를 바라지 않는 북한으로선 2.13 합의 이행이 늦어지는 게 싫지 않은 분위기다.

물론, 북한도 BDA 문제 해결을 통해 국제금융시장에 재편입 되는 것을 바라고 있지만 급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자신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발버둥 치면서도 문제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 자체가 북한의 협상 전술에 말려들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미 외교협회(CFR)의 개리 새모어 부회장이 밝힌 것처럼 BDA 문제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 방안을 찾을 수는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시 행정부 자체가 문제 해결에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모어 부회장 말대로 “북한이 2·13 합의 1단계 조치는 이행하겠지만 2단계는 진척을 보이기 매우 어려울 것이고, 부시 대통령 임기 동안 이뤄지기는 더욱 힘들 것”이라는 전망 또한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2·13 합의를 조금이라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이 스스로 쳐놓은 BDA 그물망에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난 이후에나 북한의 다음 행동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BDA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2단계 조치인 불능화 단계에서는 6자회담 관련국들이 더욱더 많은 시간을 참고 인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말이 2·13 합의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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