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중앙사로청사건’ 秘스토리 아세요?

▲ 전 사로청 중앙위원장 최룡해

1990년대 북한에서 가장 큰 숙청사건으로 꼽히는 ‘중앙 사로청 사건’. 이로 인해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사로청: 1995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칭) 중앙위원장 최룡해가 광산으로 쫓겨났고, 수십 명의 중앙간부들이 공개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

최룡해는 김일성이 회고록에 ‘백전노장 최현’이라고 칭찬한, 북한의 항일빨치산이자 70년대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최현의 아들이다. 그런 가문에서 태어나 30대의 나이에 사로청 위원장이 되어 승승장구하던 최룡해를 하루 아침에 날려버린 그 사건은 도대체 무엇일까?

거기에는 사로청 소속 무역회사인 ‘은별회사’에 얽힌 기막힌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은별회사’는 최룡해의 돈줄이었고, 결국에는 자기 무덤을 판 ‘죽음의 씨앗’이었다.

‘14차 청년학생축전 참가비 마련’ 이유로 따낸 무역허가

이른바 ‘고난의 행군’(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이 한창이던 1995년 북-중 국경지대에는 수백 개의 무역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경제가 엉망이 되자, 당국에서는 자체로 식량을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관심은 일제히 중국과 가까운 신의주에 쏠렸다. 식량을 자체로 해결하려면 중국과 무역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무역을 하려면 반드시 김정일의 ‘방침’(재가)을 받아야 한다. 가장 먼저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김정일의 방침을 받아 신의주에 무역회사를 차렸다. 이어서 노동당, 안전부, 보위부, 검찰기관이 받았다. 군(軍)에서는 군단급, 지방의 도급 기관까지 앞다퉈 무역허가신청을 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소속 ‘은별회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역허가를 받기 위해 청년동맹 제1비서인 최룡해는 김정일에게 “쿠바 아바나에서 열리는 제14차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할 대표단 비용을 청년동맹이 자체로 해결하겠습니다”라는 제의서를 올렸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은 1989년 평양에서 개최됐다. 축전의 관례대로 이전 개최국인 북한은 14차 축전 때는 맨 먼저 입장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돈이 없어 대표단을 파견하지 못하면 국제적인 망신이었다. 14차 축전 대표단 파견문제로 고심하던 김정일에게 최룡해의 제의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김정일의 흔쾌한 허락을 받은 청년동맹은 무역회사 자리를 중국과 거래하기 편리한 신의주시 역전동 은덕원 옆에 잡았다. 최룡해는 평안북도 청년동맹 제1비서인 로석률을 불러 무역회사 건물을 지으라는 과업을 주었다.

돌격대 여단장 출신인 로석률은 남(南)신의주 ‘6.24건설지휘부’에 동원되었던 수백 명의 청년들을 무역회사 건설에 동원시켰다. 돌격대원들은 5개월 간 전투를 벌여 3층짜리 건물을 번듯하게 지어놓았다. 중국에 특별히 주문해 알루미늄 창문과 검은색 통유리를 끼운 ‘은별회사’는 당시 신의주에서 가장 현대적인 건물로 꼽힐 정도였다.

폐동(廢銅) 모으기 위해 멀쩡한 기계 파괴운동

문제는 무역품목이었다. 사업계획서에 명시된 무역품목은 토끼가죽과 약초, 고치와 같은 농산물이었다.

1995년 첫 무역을 시작한 ‘은별회사’의 실적이 좋지 않았다. 농산물을 가지고 무역하는 회사들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물량확보가 어려웠다. 돈을 벌려면 남이 하지 않는 고부가 가치 품목이 필요했다.

당시 주민들은 압록강을 이용해 중국인들에게 동(구리)을 대대적으로 밀수했다. 동은 전략물자이고, 유색금속이기 때문에 보위부와 안전부에서는 이를 강력하게 통제했다.

실적이 나지 않는 원인을 묻는 최룡해에게 ‘은별회사’ 사장은 “우리도 동과 늄(알루미늄)을 가지고 무역해야 한다. 다른 것은 값이 안 맞는다”고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최룡해는 동을 어떤 방법으로 구입할 것인가를 놓고 청년동맹 간부들과 논의하게 되었다.

