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통일론 펴낸 백낙청씨

“한반도 고유의 통일과정이 2000년 시작돼 진전되고 있다.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남북 시민사회가 상당부분 접근했을 때 남북 연합을 선포하면, 그것이 1단계 통일이다.”

문학ㆍ사회과학 출판사 ’창비’의 편집인이자 민족문학진영의 대표평론가로서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 등 80년대 사회변혁 담론생산의 ’대부’ 역할을 맡아온 백낙청(69) 서울대 명예교수.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대표를 맡고 있는 그가 1998년 출간한 ’흔들리는 분단체제’ 이후 8년의 공백을 깨고 최근 사회비평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창비 펴냄)을 펴냈다.

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세교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 출간 기자회견은 책의 출판을 언론에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다가오는 6.15 여섯돌을 즈음한 남북관계의 진전방향, 통일의 의미, 독도를 둘러싼 한국의 민족주의 문제 등 다양한 의견들이 오간 자리였다.

미국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지내며 본업인 문학평론보다 사회비평적 저술과 남북통일 관련 연구로 더 유명한 그는 앞으로도 활발히 남북통일 관련 연구와 활동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2월14일 창비 창간 40주년 기념 회견에서 “초기의 운동성과 활력을 되찾겠다”고 선언한 이후 두달 남짓 만에 한국사회의 ’운동성과 활력’이 강조된 책을 내놓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즘 근황은 어떤가.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대표를 맡고 있다.

6.15행사 준비로 이것저것 분주하다.

올해 6.15공동선언 여섯돌 행사는 전남 광주에서 열린다.

–정권이 바뀐다면 남북 협력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대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간 화해 교류의 큰 흐름은 거의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평화에 대한 열망은 높을 지언정 통일에 대한 열망은 줄어들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있다.

평화와 통일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또한 교착상태의 북미관계를 풀어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 보는가.

▲9.19 공동성명을 통해 동북아 평화체제 기본구상이 발표된 이후, 통일의 움직임에 대한 역류현상이 나타난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상황의 진전을 보면 순탄하게 진행된 적이 별로 없다.

반드시 시련이 오곤 했다.

북미 관계에 남측이 공연히 끼어드는 것이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는 얘기인데, 미국을 제쳐놓고 오로지 민족 공조만 하겠다는 입장에 찬성하지 않는다.

대등한 관계는 아니지만, 한미동맹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것을 슬기롭게 관리해나갈 때 북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고, 북미관계의 해법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9.19 공동성명 자체도, 남측이 적극적으로 개입, 미국을 끌어왔기 때문에 나온 것이지, 북미 사이에만 맡겼으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북미관계가 어려운데, 남북공조와 한미동맹 한쪽에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양자를 슬기롭게 관리하면서 개입할 부분에는 적극 개입하는 것이 옳다.

통일 열망이 국민사이에, 특히 젊은 세대 사이에 식었다는 여론조사도 많이 있는데, 그래서 내가 주장하는 것이 통일의 개념을 바꿔야한다는 것이다.

분단 혹은 완전한 통일의 이분법은 이제 안된다.

통일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현재 남북 화해교류를 대부분 지지한다.

이를 근거로 우리 국민은 평화에만 관심있지,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결론짓는 것은 일부 학자나 사회일각의 주장이지 국민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한반도 고유의 통일과정이라는 것이 어떤 특징들로 정의될 수 있나.

▲첫째 베트남식이 아니다.

베트남 통일은 자주적이긴 했으나 평화통일은 아니었다.

둘째 독일식도 아니다.

독일의 통일에서는 강대국과의 교섭이 중요한 변수였고 비교적 자주적이고 평화적이었으나 한반도에는 해당이 안된다.

자본주의 남쪽이 북측을 흡수하는 식의 통일은 북이 절대로 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강압적으로 흡수하려다가는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구 서독과 달리 우리나라가 북을 흡수한다 하더라도 소화능력이 없다.

여러 여건으로 봐서 서독식은 불가능하고, 주어진 조건에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또한 예멘식도 아니다.

나는 예멘의 통일을 ’3당합당식’이라 표현했는데, 수뇌부에서 담합해서 통일을 선포한 케이스다.

내가 생각하는 한반도 고유의 통일과정이란 시민사회도 참여해 남북간에 다각적 교류 화해가 무르익어 낮은 단계 연방제가 실현되는 것이다.

2000년 남북 두 정상의 합의 이후 통일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반도 고유의 통일과정이 2000년 6월 시작돼 진전이 되고있고,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가운데 시민사회가 상당부분 접근되는 때 남북 연합을 선포하면, 그것이 1단계 통일이다.

–그런데, 북한에 과연 ’시민사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정부나 기업을 배제한 나머지를 시민사회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의 시민사회는 당연히 북한에 없다.

