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제주 여 해병대원 아시나요

“이제 또 6.25가 나도 누가 나라를 지키겠습니까? 제나라 군인 유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수습하는 미국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6.25 때 학업을 중단하고 해병대에 입대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군인 문인순(76.제주시 용담2동) 씨는 국가유공자증서를 쓰다듬으며 상념에 젖었다.

제주여중 2학년생이던 그는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을 위협하던 1950년 8월 30일, ‘학도호국단 간부는 모두 해병대에 가라”는 체육교사의 불호령에 해병 4기에 입대했다. 당시 그의 나이 열일곱살에 불과했다.

함께 징집된 여성 126명과 함께 40일간 총검술과 사격 등 성인 남자와 똑같은 훈련을 마친 문 씨는 LST(상륙함)를 타고 경남 진해로 내려가 이듬해까지 해군본부 인사국장실에서 복무하게 된다. 해병으로 입대했지만 해군에 배치된 그는 “나는 사실상 해병이 아니라 해군”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간신히 중학교 졸업장이라도 땄지만, 함께 복무했던 전우들은 배울 때를 놓쳐서 다들 험하게 살아요. 정부가 소년소녀병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 희생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군번 91073’이 선명히 찍힌 참전용사증에 지난해에는 국가유공자 증서도 받았지만 한달에 받는 돈은 고작 참전수당 8만원. 소년소녀 참전병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긴 했지만 신체적인 상해가 없어 연금이나 봉상금 등 혜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공부하다 전쟁에 참전한 학도의용군은 매달 110만원씩 보상금을 받고 있다는데,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다 참전한 소년소녀들은 오로지 명예만 있을 뿐입니다.”

“국가권익위에서 다 조사해 갔고, UN인권위에 탄원서도 내 봤지만 국회의원에게 메일을 보내도 읽지도 않더라”며 아쉬워하는 문 씨. 그러나 아무리 정부에 서운할지라도 나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없다.

2001년 독도수호대에 가입한 이후 ‘독도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그는 집전화와 휴대전화 컬러링도 ‘독도를 지키자’는 내용으로 바꾸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일본의 야욕에 일침을 놓았다.

2002년 6월 독도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해교전 소식을 듣고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는 그는 이듬해 현장을 찾아 꽃다운 나이에 나라를 지키다 숨져간 후배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서야 비로소 한을 풀었다. 또 50-70년대에 군에 복무했던 여군 출신 모임인 제주도 재향군인회 한마음회 회장을 맡아 7년 동안 해군 제주방어사령부 장병들의 옷을 수선해 주기도 했다.

처녀 시절부터 낙서하듯 써 온 시들을 모아 시집 ‘짧고도 긴 세월’과 시가 있는 수필집을 펴낸 그는 1남 6녀의 어머니로 백발이 성성하고 눈이 침침하지만 지금도 시상이 떠오르면 한밤중에라도 일어나 시를 쓴다.

문 씨는 대학노트 6권 분량에 이르는 시들을 계속 책으로 펴내고, 소년소녀병의 명예를 찾아주기 위한 ‘외롭고 괴로운 싸움’을 죽는 날까지 계속하겠다며 웃었다. 그의 집 대문에 걸린 ‘6.25 참전용사의 집’ 명패만이 59년 전 그날을 말해 주고 있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