최현덕 비서는 “800만 청년들이 한 사람이 5백 그램만 바쳐도 4천 톤은 나온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에서 적동(赤銅)은 1근(斤)당 인민폐 14원, 1kg이면 약 4달러였다.

청년동맹 중앙위원회는 하부조직에 내려보내는 사업계획서에 ‘동맹원 한 사람당 5kg의 폐동(廢銅)을 수집하라’고 지시했다. 당과 근로단체 조직들은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목표를 크게 잡는다.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단 과제를 많이 주고, 지도소조를 각 도 ∙ 시 ∙ 군 청년동맹에 파견,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 단위 책임자들을 추궁하고 비판시킨다.

말이 폐동수집이지, 실제 북한에서 이 운동은 멀쩡한 기계를 때려부숴 일부러 폐동을 만들어내는 현대판 ‘기계파괴운동’이었다. 상부의 불 같은 추궁에 학생들은 공장 전동기를 파괴하며 동을 뜯어냈고, 정전된 변압기를 들어내고 권선을 뜯어다 바쳤다.

전동기, 변압기 권선, 적동, 황동 할 것 없이 동이라고 생긴 것은 다 모았다. 이렇게 모아진 폐동을 제철소나 주물공장에 맡겨 동괴(銅塊)를 만들었다. 알루미늄도 함께 모아 늄괴를 만들었다. 이렇게 녹여 만든 동괴와 늄괴를 실은 차들이 전국에서 신의주로 몰려들었다.

평안북도 검찰소와 안전부는 ‘전략물자인 동을 수출한다’는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은별회사’로 찾아갔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장군님 방침’ 문건을 보고 감히 손도 대지 못했다. 동괴와 늄괴는 세관과 국경통행검사소의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유유히 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둥(丹東)으로 운반되었다.

‘은별회사’가 중국측 금속회사와 거래해 벌어들인 달러는 최룡해와 최현덕 등 청년동맹 간부들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다. 최룡해와 청년간부들은 ‘은별회사’ 지도차 신의주에 뻔질나게 내려와 ‘압록강호텔’에 머물며 ‘청년예술단’ 미녀들을 데리고 최고급의 향락을 누렸다. 훗날 김정일의 분노를 샀던 최룡해의 자택 청소용 로봇도 ‘은별회사’에서 기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조선 안기부 앞잡이’ 누명 씌워 모두 숙청

최룡해는 97년 7월 28일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14차 청년축전에 600여명의 북한대표들을 데리고 갔다. 당시 김정일은 “청년동맹이 당에 손을 내밀지 않고, 아바나 축전을 성과적으로 다녀왔다”고 칭찬을 하면서도 “6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슨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녔는가?”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아바나 축전과 관련해 청년동맹을 뒷조사한 군 보위사령부는 “청년동맹이 통제품(統制品)인 동을 가지고 무역했으며, 그 돈은 남조선 안기부의 공작자금으로 추정된다”고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김정일은 즉시 청년동맹 수사권을 보위사령부에 주고, 최룡해와 거기에 가담한 사람들을 체포하도록 했다. 가택수색 결과 최룡해의 집에서는 수십만 달러가 발견되었고, 청소용 로봇까지 발견돼 화제가 되었다.

보위사령부는 ‘은별회사’의 업무를 정지시키고, 사장과 경리 등 관계자들에 대한 검열을 시작했다. 필자가 북한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최룡해는 함경북도 검덕광산에 ‘혁명화’로 추방되었고, 최현덕을 비롯한 청년동맹 간부 수십 명과 ‘은별회사’ 사장은 안기부의 앞잡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보위사령부에 걸리면 목숨까지 위태롭다는 것을 간파한 경리는 중국으로 도주했고, ‘은별회사’는 청년동맹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백전노장’ 최현의 아들 최룡해도 그렇게 사라졌다.

한영진 기자 (평양출신 2002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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