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동포돕기와 2010년 쌀지원 논쟁의 차이

최근 북한에 ‘쌀을 주자’는 목소리들을 보고 있으니 필자가 처음 북한에 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던 때가 기억난다. 


‘대북 쌀 지원’ 이야기는 1995년경부터 나왔다. 당시 대학생이면서 학생운동에 투신하고 있던 필자는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게 됐다. 직접 대학교 주변의 동네를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취지를 설명하고 쌀을 모았다. 북한동포돕기 운동의 취지와 의미를 이야기하면 많은 분들께서 선뜻 됫박으로 쌀을 내어주곤 하셨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런데 당시 학생운동은 물론 재야운동에서도 북한동포돕기 운동에 대한 찬반 논쟁이 있었다. 당시의 찬반 논쟁은 지금의 것과 차이가 분명했다. 북한에 쌀을 주자는 것이 생소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소위 운동권 내부의 논쟁이었다.


당시 운동권 내부에서는 대북 쌀 지원 문제가 회자되는 것에 부정적인 흐름도 있었다. 즉 쌀을 주자는 이야기는 북한이 가난한 나라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한국과 달리 정통성을 갖추고 있으며, 1960년대까지 경제적으로도 한국에 비해 월등히 성장했고, 현재 다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잘 살고 있는 나라인데 그런 나라가 가난하고 주민들이 굶주린다는 것을 어떻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 북한을 긍정적으로 보고 나아가 추종했던 일부 운동권들에겐 당연한 생각이었다.


당시 쌀 보내기 운동은, 북한에 물난리가 크게 났기 때문에 1980년대 남한에서 큰 수해가 났을 때 북한이 쌀을 주었으니 우리도 되돌려 주자라는 식으로 전개됐다. 극히 동포애적, 민족적 견지에서 혹은 통일의식의 확산이라는 의미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북한은 주민이 굶주리는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점에 대해 경계를 하고 나온 것이다. 급기야 어느 시점부터는 그 같은 운동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북한동포돕기 운동 자체를 그만하도록 반대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쌀 보내기 운동을 북한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퍼뜨린다며 비난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바뀌었다. 어느 시점부터, 햇볕정책을 펼친 지금의 야당 정치권은 물론 재야운동권에서도 쌀 보내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주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북한동포돕기’를 통한 대북 부정적 인식 확산에 두려워했던 과거의 모습과 비교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에 처하고 그것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그들도 북한이 힘들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북한 당국이 나서서 쌀을 달라고 하는 판이니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사실 여러 면에서 북한의 입장에 좌지우지 돼 왔다. 과거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며 한국의 정권을 비판하다가 북한이 동시가입 추진으로 입장을 선회하자 적극 찬성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던 것과 같은 식이다. 애당초 북한이 어떤 입장을 내놓느냐에 길들여지다시피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북한이 그렇게 나오니 이제는 더 열성적으로 대북 쌀 지원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의 야만이 있은 지 불과 몇 달, 북에 쌀을 주어 남북 경색을 풀자는 목소리의 앞자리엔 역시 그들이 있다. 그들의 모습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중단하라고 이야기하던 다른 모습이 함께 오버랩되는 것은 필자로서는 당연하다. 필자는 처음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전개한 후 몇 년이 지나 북한의 굶주림은 수해 때문이 아니라 북한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 정권 때문이라는 인식이다.  


필자는 이제 북한에 쌀을 주자고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야기하고 있는 그들에게 부디 북한의 진정한 문제를 보기를 요청하고 싶다. 북한이 잘 사는 나라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이제는 북한 정권이 쌀을 달라고 하니 북한에 쌀을 주자며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문제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 스스로의 이성으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북한 동포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만 가능하다. 진정 북한 동포들에게 쌀을 주고플 때만, 진정 북한 동포들에게 굶주림이 아닌 먹을 수 있는 행복을 주고픈 간절한 염원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 같다.  


정말 북한 동포들을 걱정하고 그들의 현실을 마음 아파하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왜 그들이 수십 년을 똑같이 그렇게 굶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지 오늘 당장 쌀을 몇 십만 톤 보내는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지도부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15년 전 북한 동포들에게 쌀을 주자며, 집집이 돌아다니며 동네 아주머니 할아버지들과 대화하고 됫박으로 퍼주시는 쌀을 모아다가 북한에 전달하고자 했던 필자가 왜 지금은 북한에 쌀을 주는 것을 신중하게 고민하게 되었는가. 시간이 지난 후 왜 지금은 북한 정권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겠는가. 필자가 북한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때 그 마음처럼 북한 동포들에게 진정 쌀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배급을 기다린 죄밖에 없는 동포들에게 더 이상은 고통을 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절실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진정 북한 동포들에게 있다면 그들의 생각은 바뀔 것이다. 사랑은 대상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고뇌는 근원에 닿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이 그들의 마음이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동포들을 향한다면 그들의 양심과 그들의 아픈 가슴이 더 이상은 공허한 메아리로 그들을 헛되이 오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렇게 믿고 싶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