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美 평양연락사무소 무산 비화 아시나요?

북미간 관계정상화를 궁극 목표로 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미국의 평양 연락사무소 설립 준비 요원으로 활동했던 켄 예이츠 미 국무부 관리가 당시 비화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예이츠씨는 6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당시 연락사무소 설립이 무산된 가장 큰 실무적인 이유로 미국의 외교행낭 등을 서울과 평양간 육로로 수송하는 것을 북한 군부가 반대한 것과, 북한이 외환 부족으로 워싱턴 연락사무소 설치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점을 들었다.

그는 “미국 정부는 서울과 평양을 잇는 육로를 통해 외교행낭과 외교관용 음식 등 각종 물품을 북한으로 반입하기를 원했다”며 “평양과 서울을 각각 출발한 트럭이 판문점에서 짐을 옮겨 싣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 특히 북한 군부는 미 외교관들을 위한 물품을 실은 트럭이 비무장지대(DMZ)를 오가는 것에 반대했다는 것.

예이츠씨는 올해 안에 북미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키로 결정하더라도 같은 문제가 재연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외교 행낭이나 식품이 판문점이 아니라 중국을 거쳐 북한에 반입될 경우 시간이 많이 걸려 약간 불편할 뿐 일을 못할 정도는 아니”므로, 이 사안이 연락사무소 설치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실무자들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 정도 어려움은 외교관으로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모두 갖고 있었다”며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할 때 유럽에서 러시아를 거쳐 반입된 건조식품의경우 유효기간이 1년가까이 지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예이츠씨는 이어 당시 북한 당국이 물가가 비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여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고 밝혔다.

“북한 외교관들이 워싱턴에서 직접 공관 사무실 등을 찾아다녔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외화가 부족한 북한으로선 워싱턴에 새 공관을 여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미국은 평양 시내의 구 동독 대사관 건물 중 2층을 독일 정부로부터 빌려쓰기로 했고 외교관용 아파트도 구 동독 외교관들이 쓰던 건물을 쓰기로 결정했었다고 예이츠씨는 밝혔다.

사무소 설치 비용 때문이 아니라 이미 통신망과 책상까지 완전히 갖춰진 사무실과 숙소를 그대로 쓸 수 있는 이점때문이었다는 것.

예이츠씨는 그러나 “미국이 평양에서 구 동독 건물을 빌려쓰기보다는 대표부 건물을 새로 구입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한다”며 북한 당국에 지불하는 공관구입 비용으로 북한이 워싱턴에 공관을 마련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으로선 구 동독 대사관을 빌려 쓰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겠지만, “저는 미국 정부가 이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앞으로 북.미간 연락사무소 합의시 북한의 주미 공관 비용 충당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광주 미문화원장을 지내기도 한 예이츠씨는 “저를 포함해 연락대표부 요원으로 선발됐던 4명의 고참 외교관들이 옷가지를 비롯한 각종 준비물을 인천항으로 부친 상태였고 1-2주일 이내 평양에 연락대표부를 설립할 준비가 돼 있었으나, 1년 넘게 기다린 끝에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최근 열렸던 제네바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가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과거 사무소 설치가 무산된 사실을 상기시키며 “아직 자축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지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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