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의 고백 ‘나는 북한 사람입니다’

장마와 폭염으로 민초들을 괴롭히던 올 여름도 말복을 넘기며 가을로 한걸음 다가선 듯싶다.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새파란 사과가 뜨거운 햇볕을 받아 붉게 물들어 가는 모습과 알알이 무르익은 누런 벼 이삭이 고개 숙이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과는 빨간색으로, 벼는 누런색으로 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모습을 하나, 둘 찾아가고 있다. 이런 모습에 ‘나는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찾아 헤맸던 나의 옛 모습을 떠올려 본다.

김포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작된 나의 남한 생활은 7년째 접어들고 있다. 모든 탈북자들이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북한과 너무 다른 남한에서의 정착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해 남한정착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싫었고 남들이 내가 탈북자라는 것을 아는 것이 두려웠다. 말투가 이상하다며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중국에서 살다 와서 그렇다고 거짓말로 둘러대기 일쑤였다. 이런 나의 거짓말이 반복되면 될수록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어색해졌고 더 이상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가 없었다. 또한 내 자신이 스스로 느끼는 괴로움은 더 커져만 갔다.

내가 누구이고 나는 왜 여기에 있으며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지 깊이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을 때 나의 이런 고민과 방황을 멈추게 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한 ‘탈북대학생 리더십캠프’에 참가하게 되면서였다. 캠프 첫날 윤현 이사장님이 탈북대학생들에게 들려주신 한 재미교포 2세의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캠프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심금을 울렸으리라 생각된다. 나의 생각을 180도로 바꿔놓은 재미교포 2세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인 부부는 태어난 자식을 미국 현지인처럼 키우기 위해 무지 애썼다. 미국인들만 다니는 학교에 입학시키고 집에선 자식을 위해 영어로만 말했다. 최대한 한인들과의 접촉을 피했고 한국인이 아닌 미국 사람임을 강조했다. 물론 성인이 될 때까지 한국에 한번 가본 적이 없었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 없었다.

자식을 철저히 미국사람으로 키워온 부모님은 그들의 교육방식이 자식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줄 거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미국에서 유명한 대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이 꿈꿔왔던 기업에 서류심사에서도 통과 됐지만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게 됐다. 떨어진 이유는 자신의 뿌리, 즉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보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한마디도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꿈의 문턱에서 좌절한 그는 자신을 미국 사람으로만 키워온 부모님을 원망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가 나의 가슴을 울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 주인공이 불쌍해서 일까? 아니다. 주인공의 처지가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철저히 미국 사람으로 교육받고 미국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한국 사람이고 그 뿌리는 한국에 있었다. 그렇다. 나 역시 누가 뭐래도, 내 자신을 애써 부인해 봐도 나는 북한 사람이다. 그리고 북한은 내가 언젠가 돌아가야 할 땅이고 사랑해야 할 땅임을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 탈북자 중 북한 땅이 싫어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생존권마저 보장해주지 않는 북한정부가 싫어 목숨을 걸고 남한 행을 택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북한에서의 생활과 중국에서의 생활은 모든 탈북자들에게 악몽과도 같고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은 기억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고통과 환경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살아가는데 있어 많은 지혜를 터득할 수 있었다.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일 때 쌀 한 톨의 귀중함을 깨달았고 중국 공안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야만 했던 중국 생활에선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배웠다.

우리가 겪은 북한과 중국에서의 고생은 절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듯 이러한 경험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나침반 역할을 해줄 것이다.

내가 누구이고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탈북자이고 나의 정체성은 북한에 있다고 말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이 되면 제일 먼저 북한으로 들어가 북한사회의 재건과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우리 탈북대학생들이 할 일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빨리 확립해야 하고 저 북한 땅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사과는 빨간색으로, 벼는 누런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오늘도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강원철/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대표(한양대 4)

※ 대학생 웹진 바이트(www.i-bait.com)의 양해를 구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