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1994년? “김정일, 극적 만남 연출할 것”

26일 방북한 지미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의 회동이 성사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2010년 두 차례 방북했지만 김정일을 만나지는 못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카터 전 대통령을 비롯해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그로 부룬트란트 전 노르웨이 총리,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등 ‘엘더스(the Elders)’ 그룹 회원들이 평양에 도착했다고 전하면서 영접 인사 및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소개하지 않았다.


외교가에서는 이들의 방북이 북한의 초청에 의해 이뤄졌고, 카터 전 대통령이 전직 국가 수반급과 동행했다는 점에서 김정일과 면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방북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을 만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강하게 밝히기도 했다.


방북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등과 만남 일정을 잡은 것도 김정일과의 면담을 노린 포석으로 해석된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을 위해 북한을 방문할 당시 김정일과의 만남이 성사되기를 기대했지만 김정일의 방중으로 불발됐다.  


김정일 입장에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한반도 정세를 조성하기 위해 이들과의 만남을 정치적 이벤트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정일이 카터 전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 ‘남한과 미국이 대화에 나서야 한다’ 등 메시지를 전하며 적극적인 대화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북한과 중국이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북미대화→6자회담’ 등 3단계 방안에 대해서도 긍정적입 입장을 보이며 대화 공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카터 일행이 방북에 앞서 ‘미북간 평화협정 체결 관련 논의를 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와 관련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받기 위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만큼 카터 전 대통령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강하게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대화공세를 펴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카터 방북을 계기로 한반도 상황을 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끄려고 할 것”이라면서 “특히 김정일이 카터와의 극적인 만남을 연출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현재 미국이 6자회담에 앞서 남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대북식량지원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남한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김정일은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 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카터를 만나 대화공세를 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도 “1994년 핵위기 때도 카터의 방북을 통해 북한이 위기를 모면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이 이번에 카터를 만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 정부는 카터 전 대통령과 김정일과의 만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고 있다. 미국은 카터가 개인자격으로 방북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어떤 정치적 이벤트보다 북한의 태도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소식통은 “이번 카터 방북이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비핵화 등에 대한 이야기는 남한 정부에 얼마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굳이 카터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이 먼저 비핵화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기존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김정일은 현재 평양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일이 김정은과 함께 인민군 창건 79주년을 맞아 공훈국가합창단의 경축공연을 관람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공연이 열린 구체적인 일시와 장소를 밝히지 않았지만 그동안 공연이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개최돼 왔다는 점에서 평양 체류 가능성이 높다.


외교 소식통은 “만약 김정일이 카터를 만나지 않겠다면 평양이 아닌 다른 지역에 머물 것”이라면서 “현재 김정일이 평양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카터 일행과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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