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北 위기는 지방도시를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그동안 북한관련 연구는 역사서술이나 정책 분석이 주를 이루어왔다. 또 대부분 중앙(평양)에서 벌어지는 정치현상에 대한 접근이었다.

이런 일반론적인 학계의 풍토를 반성하면서 북-중 국경지역의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변화의 구체적 실태와 정치 · 경제적의 구조적 변화 과정을 분석한 연구서가 나와 주목된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윤대규)가 탈북자 85명을 심층 면접 조사해 1990년대 북한 지방도시의 변화 과정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북한도시의 위기와 변화』(한울)가 그것이다.

이 책은 연구소가 2004년에 내놓은『북한도시의 형성과 발전(1950~1980년대)』의 1차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대 청진, 신의주, 혜산 등 세 지방도시의 구조적 변화 과정을 통해 90년대 북한의 위기상황에서 ‘권력체제’ ‘공장체제’ ‘지역체제’가 어떻게 재구조화 되었는지 분석했다.

이 세 도시는 90년대 위기상황을 거치면서 ‘시장적 공간’이 성장함에 따라 지역체제와 공장체제 및 권력체제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졌음을 밝혀냄으로써 ‘도시정치의 재구조화’를 확인하고 있다.

저자들은 사회주의 해체, 김일성 사망, 자연재해, 경제침체 등 1990년대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계획경제가 파탄되고 국가배급제가 마비되면서 그 이전까지 북한의 도시정치를 뒷받침했던 조직화된 의존관계와 집단주의가 약화됐다고 설명한다.

“권력체제-공장체제-지역체제 이완 · 분리

1970년대 사회주의 도시 정치는 ‘권력체제-공장체제-지역체제’의 공고한 결합을 통해 이뤄졌지만 경제위기를 겪은 1990년대는 ‘권력체제-공장체제-지역체제’가 이완 · 분리 되면서 그 틈 사이로 장마당과 암시장을 포함한 ‘시장적 공간’이 자리 잡았다는 것.

이 책은 크게 ‘지방 당사업체계의 재구조화: 지속화 변화의 이중주’▲’경제위기와 지방경제 운영체계의 변화’▲’북한의 도시 장마당 활성화의 동화’▲’북한 주민생활보장제도와 도시 계층구조 재편’▲’경제위기 이후 북한 도시여성의 삶과 의식’▲’고난의 행군과 북한 사회에서 나타난 의식의 단층’▲’북한 도시 주민의 사회적 관계망 변화’ 등 총 7장으로 구성돼 있다.

1990년대 위기 상황에서 지방의 당 사업체계 변화를 연구한 1장에서는 1990년대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당 내부 사업은 아래로부터 심각한 약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는 당 생활의 와해를 가져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 같은 당 조직의 기능을 존속시키기 위한 위로부터의 노력이 동시에 나타나 지방의 당 사업체계는 당 내부사업에서 ‘약화와 복구’라는 이중의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2장은 경제영역에서 지방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는데, 시기적으로는 2002년 7 · 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전까지를 대상으로 1990년대 북한의 자립적 지방경제의 재편과정을 규명하고 있다.

3장은 도시 장마당을 활성화시키는 제반 요인들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세 도시에서 장마당 전개과정의 주된 특징은 도심의 중심적 장마당을 거점으로 공간적 확산이 진행되었다는 점과 이들 장마당이 주민들의 일상적 생계유지활동에 필요 불가결한 사회 · 경제적 공간으로 자리잡게 됐다는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4장은 1990년대 북한의 국가 배급제형 주민생활보장제의 퇴색으로 도시 계층구조의 재편 및 새로운 분화과정과 양상을 파악하는 한편, 이것이 향후 북한의 체제 변화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 것인가를 분석했다.

1990년대 세 도시의 북한 여성을 분석하고 있는 5장에서는 경제난 이후 북한 여성이 가계생계의 전담자가 되면서 과연 이전의 위계적인 성별분업구조의 가부장제하에 억압과 종속 상태에서 탈피했는지 여부와 또 그로부터 여성의 지위 향상이 있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 체제 비판적 태도 보여”

6장은 북한 주민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멘탈리티를 근간으로 1990년대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고찰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기존의 체제 순응적 멘탈리티의 의식들이 1990년대에 정치 · 경제 · 사회 등 제반 영역에서 체제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서 북한 사회가 일반적인 단층(dislocations)사회로 이행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장은 사회주의 건설과 위기의 국면을 경험한 북한 도시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망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가를 조망했다. 저자들은 사회주의 건설 이전에는 ‘공동체적 관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북한 당국의 관료제적 통제가 당 외곽기구 및 인민반 조직 등을 통해 주민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되면서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가 ‘공적 관계망’ 일색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권력체제 · 공장체제 · 지역체제가 상호 연관적으로 통합되었던 북한식 사회주의 도시정치가 1990년대 위기를 거치면서 세 영역이 상대적으로 자립화되고 불균등하게 발전했고, 맹아적 형태지만 ‘시장적 공간’의 질적 변화 및 성장 가능성이 엿보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도시정치의 향후 전망은 새로 등장한 시장적 공간이 기존 세 체제와 어떤 연관성을 맺을 것인지의 문제와 이 시장적 공간이 공고화나 위축 또는 해소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이 책은 분석하고 있다.

한울아카데미 간, 2만2천원.

박영천 기자 pyc@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