그러나 북한도 정부나 당 이외에 인민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삶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다.

우리 기준으로 시민운동, 시민단체가 있냐고 물으면 곤란하다.

남과 북의 시민사회가 접촉을 할수록 직간접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추진에 대한 생각은.

▲한미 FTA 자체가 득이냐 실이냐는 한미 간 합의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 발표에 따르면 FTA 추진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남쪽 경제도 크게 훼손 되고 미국에 대한 의존도 높아지고, 남북통합의 추진동력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애초에 정부가 발표한 것과 같이 속전속결식으로 한미간 FTA를 체결하는 것은 막아야한다.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책에서 설명한 NL(민족해방계열) PD(민중민주계열) BD(온건개혁세력)의 3주체의 결합에 있어 ’온건개혁세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온건개혁세력이 우리사회의 다수세력이라고 본다.

남북 화해교류 과정도 지지하고, 통일도 원칙적으로 지지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통일보다 내부의 살림을 제대로 살아보자는 입장이다.

개혁할 것은 개혁하고 환경파괴 없이 발전해보자는 사회 다수의 의견이다.

–NL과 PD에 주문한 ’환골탈태’한 모습은 무엇인가.

▲통일의 과제든, 자본주의 사회의 과제든 세계적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봐야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가령 NL은 남쪽 만을 생각하는 것을 반(半)국적 시각이라 비판하며 온전한 일국적 시각을 가져야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이는 결국 남과 북을 합친 것만 보는 것이지 세계적 시각이 아니었다.

PD도 남한을 이론의 기본단위로 잡고 그 안의 계급대립 위주로 생각해왔다.

현재 경제는 세계단위로 돌아가는데, 계급만 일국 단위로 설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면에서 온건개혁세력에게는 세계적 시각을 어떤 면에서 많이 갖추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3주체가 결합하면 그것이 ’환골탈태’다.

–책에서 “분단시대를 고려하지 않고 정당정치에 과도하게 집착했다”며 최장집교수를 비판했는데.

▲최 교수는 모든 통일론이 평화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얘기하고 있다.

나는 통일을 하자고 너무 나서도 평화가 어려워지고, 통일을 안하자고 해도 평화가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식인으로서의 ’담론’은 계급장 떼고 해야하는 게 원칙이라 생각한다.

나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자격증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해왔다.

이 문제는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사회과학계에 토론이 너무없다.

내가 서명한 이번 책은 최 교수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것이다.(웃음)

–사회과학계나 범 진보진영에 이론논쟁이 활성화 되길 바라는 희망이 섞여있나.

▲그렇다.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느 언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진보진영 노선투쟁으로는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통일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민족주의’를 짚어달라.

▲옛날에는 민족주의라 할 때, 저항적 건전한 민족주의와 강대국의 침략적 민족주의를 구분해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어느 민족주의에나 양면성이 있다.

좋은 민족주의 나쁜 민족주의를 가릴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이것은 생각이 좀 바뀐 부분이다.

특히 우리 한반도의 경우에는 민족주의의 여러 종이 복잡하게 섞여있다.

한반도 전체의 민족주의(통일민족주의), 분단이 오래가다보니 남한국민 중심의 민족주의, 박정희 시대에 강했던 국가주의, 완전히 남북 대결을 전제로 하고, 분단국가를 강화하는 민족주의 등이 뒤섞여 있다.

민족주의적 열정에 불탄다고 반드시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통일열정은 오히려 분단체제를 굳힐 수도 있다.

–독도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의 민족주의적 열정을 어떻게 풀어가야한다고 보나.

▲글쎄….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원칙적으로 영유권이 역사의 문제라는 정부의 입장에 동의한다.

일본 정부의 ’역사와 무관한 영유권’ 논리는 한심하다.

그러나 무작정 일본을 규탄하고, 대화의 폭을 줄이는 일이 옳은 것인지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현명히 판단해야할 것이다.

이 문제는 원칙은 선명하지만, 실제로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통일운동의 관점에서 북한 인권을 거론하는 단체들을 어떻게 생각하나.

▲현 단계에서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 운동세력과 통일운동 세력이 함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정서적으로도 거리가 멀고, 입장차가 크다.

그러나 담론 차원에서는 6.15공동위에 참여하는 연구자들 가운데서도 북한의 인권을 포함한 각종 인권문제(한국·미국 인권 포함)를 이야기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미국의 인권유린 문제나 독재시절의 인권문제 등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 보편적 인권 개념을 들고 북한 인권을 바라보는 경우인데, 부시 대통령의 북한 체제전복 움직임에 편승하거나 그것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나도 상당부분 여기에 공감한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대화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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