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김산의 영혼

“아버지 김산의 영혼이 고국에 돌아왔다. 한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러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17일 오전 종로구 공평동 태화빌딩의 지하회의실에서는 광복60주년을 맞아 얼마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독립운동가 김산(1905∼1938. 본명 장지락)의 유일한 혈육인 고영광(高永光.69) 씨를 초청해 김산의 복권의미와 생애를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자리는 인터넷에 김산을 기리는 사이트 아리랑나라(www.arirangnara.com)를 운영하는 기미양(45) 씨가 고씨를 초청해 이뤄졌다.

고씨는 이날 자신의 아버지의 생애를 다룬 ’아리랑’에 나오는 그 가사 그대로 국악인들이 부르는 아리랑 곡조를 들으며 감회에 젖는 듯했다.

올해는 조선의 독립운동가 김산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

미국의 여류작가 님 웨일즈가 쓴 김산에 대한 평전 ’아리랑’(원제: Song of Ariran)’의 개정판이 최근 출간되고, 그동안 사회주의 계열로 분류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던 김산에게 정부가 최근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등 그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고씨는 미리 준비한 아버지 김산의 자세한 활동을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아버지의 독립운동과 생전 활동들을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김산의 독립운동 활동을 인정한 한국 정부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일본 스파이로 몰려 1938년 중국에서 33세의 젊은 나이로 총살된 혁명가 김산.

그의 아들 고영광 씨는 김산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얘기를 나이 서른이 넘어 처음 들은 후, 1970년대 후반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 조직부장이었던 후야오방(胡耀邦)에게 직접 편지를 써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탄원했다.

당시 그는 아버지 김산을 만났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나고 “당신의 아버지는 진정으로 멋진 혁명가였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술회했다.

결국 1983년 1월, 후야오방과 김산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본의 스파이로 몰려 처형된 김산은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

김산의 유품은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씨는 남아 있는 유품은 사진 한 장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질문 중에는 “님 웨일즈와 아버지가 연인 관계였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도 있었다.

고씨는 이에 대해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라고 말한 뒤 “일반적인 동지 관계보다는 가까웠을 수 있겠지만, 상상하기 나름”이라며 님 웨일즈는 조선의 해방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아리랑’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연극인 김경원 씨는 김산의 이야기를 소재로 직접 쓴 희곡을 준비해오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남과 북이 함께 김산의 생애 다룬 연극을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주최측이 남녀 국악인을 초청, 님 웨일스와 김산의 ’아리랑’에 나오는 ’아리랑 옥중가’와 ’아리랑 연가’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도 마련됐다.

’아리랑 연가’는 당시 중국에서 님 웨일즈와 김산이 영어가사로 함께 불렀던 노래./연합

고씨를 한국에 초청해 이날 자리를 마련한 기미양 씨는 “흔히 ’아리랑’이 님 웨일즈의 단독 저작으로 알려졌는데 ’아리랑’ 영문 초판본에는 분명히 저자가 ’김산ㆍ님 웨일즈’라고 써 있다”며 “김산은 ’아리랑’의 주인공이자 동시에 공동 저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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