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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8일부터 2박 3일간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14차 남북 이산가족 특별상봉 행사에서 처음으로 6.25 전쟁 당시 북으로 끌려간 납북자의 가족상봉이 예정돼 기대를 모았으나 북측의 상봉거부로 끝내 무산됐다.
전쟁 당시 공무원으로 복무하다 북으로 끌려간 이봉우(82세) 씨의 아들 상일 씨는 지난 5월 북측으로부터 부친이 북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다. 아버지 생존이 확인된 5월 이후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던 이씨 가족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달 20일 북측은 이봉우가 이씨 부친이 아닌 동명이인이라는 내용을 담은 ‘재확인 팩스’를 통일부로 보내왔다.
상봉 무산 위기에 처한 이씨는 통일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북측에게 신원확인 요청 등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으나 일주일이 지난 26일까지 통일부에서는 행정착오라는 답변만을 하고 있는 상태다.
이 씨는 지난 4월 남북이산가족 찾기 신청서에 특수이산가족(납북자 포함)으로 모친 사진까지 첨부해 서류를 보냈다. 그 결과 북측으로부터 아버지 뿐만 아니라 이복형제 리상만(38, 남) 씨와 리정순(36, 여) 씨가 생존해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아들 상일 씨는 “북측에서 확인 절차를 모두 거쳐 상봉일정까지 잡아 놓고도, 20일 오후 국내 모 방송사에서 전시납북자 상봉 보도가 나가자 마자 저녁에 북측에서 ‘동명이인’이라는 답변이 왔다”며 “납북자 가족 모두에게 송구스럽고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와 이 씨 가족은 26일 상봉무산에 대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고 “북측의 재확인 요청은 날조된 것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서 “북한도 최소한의 인권이 존재 할터인데 이렇게 혈육상봉을 막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씨는 이날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몇 주 만에 갑자기 돌변하는 북한의 태도를 납득할 수 없고, 분명히 조작된 엉터리”라면서 “북한은 정치적 의도 때문에 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일부는 북한의 이런 태도를 지적하기 보다는 ‘헤어질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해 확인하자’고만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진을 보면 쉽게 확인 할 수 있는데, 북한에 왜 사진 요청을 하지 못하고 끌려만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통일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이 이사장도 “상일 씨의 상봉은 56년만에 최초로 만나는 것으로 전시 납북자 가족들에게 희망을 안겨 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다”면서 “몇 주 만에 태도를 바꾼 북측이 다른 의도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난 5월 이산가족 생사확인 의뢰서 209번으로 신청한 유정옥(상일 씨의 모친)씨의 남편 리봉우 씨가 생존해 있다는 확인서를 보내온 바 있다.
1950년 8월 납북된 이봉우 씨는 당시 농촌진흥청 곤충계장으로서 국내 곤충표본 제작의 1인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당시 3명의 직원과 함께 인민군이 장악한 경찰서에 연행됐다가 소식이 끊겼다.
김용훈 기자 kyh@dailynk.com