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사라진 남북 공동입장 감동

2000년 9월15일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 남측 정은순(농구)과 북측 박정철(유도)이 한반도기를 맞잡고 등장하자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던 10만 8천여 관중이 한꺼번에 일어나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전 세계는 그 순간 단순한 깃발이 아니라 한반도 냉전의 벽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정신을 가장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공동입장은 1990년대 초부터 진행된 남북화해 노력을 상징하는 화려한 이벤트였다.

1990년 7월26일 고위급회담 개최에 합의하며 해빙의 물꼬를 튼 남북은 1990년 10월25일 남북체육회담에서 단일팀 구성에도 합의를 이뤄냈다. 1991년 3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수선수권대회와 같은 해 5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코리아팀’을 내보낸 게 그 산물이었다.

한동안 주춤하던 남북 스포츠 교류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정상회담에 앞서 1999년 8월에는 평양에서 남북노동자축구대회가 열렸고, 9월에는 남북통일농구대회가 이어졌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 스포츠 두 거물인 김운용 당시 IOC 부위원장과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의 공동입장 합의가 이뤄졌고, 남북은 분단 후 처음으로 올림픽 개회식에 손을 잡고 입장하며 전 세계에 감동을 안길 수 있었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그 후 남북 공동입장은 국제 스포츠행사의 관례처럼 굳어졌다. 남북은 2004년 아테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은 물론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아홉 차례나 공동입장 했다.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때 오재은(알파인스키)과 리금성(아이스하키)이 나란히 행진한 게 마지막이었다.

통산 10번째가 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공동입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희망이 남아있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10월4일 발표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에는 남북이 베이징올림픽에 공동응원단을 보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때만 해도 `공동 응원은 몰라도 최소한 공동 입장은 지속되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10.4 공동선언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밝히기 시작하면서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공동 입장을 논의하기 위한 체육회담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북한은 대한올림픽위원회(KOC)가 보낸 체육회담 개최 전통문조차 접수를 거부했다.

베이징 현지에서도 이연택 KOC 위원장과 박학선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호텔 식당에서 상견례를 하긴 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이뤄지지 낳았고, 결국 7일 무산이 선언됐다.

8년 만에 공동입장의 감격은 사라졌고, 남북은 이제 누가 먼저 올림픽 개회식에 입장할 것이냐를 두고 다투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시절로 돌아갔다.

적어도 스포츠 분야에선 남북관계가 12년 전으로 회귀한 셈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