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신] 95년 이후 공개처형 급증, 최근 ‘실내집행’ 많아

▲ 총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

북한의 공개처형은 북한정권 수립 이후부터 시작됐다. 당시 공개처형은 반인륜적 범죄나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정치범 위주의 범죄자들에 한 해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

70년대 ‘유일사상 위배’ 공개처형 위주

70년대 김정일이 정권을 잡으면서 공개처형이 늘었다. 74년 김정일이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면서 김일성주의에 반하는 정치범들에 대한 공개처형이 주로 집행됐다. 김정일이 유일사상체계를 통해 김일성을 신격화, 종교화하면서 유일사상체계에 저촉되는 경우를 적발하여 시범케이스로 집행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70년대 중반 원산운동장에서 집행된 지하 기독교도에 대한 공개처형이다. 김정일은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해 기독교도에 대한 처형을 본보기로 삼으려 한 것이다. 당시 공개처형 집행자는 “우리 머리 속에는 수령님 사상만 있는데, 너희(기독교인)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길래 귀신을 믿느냐. 여러 사람 앞에 한번 보여주자”며, 기계공구인 드릴(drill)로 머리를 뚫어서 사형을 집행했다고 한다. 이 공개처형은 현재 나이 50대 중반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알려져 있는 사건이다.

널리 알려진 여배우 우인희 처형사건

이 시기에 특이한 공개처형도 있었는데,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북한을 탈출하여 외부에 알려진 영화배우 우인희 공개처형 사건이다. 우인희는 70년대 북한 최고의 여배우로서 미모와 연기실력을 갖춰 북한 주민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우인희가 당 간부들과 간통하고, 특히 재력가였던 한 재일교포와의 성관계가 주민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인희는 재일교포와 지하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성관계를 가지게 됐는데, 문을 닫아건 채 히터를 틀어놓고 깊이 잠드는 바람에 남자는 질식사 하고 우인희는 간신히 살아나 병원에 실려가면서 사건이 외부에 알려진 것이다.

이 사고로 그녀가 체포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우인희와 관계했던 사람들 명단이 나오고, 나중에 ‘김정일’까지 거론되자 김정일은 우인희의 입을 막기 위해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집합시켜놓고 총살시켰다고 한다.

1997년 1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북한의 「공개처형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작성하여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1970년 이후 1992년까지 최소한 23명을 공개처형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보고서가 인용한 증언자 대부분이 원산ㆍ청진ㆍ함흠ㆍ신의주ㆍ평산ㆍ평양 등 다양한 지역에서 최소한 1건 이상의 공개처형을 목격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외부에 알려진 공개처형은 일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식량난 시기 공개처형 증가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1990년대 중후반에는 공개처형의 횟수와 범위가 광범위하게 늘어난다.

식량난 이후 사회일탈행위가 급증하고 체제를 뒤흔들 만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자 북한 당국이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치안부재와 국가재산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밀반출되는 등 사실상 사회가 통제불능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식량난이 악화되고 주민들의 무질서가 극에 달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북한 당국은 더 충격적인 공개처형을 자행한다. 일반적인 공개처형으로는 약발이 먹히지 않자 북한 당국은 기존의 단발방식의 사격에서 연발사격을 가해 상체부위를 아예 날리는 끔찍한 처벌을 자행한다. 95년에는 평양 주변구역에서 인육(人肉)을 돼지고기로 속여 팔던 정육점 주인이 공개처형 되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공개처형의 죄목을 살펴보면 이 정도의 행위를 갖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강간, 살인 등의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있지만 지프차를 훔쳐 달아났다든지, 두부콩 2kg을 훔쳤다든지, 강냉이 도적질 3번에 60kg을 훔쳤다든지, 공장 물건을 빼돌렸다든지, 남한 노래를 흥얼거렸다든지 하는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본보기’로 공개처형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95년-98년 시기는 ‘재수 없이 걸리면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체제불안 커지며 공개처형 급증

1995년 식량난 이후에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하여 매 구역, 군, 노동자구(리)에서 분기에 한 번씩 지역주민들을 모아 놓고 주민들을 교양한다는 명목 하에 시범 케이스로 사람들을 2~4명씩 공개처형하는 제도를 실시해왔다고 한다. 이를 수치상으로만 추산해보면 북한 전역에 걸쳐 석 달에 한 번씩 442개 장소에서 평균 1,326명이 공개총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매번 이 같은 수의 사람들이 공개총살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북한 당국은 2000년 이후 범죄가 다시 증가하자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공개처형을 해왔으나, 2002년부터는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목을 의식, 과거와 같이 사전에 공고하고 주민을 동원하여 운동장에서 집행하지 않고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장마당과 역전 등에서 예고 없이 공개처형을 집행한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특히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공고문’을 증거로 공개처형 금지를 요구한 것을 계기로 사전 예고 없는 공개처형과 비밀처형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회령 공개처형 동영상’은 보위부원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공개처형을 선전했다고 전해져, 북한이 체제단속 차원에서 또다시 공개처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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