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초 ‘통일거리’ 조성때 1개중대 인원 사망”

북한 평양시에서 지난 13일 고층 아파트가 붕괴돼 상당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북한은 사고 발생 닷새 만인 18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을 통해 사고 소식을 전하면서 건설 책임자가 유가족과 주민들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이례적으로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북한이 그동안 내부에서 발생한 대형 인명사고는 통상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사건·사고 공개는 체제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민심 이탈을 차단하기 위해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다만 2004년 발생한 용천역 폭발사고에 대해선 사고 이틀 만에 공개했지만, 구체적인 사고경위와 피해상황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 살인사건, 사고, 특히 건설방식 특성상 조립식 공법이나 인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건설현장 사고가 잦았지만, 당국에 의해 은폐돼 묻혀버린 사건·사고 건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다만 북한은 화재 사고의 경우 화상을 입은 주민을 살리기 위해 군이 헬기로 긴급 후송했다든지 피부 이식을 위해 병원 종사자와 이웃 주민들이 피부를 제공했다는 등의 ‘미담(美談)’ 사례만 공개하며 체제 선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이 사고 소식을 숨긴 채 소문 확산 차단에만 신경을 쓴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7월 마식령 스키장 사고다.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의 최대 치적사업으로 ‘마식령 속도’를 강조하면서 같은해 12월까지 완공을 목표로 했다.

데일리NK는 작년 7월 중순 400mm에 달하는 장마철 폭우로 마식령 스키장 공사현장이 붕괴됐고 산사태까지 발생해 인근 살림집과 농작물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소식통에 따르면 산사태 소식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북한 당국이 내부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4월에는 김일성·김정일의 우상화를 위해 함경북도 무산에 건설된 대형 모자이크 벽화가 붕괴됐다. 복수의 소식통은 무산군 벽화 건설을 담당한 건설 일꾼들이 돈벌이를 위해 시멘트를 비롯한 철강재 등을 빼돌려 부실공사로 이어졌다고 말했지만 이 또한 북한 당국은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2005년 청진시 수성천 다리목 양쪽에 세워진 100m 길이의 초대형 김정숙 찬양구호가 적힌 대형 선전판이 바람에 넘어진 사건도 있었다. 당시 공사 책임자가 노동교화형 처벌을 받고 도당 선전부부장이 해임 철직되는 문책이 있었을 뿐 당국의 보도는 없었다.

2008년에는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 부근 광산에서 발생한 갱도 붕괴사고로 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제12교화소’ 수인(囚人)과 광산 관리자 등 22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북한 당국은 사건 직후 보름동안 일체 가족면회를 금지하며 사건 내막을 은폐하려 했다. 그러나 회령시 병원에 입원한 부상자 가족들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내부에 알려졌다. 사망자에 대한 보상이나 교화소 당국자들에 대한 문책은 없었다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2007년에는 양강도 혜산시 혜산동 7층짜리 탑식(계단식) 아파트가 완전히 붕괴돼 20여명이 사망하고 수십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내부 소식통에 의해 밝혀졌다. 사고 당시 아파트에는 한 층에 6세대 씩 총 42세대가 입주해 있었다. 이 또한 북한 당국은 외부에 알리지 않고 은폐했다.  

또한 작년 7월 미국의소리(VOA)는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7층 건물의 아파트가 붕괴돼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붕괴된 아파트는 북한이 강성대국 진입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2011년 11월에 완공된 ‘500세대 아파트’ 가운데 하나로 모두 16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방송은 전했지만, 북한은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반면 노동신문은 2009년 평안남도 안주지구탄광연합기업소 산하 태향탄광에서 탄광이 붕괴돼 광부 29명이 갇혔으나 7일 만에 모두 무사히 구출됐다고 전한 바 있다. 내부 사건·사고에 대해 보도하지 않던 북한 당국이 당시 사고를 대서특필한 것은 이들의 ‘노동계급의 불굴의 정신력’과 구조대의 ‘투쟁’정신을 주민들에 대한 사상교육에 활용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한 고위탈북자는 데일리NK에 “북한에서 건설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면서 “1980년대 서해갑문 건설할 때 군인 수백 명이 죽고 금강산발전 건설할 때도 수백 명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1990년대 초 통일거리 건설할 때는 아파트 30층짜리가 붕괴돼 1개 중대 인원 이상이 사망했다”면서 “희천발전소 건설 당시에도 군인, 일반 건설자 수백 명이 사망했고, 평양-남포 고속도로 건설할 때도 아치형 다리가 무너져 밑에서 준공식을 진행하던 사람들 수십 명이 다 죽었다”고 덧붙였다.

다른 탈북자는 “1998년 단천에서 열차가 경사가 심한 지역을 올라가다가 정전됐는데 다시 시동을 켜서 올라가려니까 힘이 모자라서 뒤로 밀렸다. 그때 열차 두 칸만 남고 나머지는 다 날아가서 몰살당했다”면서 “당시 사고에 대해 북한 어떤 매체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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