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서 확인된 한국 외교의 현주소

“냉정한 반성을 토대로 미래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 지난 21일부터 진행된 연례 아세안 장관급회의에 참석중인 정부 소식통은 25일 한국 외교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팽창하는 아세안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분발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싱가포르 언론들은 이번 아세안 연례회의를 전하면서 아세안이 주목하는 핵심 국가로 중국과 인도, 일본을 많이 거론했다.

세계 최강인 미국의 행보가 주목된 것은 다른 국제행사 때와 차이가 없었고 ‘특별국가’인 북한의 동정이 언론의 집중 취재대상이 된 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싱가포르 여론에서는 ‘아세안+3(한.중.일)’내에서 중국과 함께 인도가 부상하는 반면 한국은 밀려나고 있음을 실감케했다.

세계 제1의 인구 대국이자 최근 세계의 자원과 돈을 빨아들이는 중국의 위세는 물론이고 제2의 인구 대국으로 첨단기술의 메카로 부상하는 인도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무섭게 느껴졌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유명환 외교장관도 2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를 마친 뒤 결산 브리핑을 통해 “중국과 인도가 화제가 돼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은 다만 “세계적인 에너지와 식량부족 사태도 엄청난 인구 대국인 인도와 중국 변수에 영향받는 것 아니냐”면서 “한-아세안 관계가 인도보다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추세를 감안할 때 인도가 부상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아직 한국의 역할이 생각처럼 축소된 것은 아니라는 해명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이웃국가인 일본의 외교장관과 악수하는 것도 이상하게 인식될 정도가 됐고, 특수관계인 남북한이 냉랭한 모습을 연출해야 하는 현실은 분명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다는데 정부 당국자들의 인식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금강산 민간 관광객 피살이나 독도 영유권 사태라는 한시적으로 특수한 변수가 당국자들의 발목을 잡은 측면이 크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설정한 외교 지향점이 자칫 초점을 잘못 맞춘 결과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지나치게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을 추구한 나머지 불필요한 기회비용을 더 치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북한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면 아세안 외교무대에서 남북한이 대결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고, 현명한 대북 정책을 추진했다면 ‘10.4 정상선언’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남북 채널이 봉쇄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미국과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연출한 것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그대로 보여줬다는 것이 현지의 분위기다.

이에 따라 흐트러진 외교전열을 정비하고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나가려는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특히 북핵 6자회담의 진전과 함께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 논의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서의 위상정립에 더욱 신경을 써야할 상황이란 지적이다.

외교소식통은 “이명박 정부의 외교철학은 ‘바로 이것이다’는 방향을 제시하면서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한반도 주변국가와의 관계설정을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실천력있는 외교를 할 수 있는 팀워크의 재정비”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국과 인도의 역내 역할이 커지고 있는 아세안을 향한 외교의 강화에도 주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이런 점에서 한-아세안 수교 20주년인 내년을 맞아 한-아세안센터 설립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긍정적인 일로 평가된다.

한-아세안센터는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간 무역 및 투자확대, 관광활성화, 문화교류 등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종의 역내 국제기구다.

유명환 외교장관은 “한-아세안센터는 한국과 아세안 간에 대화가 시작된 지 20주년이 되는 내년을 준비해 마련한 좋은 기구이니 앞으로 이를 통해 한-아세안 간에 실질적인 협력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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