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초 발언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 ‘DPRK’

“감사합니다. 의장선생.”

지난 5월 1일 오후 2시 30분, 스위스 제네바 유엔 회의장. 북한에 대한 유엔의 두 번째 보편적 정례 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가 서세평 주(駐)제네바 북한 대사의 인사와 함께 시작됐다. 북한의 경우, 첫 번째 정례 검토가 2009년에 진행됐으니 이번 심의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의 북한인권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다. 그 사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활동 및 보고서 발표, 인권이사회 채택 결의와 같은 굵직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인지, 현장에 모인 회원국만 84개국에 달했다. 50여개 국이 참석했던 첫 번째 UPR 당시와 비교해봐도 상당한 수였다.

심의에 참석한 각 나라 대표부의 가장 큰 숙제는 배당된 시간 ‘1분 20초’ 동안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자국의 입장과 권고안을 전달하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북한인권 문제 중 핵심 내용만 추려서 짧은 시간 내에 전해야 하다 보니, 시간을 초과해 의장단으로부터 재촉을 받는 국가도 많았고, 시간에 신경 쓰느라 너무 빨리 말해 ‘천천히 말해달라’는 당부를 들은 국가도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각국 대표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단어 중 단연 1위는 ‘DPRK’였고, 그 다음은 ‘Commission of Inquiry(COI)’였다. 그만큼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영국과 미국, 호주, 일본, 프랑스 등 총 15개 국가는 권고안 제시에 앞선 각국의 입장 발표에서, COI 보고서를 언급하며 북한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다. 권고 자체를 ‘COI 권고사항’의 수용, 이행으로 정한 나라만도 한국, 독일, 미국, 프랑스, 일본 등 18개 국가에 달했다.

네덜란드와 스웨덴, 가나 등은 북한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활동에 협력할 것을 촉구하거나, 이를 위해 로마조약(Rome Statute)에 가입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COI가 3월 발표한 보고서 권고안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의 상황을 반인도 범죄로 ICC에 제소할 것을 촉구한 대목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ICC는 2009년 1차 UPR 당시 권고안에선 찾아볼 수도 없던 단어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책임자에 대한 처벌 문제 논의에 협조할 준비를 하라는 말까지 나온 것은 이번 UPR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의 분위기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한 것인지, 검토 결과 나온 권고안 수만 268개, 1차 권고안 수에 비해 100개 정도 늘었다.

북한 대표부에게도 COI는 상당한 부담이 된 듯 했다. 회원국 1/3에 해당하는 국가 대표부의 발언이 끝나고 1차 답변을 하는 시간, 서세평 대사가 최명남 북한 외무성 부국장에게 마이크를 돌렸다. COI에 대한 북한 측의 입장 발표 때문이었다. 최 부국장은 북한 대표부 가운데 유일하게 영어로 발언을 이어갔는데, ‘fabrication(날조)’, ‘subverting the state(국가 전복)’, ‘politicize(정치 이슈화)’, ‘double standards(이중잣대)’와 같은 표현이 이어졌다. 즉, COI 조사 결과는 날조된 것이자, 북한 정권을 전복하려는 행위이고,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것이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COI 보고서에 대해선 북한 정권이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 바 있기에 예상했던 것이지만, 별도의 대응 발언까지 준비한 점은 의외였다. 보통 ‘침묵’과 ‘무시’로 일관하는 게 북한의 일반적 태도였기 때문이다. 

2차 UPR 심의가 며칠 남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2009년 1차회기 결과에서 나온 권고안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당시 북한은 167개의 권고안 중 50개에 대해선 거부, 나머지 117개 권고안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4년이 지나서야 그 입장을 밝힌 것으로 그 중 81개는 수용, 6개는 부분 수용, 15개는 주목(noted), 나머지 15개는 거부했다. 수용한 내용의 대부분은 아동, 여성, 장애인 인권 개선에 대한 권고안이었다. 실제 이번 2차 UPR에서 지난 2009년의 권고사항을 하나도 받아 들이지 않은 데 대한 지적을 의식한 행동으로 생각된다.

심의 중 북한 대표부의 발언에 쓴 웃음이 나오는 순간도 많았다. 강제 북송된 탈북자에 대한 가혹 행위 우려에 대해, 여러 번 북-중 국경을 드나드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북한 당국이) 가혹한 처벌을 한다는 일부 주장이 맞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적대세력의 모략행위가 문제라며, 사실 문제는 “최근 드러난 우리 공화국 주민들에 대한 적대세력의 유인납치”라고 비난했다. 라오스에서 탈북 청소년 9명을 강제 송환하면서 썼던 논리를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국외 납치자와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선 예전과 다름없이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이미 종료된 일’, ‘형법에도 없는 문제’라는 게 그 근거였다.

대미(大尾)를 장식한 건 북한 대표부 측의 마지막 정리 발언에서 나온 최고인민회의 김명철 참사의 발언이었다. 김 참사는 COI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가리켜 ‘제도적이며 광범위하고 엄중한 유린, 반인도 범죄’란 지적에 대해 “제도적이라는 건 법화된 걸 의미한다”면서 “북한의 어느 법 조항에도 인권 유린 행위를 허용하거나 조장하는 점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 “공화국은 인민이 선택하고,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 된 사회주의 제도”라며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그런 제도가 아직까지 존재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북한을 두고 사회주의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어색했지만, 북한에서 법과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모르는지, 세습 독재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정말 모르는 건지 되묻고 싶었다.

이번 2차 UPR에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쿠바, 베트남, 러시아, 중국, 모잠비크 등의 국가도 참석했다. 이 중 쿠바는 “검토 대상국이 사회주의 국가에 반대해 공격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펴는 차원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통합시키려는 것을 지적한다”며 드러내놓고 북한의 편에 섰다. 이들 국가의 권고에서 정치시민적 권리 부분의 개선을 요구하는 사항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이번에도 말뿐인 법체계와 라오스 탈북 청소년 송환 사건에서 보여준 논리 비틀기로 인권 문제의 책임에서 비켜 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6일 채택된 ‘북한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 실무 보고서’ 권고안 268개 중, 연좌제 폐지, 유엔 기구와의 협력, 정치범 수용소 폐쇄, 유엔 COI 권고안 이행 등의 내용이 담긴 83개 수용을 거부했다.

북한에 대한 2차 UPR 심의를 지켜보며,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조사 보고서 채택으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는 걸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꼈던 것은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인권 권고를 실행할 수밖에 없도록, 더 구체적인 증거와 논리를 꾸준히 마련해 압박하는 것이 필요하다.’ 3시간 30여 분에 걸친 심의 후에 유유이 회의장을 빠져 나가는 북한 대표부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