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자회동 전격 합의…긴박한 말聯 외교가

“숨막히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북한을 협상장으로 유도하려는 말레이시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 전선(戰線)이 관련국들의 막판 수싸움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금융제재를 풀기 전에 6자회담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은 북한에 대해 “북한을 제외한 8자회동을 전격 열기로 했다”는 응수가 이어지는 등 팽팽한 ’기싸움’까지 벌어지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제 회의일정을 감안, 현지에서 남은 시간도 하루 정도에 불과하다.

북한과 미국 등은 짧은 시간동안 화력을 총동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제안= 미국은 ARF에 오기전인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북핵 6자회담 참가국에 ’긴급연락’을 취했다.

북한과도 ’뉴욕채널’을 통해 접촉, 메시지를 전달했다.

요지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쿠알라룸푸르에 간다.

그러니 거기서 장관급 6자회동을 하자’는 것이었다.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당연히 “북한이 참가한다면…”하면서 동의의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북한은 ARF 직전 열리는 26일 아세안+3 외무장관회담 직전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불행하게도 북한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의 ’부정적 시그널’을 눈치챈 미국은 곧바로 대안을 제시했다.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북한을 제외한 5개국과 그동안 북한 문제에 적극 나서려 했던 호주와 캐나다, 그리고 ARF 회의를 주최한 말레이시아를 포함하는 ’8자회동’이 그것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먼저 한국과 협의한 듯하다.

물론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등에 사전에 ’귀뜀’ 정도는 해주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파트너가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미 북한이 참가하지 않을 경우, 5자회담이라도 갖자고 제안한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힐 차관보는 워싱턴에서 쿠알라룸푸르로 가기 위해 서울에 기착, 항공편을 갈아탔다.

그 항공편에는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한국측 대표단이 타고 있었고 이 자리에서 사전에 8자회동을 성사시키려는 기본 협의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한국의 메신저 역할= 8자회동이 성사되려면 중국의 동의가 필수적이었다.

중국은 북한이 참가하지 않는 5자회담에 대해 이미 “북한을 소외시킬 가능성이 있다”면서 거부의 뜻을 분명히 한 터였다.

특히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5자회담이 열릴 경우 6자 프로세스가 손상당할 우려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5개국에 다른 3개국이 참여하는 8자회동이라면 중국의 태도가 달라질 것으로 미국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국이 미국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는 게 한 외교소식통의 전언이다.

26일 오전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ARF 회의가 주로 열리는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KLCC)에서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을 만났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긴밀히 노력하자’는 예상된 대화를 주고 받은 뒤 반 장관은 8자회동 카드를 정식으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몰아붙이는게 아니다” 또는 “모처럼 모인 자리에서 6자회담의 모멘텀을 살리는 측면에서 6자가 모이면 좋겠지만 북한이 끝까지 거부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눈치를 살폈다는 후문이다.

리 부장은 의외로 “6자든, 7자든, 8자든 좋다”며 5자회담이 무산되고 대안이 마련되는데 ’동의’를 했다.

한국은 곧바로 이를 미국측에 전했다.

미국은 이제 “마지막으로 북한의 반응을 살피는 일만 남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27일 오전부터 미국의 공세는 구체적으로 펼쳐졌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중동에서 쿠알라룸푸르로 오는 기내에서 “6자회담의 재개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기자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워싱턴에서는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북한에 대해 추가 압박 움직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후 4시40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백남순 외무상 일행이 “금융제재 해제 없으면 6자회담 없다”며 8-9자회동에 대해서도 ’관심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8자회동’ 카드가 전면으로 부각됐다.

미국은 오후 5시가 넘어 각국에 ’28일 오후 1시30분부터 3시까지 8자회동을 하자’는 안을 돌렸다.

이미 다른 나라들이 거의 합의한 터라 순식간에 ’8자회동 합의’가 이어졌다.

◇북한의 태도가 막판변수= 역시 현 상황에서 마지막 변수는 북한이었다.

게다가 8자회동이 예정된 28일 오후 1시30분에는 당초 북한과 중국간 장관급 양자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오후 1시50분부터 열리기로 된 이 회담이 문제가 될 기미가 보였다.

결국 관련국간 시간을 조정한 끝에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15분 연기한 28일 오후 2시45분부터 8자회동을 하기로 했다.

특히 백남순 외무상은 27일 저녁 말레이시아 압둘라 바다위 총리를 예방하고 나온 뒤 기자들과 만나 “아직 사업이 시작되지 않았다. 잠자고 봅시다”라는 말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막판 반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처럼 해석됐다.

이에 따라 북중간 의견 조율 과정이 주목되고 있다.

문제는 미사일 발사와 유엔 안보리 결의 과정에서 확인된 북한과 중국간 ‘관계변화’다.

실제로 압둘라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는 리자오싱 부장이 백 외무상 바로 옆자리에서 한동안 함께 있었지만 리 부장은 백 외무상이 얘기를 걸려고 하면 고개를 돌리거나 의도적으로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회담장을 목격한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결국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마지막 변수만 남은 형국이 됐다.

8자회동이 성사되면 그 이후부터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공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쿠알라룸푸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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